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기본법을 둘러싼 논의가 이제는 법 제정 여부를 넘어, 법 이후의 실행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로 이동하고 있다. △기본소득당 사회연대경제특별위원회 △전국협동조합협의회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공동주관하고, △한국사회연대경제 △전국광역사회적경제지원센터협의회 △김영배‧복기왕‧용혜인‧윤종오‧정태호‧차규근‧한창민 국회의원 등이 공동주최한 '이재명 정부 사회연대경제 정책 제안' 마지막 토론회가 11월 18일 국회에서 열렸다.
지난 1차 토론회는 법·제도·행정의 교차점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의 방향을 짚었고, 2차에서는 지속가능한 자금 흐름을 만들기 위한 금융 구조 전환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은 앞선 두 논의를 잇는 마지막 회차로, 기본법 시대의 비전과 실행 조건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자리였다.
(1차 토론회 기사 : 법제·세제·행정의 교차점에서, 협동조합의 방향을 묻다 < 사회연대경제 < 기사본문 - 라이프인)
(2차 토론회 기사 : 자금 조달의 구조 전환, 사회연대경제의 다음 과제 < 사회연대경제 < 기사본문 - 라이프인)
행사는 김경민 한국사회연대경제 상임대표와 하승창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두 사람은 이번 시리즈가 기본법 이후의 생태계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어 복기왕 국회의원이 "올해 안, 늦어도 내년 초까지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며 방향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발제자인 김형미 전 한국협동조합학회장은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놓여 있고, 자산·레버리지 중심 구조와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성장 전망이 밝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특히 개념의 정리가 중요하다며, 국내에서 혼용되어 온 '사회적경제'와 '사회연대경제'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연대경제는 단순히 기존 사회적경제 조직을 묶는 개념이 아니라, 장애인 사업장·공익법인·비영리 민간단체·지역 공동체 조직까지 포함하는 더욱 넓은 범주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이미 이 확장된 정의를 정책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김형미 전 학회장은 기본법 제정을 '흩어진 정책 범위를 정합화하는 첫 단계'로 평가했다. 다만 법이 생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부처별로 나뉘어 있는 정책과 예산을 행정안전부가 실제로 조율하고 통합할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연대경제발전위원회 같은 구조가 만들어져도 뒷받침이 없다면 논의만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드러냈다. 그럼에도 행안부가 자치·분권, 비영리법인, 지방공기업, 주민자치 등 사회연대경제와 연관된 자원을 폭넓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원들을 전략적으로 결합할 경우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제시했다.
또한 김 전 학회장은 사회연대경제가 지향해야 할 비전으로 '지역기반 접근'을 특히 강조했다. 해외에서 확산 중인 도넛경제나 재생도시 전략처럼 생태적 한계를 고려한 정책 흐름은 결국 지역 단위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를 기본사회 구상과 연결해 지역 삶을 두텁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정현 명지대학교 교수는 기본법 제정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한국 사회연대경제가 직면한 현실적 제약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그는 먼저 사회연대경제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를 둘러싼 '최대주의·최소주의' 논쟁을 설명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폭넓은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제도·재정·현장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네 가지 법인격의 건강 상태가 취약한 점, 주무부처가 분산돼 있는 구조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정책 주무 부처 변경에 대해서도 기대와 제약이 동시에 언급됐다. 이 교수는 행안부가 사회연대경제와 연관된 다양한 정책 자원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실제로 이를 사회연대경제 전략과 어떻게 결합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지방공기업·새마을금고 등 행안부 산하·연계 조직을 지역 사회연대경제의 파트너로 활용하는 구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달체계의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제기됐다. 그는 광역·기초 간 편차가 크고 위탁·직영 방식도 제각각인 현재 체계로는 일관성이 부족하며, 중간지원조직의 경험과 역량이 수평 이동하며 축적되는 구조가 약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연대경제가 읍·면·동 단위까지 확산되려면 이런 전달체계를 재구성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국가 성과지표가 매출·고용 등 외형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역 공동체 기여도와 주민 삶의 질을 반영하는 새로운 지표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지역과 현장의 조건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박진영 전국광역시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협의회 정책실장은 개별 창업·기업 중심 지원으로는 연대·협력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공동창업, 소비자·후원자 조직 확대, 가치사슬 기반 결합 등 사업 내부에서 연대가 실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역순환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수의계약 중 절반 이상이 지역 밖에서 충당되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오경아 평택시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은 경기도 내 시군 간 예산·역량·운영 방식의 편차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민간위탁 비율이 낮고 실행 역량 차이가 커 전달체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역 특성에 맞춘 전략 수립과 기초 단위 예산의 실제 작동 여부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종 오늘이음 이사는 공공구매 영역에서 사회연대경제기업의 비중이 낮다는 점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했다. 여성기업·장애인표준사업장 등과 비교했을 때 사회연대경제기업의 우선구매 실적이 낮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방구매 시장이 100조 원, 보조금까지 포함하면 150~160조 원에 이르는 만큼, 사회연대경제가 자신들의 실제 규모와 위치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그에 맞는 공공구매 전략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김영식 사무국장은 기초단위 행정의 현실을 지적했다. 사회연대경제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1명뿐인 지자체가 많고, 정책 이해도와 추진 의지의 편차도 크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그는 의지가 있는 지자체를 우선 지원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곳은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본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있음을 언급하며, 현장 역시 법 제정을 위해 입장을 모으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계획도 소개됐다. 행정안전부 박원재 지역사회혁신TF 팀장은 행안부가 주무부처로 공식 발표되기 이전부터 이미 2026년 예산 편성과 법안 준비를 병행해왔다고 설명했다. 민간위탁 영역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우대하는 논의, 부처별로 흩어진 예산을 통합 관리하는 방안, 지역이 먼저 계획을 세우고 상향식으로 집행하는 구조 등 향후 방향이 소개됐다. 사회연대경제원의 업무와 위치에 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했다.
또한 토론회에 참석한 서민금융진흥원 이재영 원장은 지금까지 서민금융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음을 설명하며, "사회연대경제의 금융 분야와 접점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속토론회는 기본법 제정을 앞둔 시점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어떤 비전과 실행 구조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점검한 자리였다. 1차에서 제기된 제도 환경, 2차에서 논의된 자금 흐름, 그리고 이번 회차에서 드러난 지역·현장의 실행 조건이 맞물리며, 기본법 이후 '사회연대경제의 시대'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가 한층 선명해졌다. 법 제정이 출발점이라는 인식 속에서 ▲범위 설정 ▲부처 간 조정 ▲전달체계 재구성 ▲공공구매 구조 개선 ▲지역순환경제 전략 등 선결 과제가 동시에 제기된 만큼, 앞으로 이 논의들이 실질적인 실행 계획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건으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