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된다. 철강 등 6개 품목에 대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만큼 비용이 부과되는 제도로, 글로벌 탄소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기업·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관세처럼 상품 가격이 올라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정이 일단락된 상황에서도 '탄소 무역 시대'라는 거센 흐름에 대응할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국제 온실가스 산정·보고·검증(Measurement · Reporting · Verification, 이하 MRV)을 위한 글로벌 표준·지침이 공식 번역돼 국내 기업들의 수출과 공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제 기후환경 NGO인 (사)푸른아시아가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계약을 맺고 '온실가스 프로토콜(Greenhouse Gas Protocol, 이하 GHG프로토콜)' 공식 한국어 번역본을 발간했다.

 

▲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_번역본 표지. ⓒ푸른아시아
▲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_번역본 표지. ⓒ푸른아시아

 

GHG프로토콜은 온실가스 MRV를 위한 글로벌 표준으로, 총 7개 표준(Standard)과 10개 지침(Guidance)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가장 먼저 번역된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Corporate Accounting and Reporting Standard, 이하 기업 표준)'은 기업이 배출량을 일관되게 산정·보고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핵심 문서다. 푸른아시아는 이 기업 표준을 시작으로 ▲Product Standard ▲Corporate Value Chain(Scope 3) Standard ▲Project Protocol 등 나머지 3개 표준과, ▲Scope 2 Guidance ▲Scope 3 Calculation Guidance ▲Agriculture Guidance ▲Avoided Emissions Guidance 등 4개 지침을 내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번역해 공개할 예정이다.

 

그동안 일부 국내 기업들은 자체 기준이나 국내 제도에 따라 온실가스 MRV를 시행해왔지만, 글로벌 탄소 장벽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제 온실가스 표준으로 인정받는 GHG프로토콜은 각종 탄소 규제와 지속가능성·ESG 공시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역시 GHG프로토콜을 핵심 기준으로 활용한다.

 

2024년 6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후 관련 공시(IFRS S2) 측정과 공시 요구사항에 GHG프로토콜을 사용하도록 명시했다. 영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도 GHG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이처럼 한국 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회계 공시에서도 GHG프로토콜 채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급망 전반의 간접배출을 포함하는 Scope 3가 국제적으로 강조되면서, 관련 번역본이 공개되면 국내 기업의 글로벌 요구 대응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GHG프로토콜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Scope 1(직접배출), Scope 2(구매한 전기·열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 Scope 3(공급망 전체 간접배출)로 구분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유엔환경계획(UNEP)은 최근 보고에서 2023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약 2.3% 증가해 역대 최고치인 577억 톤에 이르렀다고 밝히며, "온난화로 인한 인명·경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큰 폭의 신속한 감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 역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제시하고 있어,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통한 법적 구속력 강화 등 사회적 압력도 커질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에서도 해외 탄소 규제 대응이 탄소중립을 위한 경제구조 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된 바 있다. 정부는 탄소배출량 산정·감축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탄소 무역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온실가스 표준에 따라 산정·보고하지 않으면 수출·투자 등을 하는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의 실무 역량 강화가 시급하며,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1만 명 규모의 전문가 양성과 중소기업 지원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판카즈 바티아 WRI GHG Protocol 글로벌 디렉터는 "공식 한국어 번역본이 한국 사용자들이 글로벌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의미 있는 기후 행동을 지원하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 번역본은 푸른아시아 홈페이지(https://greenasia.kr)와 GHG프로토콜 공식 홈페이지(https://ghgprotocol.org/corporate-standard)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푸른아시아는 새로운 지침 개발에서 WRI와 파일럿 테스트·감수 등 협력해왔으며, GHG프로토콜 권리를 국내에서 보호하고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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