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개막한 '2025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에서는 지방정부와 중앙부처, 공공기관,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해 지역 인구 변화, 지역 불균형, 생활 기반 정책 등 복합적인 지역 의제를 하나의 프레임에서 다루고 있다. 전시·컨퍼런스·정책 논의가 아우러진 이번 엑스포는 '지역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구성됐다.
그중 11월 20일에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방분권과 기본사회 학술대회'는 기본사회 비전을 제도·정책 차원에서 논의하는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기본사회는 돌봄, 주거, 의료, 노동, 환경처럼 삶의 기본 조건을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재구성하자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 학술대회가 다룬 '기본사회'는 단순히 중앙과 지방정부의 권한 조정이 아니라, 일상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유지되는 방식을 지역에서 새로 만들자는 장기적 구조 전환 논의였다.
행사는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그는 기본사회를 한국 사회의 '대전환' 전략으로 위치시키며, 시장과 가족에만 맡겨져 온 삶의 기반을 공공성과 참여를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기본사회는 복지제도 보완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이 함께 새로운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제시됐다.
이어서 진행된 기조발표에서는 영국 University of Bath 명예교수 Ian Gough와
New Economics Foundation 수석연구원 Anna Coote이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UBS)의 개념을 설명했다. UBS는 국가가 재정을 책임지고 지역 공동체와 시민사회, 협동조합이 서비스 공급을 담당하는 혼합형 모델이다. 교통, 돌봄, 의료, 교육 같은 기본생활서비스를 지역 기반 구조로 보편화하는 방식으로, 중앙-지방-지역공동체 간 역할 재편이라는 기본사회 비전과 정확히 맞물린다.
총론 발표에서는 기본사회가 단순한 복지 확충이 아니라 국가·지방정부·지역공동체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관점이 제시됐다. 은민수 고려대학교 학술연구교수는 특히 저출생 시대의 대응 전략이 더 이상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지역이 삶의 현장에서 실질적 실행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본사회가 저출생 문제를 '인구 대책'이 아니라 돌봄·주거·일자리·생활서비스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적 접근으로 본다는 점을 짚으며, 이러한 변화가 지방분권의 강화와 맞물릴 때 비로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지역의 순환 구조와 분권이 성장의 조건이자 기본사회로 가기 위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가 지속가능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내부의 자원 이용 방식과 공동체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처럼 기본사회의 구조와 방향성이 제시된 뒤, 학술대회의 중심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 모델을 실제로 실행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로 향했다. 기본사회가 지역에서 작동하려면 그 기반을 구성하는 조직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세션 4'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 증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를 주제로 한 세션 4에서는 기본사회 논의 중 가장 실질적이면서도 현장성을 심도있게 다뤘다. 좌장은 정무권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 세션은 '지역 기반 기본사회'를 실제로 움직이는 단위가 사회연대경제라는 점을 실증연구와 사례를 통해 보여줬다.
첫 번째 발표에서 한상일 연세대학교 교수는 '사회적경제, 주민자치 그리고 공동체의식: 한국 10개 지역 실증적 분석'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경제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일수록 주민 간 신뢰도가 높고,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며, 지역 의제에 대한 참여도 역시 높게 나타났다. 공동체 기반의 공공성이 단순한 이상이나 원칙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확인된 것이다. 기본사회가 지역 기반 모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연구를 통해 뚜렷해졌다.
두 번째 발표는 강호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가 맡았다. '분권과 자치 공동체 사례: 제주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에서 그는 제주가 어떻게 사회연대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왔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지역의 생활 기반을 어떤 방식으로 지탱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협동조합·마을기업·사회적기업이 마을계획과 생활SOC 운영, 지역 돌봄, 환경·자원순환 같은 일상적 영역에서 실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소개됐다.
행정이 다루기 어려운 생활 기반 과제에서 주민 주도의 의제 설정과 실행을 연결하는 주체가 사회연대경제라는 점도 강조됐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조직이 보조금 지원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 설계와 운영 과정에 참여하는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 역시 의미 있게 제시됐다. 이 발표는 기본사회가 지역 단위의 서비스 체계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리한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박진영 대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본부장, 김종빈 더함 에스더 부대표, 이경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가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사회연대경제가 기본사회 실현의 핵심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구조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공과 지역 조직이 안정적으로 협력할 구조를 만드는 일, 지역 간 역량 격차를 줄이는 일, 공동체 조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이번 지방시대 엑스포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지역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조건을 재정렬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 행사였다. 기본사회는 사람들의 일상적 서비스와 관계를 바탕으로 실현되는 만큼, 지역의 역량과 공동체의 기반은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세션 4는 기본사회라는 이론적·제도적 논의를 실제 지역의 생활 구조와 연결해 보여준 자리였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갈수록, 사회연대경제와 지역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에 대한 논의가 더 깊어질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