[혁신탐방] 당사자가 앞에 있는 CSR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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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탐방] 당사자가 앞에 있는 CSR이란?
한국에자이, 나우혁신 네트워크 등 통해 당사자 참여 이끌어내
  • 2021.02.23 16:26
  • by 김정란 기자
05:51

모두가 사회혁신을 말하지만, 사회혁신은 한 분야의 전문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기관, 시민단체 등 본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들이 있지만, 이들만의 힘으로는 진정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던 기업들도 자선 방식의 사회공헌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교나 연구기관도 연구 결과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현장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기업, 민간단체, 학교, 기관 등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국에자이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회사다. 일본에 본사를 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전문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다보니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취업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회사 소개를 들어가 봤더니 여러 설명 끝에 "'MEDICO SOCIETAL INNOVATOR' 여러분의 많은 지원을 기대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의약품 회사에서 왜 '의학적 사회 혁신가'를 모집한다는 것인가? 이 회사의 내부 활동을 들여다보면 궁금증을 풀 수 있다.

한국에자이는 hhc(human health care)라는 철학을 내걸고, 의약품 개발과 환자들의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환자의 병을 고치는 약뿐 아니라 환자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해결한다는 것이다. 인지저하 어르신을 위한 워크숍, 질병이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개발 등 한국에자이에서는 올해에도 환자들이 경험하는 40개의 주제를 정해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민·산·학·연·관이 연대해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툴인 '리빙랩'을 통해 '온랩', '나우(나를있게하는우리)사회혁신네트워크(이하 나우)' 같은 사용자 중심 공동창조 작업 플랫폼을 만들어 사회혁신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 서정주 부장은 한국에자이의 이런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십여 년 인사 관련 일을 하다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사회적인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대표님이 회사에 다니면서 해보라고 권하셨다"고 했다. 그 후 약 1년간 일주일에 3일은 회사를, 2일은 비영리조직 설립을 위해 일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에자이 본사에서 hhc를 강화하면서, 환자들과의 공감활동을 독려해왔던 회사와 서 부장의 개인적 소망이 접점을 찾게 됐다. 에자이는 '근무시간의 1%는 환자와 함께 보내라'며 독려해왔다. 2013년, 본사에서 hhc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서 부장은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했다. 서 부장은 "마음속에 소셜, 가치에 대한 불꽃이 있지만, 누르고 살던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장님을 포함해서(웃음)." 그 생각은 맞았다. 내부에 이에 대한 공감이 있는 '키 퍼슨(key person)'들을 모아 2015년에 혁신을 위한 TF팀을 만들었다. 자선활동이 아닌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의미부터 명확히 했다. 그렇게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한국에자이 혁신룸에는 지식창조이론이 벽면에 붙어있다. 공동체를 통한 지식창조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라이프인
▲ 한국에자이 혁신룸에는 지식창조이론이 벽면에 붙어있다. 공동체를 통한 지식창조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라이프인

나우는 나이가 들어도 장애나 질병이 있어도 나답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고 있는 네트워크다. '모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창작활동을 진행한다. 서 부장은 "피스앤그린보트(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NGO 피스보트가 운영하는 국제연대 크루즈 프로그램)를 탄 적이 있다. 당시 배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공동 창작과정에서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느낀 바가 많았다"라고 했다. 나우에서도 공동 창작활동을 통해 치매 어르신, 뇌전증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툴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우에는 '네트워크'라는 이름대로 다양한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비영리조직도 있고, 일반 영리기업도 있고, 사회적경제조직도 있고, 치매안심센터와 같은 공공기관도 참여한다.

나우와 협력하면서 한국에자이의 주도로 시작된 암생존자 리빙랩 온랩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범할 예정이기도 하다. 한국에자이는 여기에 법인조합원으로 참여한다. 일반기업이 사회적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에 없는 일이다. 온랩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암생존자 전문 컨설팅 사업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 나우 활동 중 룰루랄라합창단 공연 모습. 1기 박인선님(왼쪽 아래)이 공연 중 완치된 사실을 공개해 축하하고 있다. 뒷열 오른쪽이 서정주 부장. ⓒ한국에자이
▲ 나우 활동 중 룰루랄라합창단 공연 모습. 1기 박인선님(왼쪽 아래)이 공연 중 완치된 사실을 공개해 축하하고 있다. 뒷열 오른쪽이 서정주 부장. ⓒ한국에자이

나우와 온랩은 한국에자이가 참여하지만, 질병을 경험한 당사자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봐왔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직원들이 참여해 '봉사활동', '자선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경험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사회로, 일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단순히 잠깐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참여한 사람이 성장하는 활동을 기획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자이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과 나우, 온랩 활동은 참여자의 성장을 돕는다. 나우의 활동 중 한국하와이문화협회 등이 같이 협력해 만든 '알로하하하'는 훌라춤을 배우면서 인지, 정서, 신체 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치매 유병자나 예방차원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원래 암 경험자로 구성된 룰루랄라합창단에 참여하던 분들이 강사 자격증을 따 전국을 돌며 활동하고 있다. 질병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른 질병 경험자를 돕는다는 점에서 공감이 극대화되고,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의 CSR이 단순 자선활동이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 본연의 의미를 찾아가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면 한국에자이의 이런 활동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쉽고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종종 의심의 눈길을 받을 때도 있다. 서 부장은 "이전에는 회사에서 '우리가 NPO(Non Profit Organization, 비영리조직)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반대로 연대하고 싶은 비영리조직 등에서는 '기업은 태생부터 다르기 때문에 뭔가 얻을 것이 있지 않고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눈빛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했다. 결국 이런 오해를 풀어준 것은 진정성과 공들인 시간이다. 서 부장은 "오랜 기간 진심을 다하다 보면, 우리의 뜻을 받아 들여주실 때가 온다"고 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사회가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진정성과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그로 인해 서로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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