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에서 젊은 세대의 참여는 단순히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 확보"를 넘어, 운동의 지속가능성과 혁신성, 그리고 사회적 전환의 에너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이에 국제공정무역마을운동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육 과정 및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미래 세대의 주체적 성장을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명실상부 공정무역국가,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공정무역은 지역 공동체 중심의 시민참여에서 출발했다. 2013년 '공정무역국가(Fair Trade Nation)' 인증을 받은 이후, 학교·대학·교회·지방정부가 참여하며 시민 주도형 연대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말라위, 르완다, 페루 등 생산자 공동체와의 협력도 긴밀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공정무역 전문기업 저스트 트레이딩 스코틀랜드(Just Trading Scotland)가 말라위에서 수입·유통하는 '킬롬베로(Kilombero)' 쌀이다. 스코틀랜드 최초의 공정무역 제품으로서, 단순한 수입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장기적 관계를 맺는 국제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 공정무역 말라위 쌀 '킬롬베로(Kilombero)'. ⓒTrue Origin
 ▲ 공정무역국가 스코틀랜드 2025 보고서. ⓒscottishfairtrade

 

 회복력 있는 공정무역, 저탄소 사회로의 진화

'공정무역국가 스코틀랜드 2025 보고서'는 브렉시트, 코로나19, 기후위기 속에서도 공정무역이 지속성과 회복력을 유지했다고 평가한다. 현재 32개 지방정부 중 22곳(69%)이 공정무역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시민의 공정무역 인식률은 97%에 달한다.

보고서는 향후 과제로 △청년층 참여 확대 △글로벌 사우스 생산자와의 직접 연대 강화 △공공조달에서의 공정무역 제품 구매 확대 △소규모 공정무역 기업 지원을 제시했다.

 

리빙랩: 지식의 공동생산과 청년 주체의 등장 

스코틀랜드의 청년들은 공정무역을 '착한 소비'가 아닌 기후행동과 젠더정의, 슬로우패션, 공정한 가치사슬의 철학으로 인식한다. 에든버러대학교(UoE), 글래스고 칼레도니아대학교(GCU), 세인트 앤드루스대학교(UoSA) 등은 '리빙랩(Living Lab)'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교수·생산자·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지식의 공동생산(co-creation) 모델을 운영한다.

학생 연구자들은 커피 생산지를 직접 방문해 토양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후적응 품종 실험을 기록한다. 이 연구는 말라위 커피협동조합(Mzuzu) 청년 농부들과 공동으로 수행되며, 혼농임업 커피 재배지의 토양 탄소량과 생물다양성이 일반 농지보다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 과정은 '현지조사(fieldwork)'를 교과과정과 연결한 실험적 학습이다. 또한 대학은 공정무역 커피·차·쌀 등의 구매가 농부 생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생산자와 온라인 회의를 이어가며 소비자 캠페인과 정책 개선안으로 발전시킨다. 대학이 곧 '행동 실험실'이 되는 것이다.

 

학생 선언에서 시작된 변화, 에든버러대학교

에든버러대학교는 2003년 학생회의 "캠퍼스 공정무역 지지 결의"로 출발했다. 2004년 공정무역대학 선언 후 카페·매점 전반에서 공정무역 제품이 확산됐고, 2018/19학년에는 약 290만 잔의 커피, 67만 잔의 차, 27만 개의 바나나가 공정무역 인증 제품으로 공급되었다.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부서는 조달팀과 협력해 노동권·환경 기준을 반영한 공급망 지침을 마련했으며, 대학은 'Students as Change Agents(변화 주체로서의 학생들)' 프로젝트를 통해 공정무역을 생활 속 행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학생들은 공정무역 지도 제작, 생산자 QR코드 정보 공유 시스템, 공정무역 앱 개발 등 디지털 기술 기반 실천 전략을 제안했다. 물론 이러한 청년들의 프로젝트 뒤에는 스코틀랜드공정무역포럼, 스코틀랜드공정무역도시네트워크, 트윈(TWIN) 등 NGO, 개발협력기구, 연구기관, 지자체 및 생산자조직 등 다차원의 협력이 촘촘히 자리잡고 있다.

 

창업 생태계와 공정무역의 만남

UoE의 창업지원센터 'Edinburgh Innovations'는 사회적·환경적 과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 창업을 지원한다. 가나 출신의 도르쿠스 아푸레(Dorcus Apoore)가 창업한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 ASIGE는 대표적 사례다. 2017년 당시 대학생이던 아푸레가 아프리카 가나 여성과 청년들의 경제적 역량강화를 위해 설립한 ASIGE는 코끼리풀(Elephant Grass)을 활용한 친환경 직조품을 생산하며, 7개 공동체 450명의 여성과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판매 수익은 지역 어린이 교육과 세탁 가능한 생리대 제공 등 지역사회에 환원된다.

아푸레는 에든버러대학교 비즈니스스쿨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정무역과 지속가능발전에 중점을 둔 사회적기업으로 확장했고, 스코틀랜드에 법인을 설립했다.  2024년 세계공정무역기구(WFTO) 정회원으로 인증받은 ASIGE는 "공정무역을 통한 글로벌 여성연대"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5 국제공정무역마을컨퍼런스 연사로 나선 그녀는 글로벌 협업을 통해 선도적인 공정무역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2025 국제공정무역마을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ASIGE 창업자 Dorcus Apoore. ⓒFTTI
▲ 에든버러대학교 창업지원센터 소개 홈페이지 속 아푸레 대표의 모습.
▲ 에든버러대학교 창업지원센터 소개 홈페이지 속 아푸레 대표의 모습.

 

세대교체가 만드는 지속가능성의 열쇠

공정무역운동이 새로운 시대의 의제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의 주체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들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조달시스템의 개선자이자 정책 제안자이며, 로컬과 글로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잇는 사회변화의 촉매자로 등장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대학들의 실험처럼, 공정무역의 가치가 한국의 대학과 청년 공동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와 모습으로 이어질 때, 공정무역은 다음 세대의 사회변화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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