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논의가 탄력을 받는 가운데, 행정·재정 체계 전반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지가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11월 13일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는 국회와 학계, 지방정부 및 민간 생태계가 함께 앞으로의 구조 개편 방향을 모색했다. 논의의 중심에는 정책 총괄로서의 행정안전부 역할을 강화하고, 지역 현장에서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집행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자리 잡았다.

 

▲ (왼쪽)김동아 의원, (오른쪽)최혁진 의원. ⓒ라이프인
▲ (왼쪽)김동아 의원, (오른쪽)최혁진 의원. ⓒ라이프인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김동아 의원은 "사회연대경제가 시장 안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마중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본법 통과의 시급성을 언급했다. 그는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현행 지원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혁진 의원은 정부조직 개편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정부조직 개편은 초기 단계가 아니면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안에 관련 입법 과제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지방선거가 본격화되기 전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또한 사회연대경제 지원 기능이 여러 부처에 분산된 구조가 현장의 혼선을 키운 만큼, 정책총괄 기능을 행안부가 맡고 다른 부처와의 연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제와 토론에서는 정책 추진체계, 지역 기반 통합지원체계, 민간 생태계 강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강민수 한국사회연대경제 상임이사는 역대 정부의 사회연대경제 추진체계를 정리하며, 현재 대통령실과 중앙부처에 사회연대경제를 전담하는 공식 창구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책 방향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민간과 지역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강 이사는 사회연대경제 정책을 '주요 정책 의제'와 '생태계 관점'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향후 3~5조 원 수준의 사회연대경제 재원을 안정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전국·광역 기반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광역 집행체계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회연대경제원이 설립될 경우 민간위탁하는 방식이 지역별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산 축소 문제도 비중 있게 논의되었다. 행안부 사회연대경제국 예산 53억 원, 협동조합 예산 31억 원 수준으로는 활성화가 어렵다는 현장의 공감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 이사는 별도 집행체계가 없는 기재부의 협동조합 예산을 지금처럼 고용부 산하 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맡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에 분포한 중기부의 지원 인프라를 활용해보는 실험적 운영 방안도 제안했다.

▲ 깅민수 상임이사(왼쪽 두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라이프인
▲ 깅민수 상임이사(왼쪽 두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라이프인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성기 성공회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제도화와 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 현장에서 제기하는 요구를 의제 중심 정책 설계, 민간 네트워크 활성화, 복권기금 등 신규 재원 도입으로 정리하며, 현장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중간지원조직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야별 특화 조직을 육성하는 방향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설계된 사회적금융 모델을 다시 가동하는 것이 현장의 금융 접근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김성기 연구교수(오른쪾 두번째). ⓒ라이프인
▲ 김성기 연구교수(오른쪽 두번째). ⓒ라이프인

 

토론에서는 지역 기반 정책 집행의 현실과 중앙 추진체계 설계 간의 간극이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장은 지역화폐와 중간지원조직이 결합해 작동하는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 수요 중심의 권역별 중간지원체계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읍과 고창이 공동으로 운영했던 사례를 통해 지역 간 연대 모델을 제시했다.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김영식 사무국장은 기본법의 연내 처리가 지방선거를 앞둔 정책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구매 활성화를 막는 법적 제약을 지적하며, 지역 기반의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지방정부의 사회연대경제 지원 기능은 경제진흥, 복지, 일자리 등 여러 부서에 걸쳐 있어 실제 집행은 복합적"이라며, 중앙-광역-기초의 수직 구조보다는 기초 중심의 수평 구조가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전국협동조합협의회의 김대훈 사무총장은 협동조합 관련 예산의 지속적인 축소를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 마지막 예산 수준까지 회복된 뒤에야 안정적인 정책 집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료처럼 급하게 주고 급하게 키우는 방식은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며 단기 성과 중심 정책의 폐해를 언급했다.

김현하 아이쿱생협연합회 본부장은 생협이 돌봄·의료·공제 등 공공적 기능을 확대해 왔으나, 공정위 관할이라는 제도적 제약으로 육성 방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협의 공공적 역할을 인정하는 정책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는 자조기금 확대, 관계금융 실증 등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자본 접근성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사다리 설계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법적 근거 마련과 전문인력 양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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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이날 토론회는 정책 총괄 부처로서 행안부의 역할이 정해진 가운데, 지역 기반의 실행력과 민간 생태계 확대를 위해 추진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공유된 자리였다. 금융 접근성 개선, 민간 네트워크 강화, 권역별 집행체계 구축 등 실제 성장 조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며 사회연대경제 생태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기본 방향이 그려졌다.

 

기본법과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점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사회연대경제의 다음 10년을 설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였다. 지역의 현실과 민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사회연대경제 추진체계가 어떤 형태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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