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로 출범한 한국사회연대경제가 올해로 13년을 맞는다. 김경민 상임대표와 강민수 상임이사는 최근 3년이 "조직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다시 묻게 만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예산이 줄고 정책 창구가 좁아지며 일부 조직이 연합체를 떠났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간을 한국사회연대경제는 소멸의 초입이 아니라 '전환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사회연대경제 분야의 대표성을 자임하고 유지하며, 조직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13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두 사람을 만나 지난 흐름과 향후 방향을 들었다.
1.0을 지나 2.0으로, 무엇이 달라졌나
김경민 상임대표는 2년 전 취임 당시를 "생존과 투쟁이 동시에 필요했던 시기"로 돌아봤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과 거버넌스 체계가 흔들리면서, 그동안 쌓아온 정책 파트너십은 사실상 끊겼다. 그는 그 시기를 "기반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자율성과 정체성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외부 조건은 나빠졌지만, 안에서는 "누가 왜 남아 있는가"를 확인하며 결집이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강민수 상임이사는 지금을 "1.0에서 2.0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1.0은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사회적경제의 흐름이다. 협동조합의 해를 전후로 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이 빠르게 늘어났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사회적경제가 정책 파트너로 부상하며 제도화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기를 "역량 대비 과대평가된 시기"로 본다. 현장 기반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기대와 역할만 커지면서, 내부와 외부의 불균형이 누적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은 무엇일까. 강 상임이사는 "1.0이 일자리와 조직 유형 중심이었다면, 2.0은 사회문제와 미션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돌봄, 주거, 식과 의, 에너지, 지역소멸, 기본소득, 지역금융 같은 의제가 중심이 되고, "어떤 조직이냐"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부문'에서 '의제·미션'으로 전환
이름을 '한국사회연대경제'로 바꾸고 새 BI·CI를 준비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과거 연합 구조가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기업·부문을 기준으로 엮였다면, 이제는 의제와 미션을 기준으로 조직을 다시 세우고 있다.
현재 내부에는 돌봄, 에너지, 지역순환 세 개의 특별위원회가 운영 중이다. 돌봄 특위는 돌봄체계 전환과 관련된 법·제도 및 현장 논의를 이어가고 있고, 에너지 의제는 캠페인과 국회 대응 등을 통해 사회연대경제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지역순환 특위는 사회책임조달, 푸드 시스템, 지역금융,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깊게 가져가고 있다. 김경민 상임대표는 이를 두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미션을 중심에 둔 연합체인지 형상화해 대중에게 선언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강민수 상임이사는 "이제는 한 기업이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 기반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경제부처 중심이 아니라 행정안전부처럼 지역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부처 중심 전환의 의미도 짚었다.
대표성을 '부여받는 조직'에서 '자임하는 정치적 대표체'로
대표성에 관해 묻자, 두 사람은 "정부로부터 대표성을 부여받은 적이 없다"는 말부터 꺼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사회적경제는 공식적인 정책 파트너로 인정받았지만, 이는 정부가 필요할 때 선택하는 관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김경민 상임대표는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저비용 민간 활용 구조로 본 시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보조금과 위탁, 중간지원조직 중심 구조가 확장되면서, 자발성과 자조성이 약해지는 부작용도 함께 쌓였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예산과 제도가 급격히 정리되면서, 오히려 자율성이 회복되는 역전이 일어났다. 남아 있는 조직들이 스스로 방향과 역할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강민수 상임이사는 한국사회연대경제를 "사회연대경제의 정치적 대표체"라고 규정했다. 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부문 대표성을 넘어, 시민사회와 마을공동체, 다양한 업종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대표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사회적경제박람회'는 이런 대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원래 정부 주도로 진행되던 이 행사가 여러 여건 속에서 공백 위기에 놓였을 때, 한국사회연대경제가 주최를 자임하며 행사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사회적경제 운동의 성과를 모으는 자리를 비워둘 명분이 없었다. 그 기세를 정부도 누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행사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전국 규모로 정책을 제시하고 항의하며 연대하는 주체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재정, 향후 의제, 그리고 13주년 행사
조직의 재정과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회비와 개인 후원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용역·위탁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업 후원 중심 구조가 자율성과 민주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재정위원회 신설과 내부 인력 확충도 논의 중이다.
향후 10년의 핵심 의제로 두 사람은 돌봄, 기후·에너지, 순환사회, 데이터와 AI, 그리고 청년을 꼽았다. 돌봄사회 기반과 주거가 정의로운 기후전환의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 아래, 돌봄과 주택 의제를 중심에 두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지역의 공익 데이터와 의제 데이터를 생산·축적하는 능력이 앞으로 사회연대경제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오는 21일,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창립 13주년 기념 후원행사’는 이런 변화와 방향을 한데 모아 드러내는 자리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행사에서 새 이름과 비전, 로고, 특위 중심의 의제 구조를 공식적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사회연대경제가 어떤 미션을 중심에 두고, 누구를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로 설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김경민 상임대표는 "민주주의와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기반이 사회연대경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강민수 상임이사는 "기업과 부문을 넘어 시민사회의 보편성을 품는 대표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티며 준비하는 시간은 지나갔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13년의 궤적 위에서 이제 두 번째 시작으로 도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