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사경] 적절한 편리함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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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사경] 적절한 편리함의 아름다움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친환경 디자인 스튜디오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인터뷰
  • 2020.03.30 23:57
  • by 김정란 기자
06:08

 

▲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그레이프랩
▲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그레이프랩

그간의 기술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삶이 가져온 만족스러움에,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은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이 생각들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쓰레기 산, 플라스틱에 괴로운 해양생물들…지구가 더는 터전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을 봐주지 않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항목 13~15번(▲기후변화와 대응 ▲해양환경 보전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육상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전)은 그간 우리가 미뤄두었던 기후 변화에 대한 긴급조치, 해양, 육지 자원의 보존 노력 등을 담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인간과 지구,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한 기술은 없을까? 더는 미룰 수 없는 생각들을, 앞서 실천하며 전진하고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있다. 라이프인이 지구를 위해 뛰고 있는 기업들을 만나 지속가능성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편집자 주]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제품이 태어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환경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쉽고 편리한 방법의 유혹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스튜디오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한다. (코팅된 종이와 접착제를 쓰는)스티커를 붙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플래너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제본에 쓰는 본드를 생략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다 따지다 보면 정말 끝이 없다"며 웃었다.

그레이프랩은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현재 종이를 이용한 노트북 스탠드, 친환경 플래너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그레이프랩 제품은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이름다운, 따뜻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잡는다. 이곳의 디자인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직원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방송국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한정된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 일자리보다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이 좋아 당시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카카오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지금은 누구나 쓰고 있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업을 이끌었다. 그는 "당시 회사가 이제 막 시작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이말년, 강풀 등 웹툰 작가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면서 이모티콘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그레이프랩의 대표 제품인 종이 노트북 스탠드.
▲ 그레이프랩의 대표 제품인 종이 노트북 스탠드. ⓒ그레이프랩

회사가 커지면서 오히려 경험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작아졌다고 생각한 김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또다시 새로운 경험을 선택했다. 영국으로 날아가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인테리어, IT계열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여러 분야를 접하는 와중에 친환경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유학 당시에는 제3세계 여성들이 자신이 만든 제품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왜 네 아이디어에는 모두 기술이 들어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생겼다. 김 대표는 "나는 잘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나는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는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기술을 하나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편리한 고도의 기술보다 '적정 기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종이는 친환경적이면서도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고, 가벼운 원재료다. 종이접기(오리가미)에 대한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고, 종이가 형태에 따라 상당한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것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새 나무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재생지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7년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종이독서대를 내놓았고, 이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상당했다. 펀딩을 올려놓고 10분 정도 나갔다 온 사이에 이미 목표를 넘어서고 있었다." 친환경과 발달장애인들과의 협업이라는 소셜미션과 아름다운 디자인이 더해진 제품에 소비자들이 공감했던 것.

▲ 그레이프랩 제품들. 다양한 재생지가 사용되고 있다.ⓒ그레이프랩
▲ 그레이프랩 제품들. 다양한 재생지가 사용되고 있다.ⓒ그레이프랩

그레이프랩의 미션은 친환경뿐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디자인 작업은 물론 생산 작업에도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학 후 김 대표는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장애인들을 2년 정도 지켜봤다. "그때 그들의 표현이 출중하기보다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보니 표현이 순수했다. 덕분에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던 내가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면서, 유학 당시 그가 논문으로 다루기도 했던, '포도송이 이론', 즉 열매가 커지면 송이 자체가 커지면서도 그 옆에 또 다른 포도송이가 생기는 것을 비유한 이론에서 따온 '그레이프'와 실험실이라는 의미의 '랩'을 더한 이름을 사명으로 선택했다.

현재 그레이프랩 제품 디자인에 참여하는 발달장애 직원들의 임금은 수익배분 형태로 지급된다. 카카오 재직 당시 경험 때문이었다. "이모티콘 개발 초창기인 데다 당시는 웹툰작가들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을 때였다. 회사가 작가들에게 큰돈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작가들에게 처음부터 많은 돈을 줄 수 없어 수익배분 형태를 선택했는데 이게 잘되니 회사도 잘되고, 작가들도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걸 보고 이렇게 양쪽이 모두 잘 되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레이프랩 직원들, 특히 발달장애인들의 임금은 수익배분 뿐이 아닌 다중구조로 이루어진다. 디자인은 수익배분 형태로 받고, 제품을 접는 일에 참여한 부분은 시급 형태로 지급하는 식이다.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버는데 이게 여러 겹이 되도록 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에 참여하는 직원들이 사회성이 발달하는 효과도 있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레이프랩에서 내놓는 제품들은 하이테크놀로지보다 '적정기술'을 지향한다. 당장 엄청나게 편리하기보다 더 지속가능한 기술을 고민한다.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태양광조명 '페이지라이트' 등 새 제품도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기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인 태양열을 이용하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에 중점을 뒀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면서 해외에서도 그레이프랩의 제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 등 해외 작가들과의 디자인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레이프랩의 '지(g)로고'를 보면 '아~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구나, 사회를 생각하는 디자인브랜드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소셜밸류만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를 강화한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모든 플라스틱을 못 쓰게 하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도 편리할 수 있다는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제품을 바꾸어가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김 대표와 그레이프랩은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편리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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