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심가득] 사회는 왜, 어떻게 돌봄을 되돌아보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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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심가득] 사회는 왜, 어떻게 돌봄을 되돌아보게 됐는가
  • 2024.04.12 18:00
  • by 조명아(충남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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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러운 돌봄 되돌아보기

최근 돌봄 이슈와 관련하여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론장에 퍼지고 있다. 특히 돌봄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전과 달리 더욱 대두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구성원이 돌봄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것은 '새삼스럽게' 이번뿐만은 아니다.

사회 제도가 구성되고 재편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돌봄에 주목하고 재정비해 왔다. 예를 들어 노인장기요양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목적으로 2008년부터 시행한 사회보험제도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자녀가 '효'로써 부모(노인)돌봄을 수행해 왔던 책임을 사회와 나누게 된 것이다.

노인돌봄뿐만 아니라 아이돌봄도 사회가 그 몫을 나누기 시작했다. 2015년 근로자(로 명시되어 있으나 사회적 인식에서 아이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의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직장생활과 임신·출산·육아를 포함한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정부 제도(규제, 지원금, 서비스 등)가 추진됐다. 육아 또한 가정, 특히 여성의 어머니 노릇(mothering)에서 조금은 벗어나 사회가 관여하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노인돌봄에서 아이돌봄까지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이 확립되면서 한국 사회는 지속적으로 돌봄에 관심을 갖고 제도적 정비를 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물론 위에 언급한 제도들을 비롯해 한국 사회의 돌봄 제도와 인식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시행착오도 발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돌봄과 관련해서 제도적 정비를 하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 만하다. 그렇다면 향후 돌봄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일지, 돌봄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 이 시점에 이전과는 다르게 접근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 돌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최근 주목한 '돌봄 관점'은 이전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돌봄 관점과 어떠한 점이 다르고, 왜 변화하게 되었는지, 그 요인을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의 사례를 통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그동안 앞서 언급한 노인이나 아이와 같은 '돌봄 대상자' 위주의 논의가 많았다면, 이제는 요양보호사와 같은 돌봄노동자, 가족돌봄청년, 퀴어돌봄, 공동체 돌봄 등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더욱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돌봄자인 당사자들이 인구·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해 당사자성이 확대됐으며, 또 이들이 공론장에 나와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가족돌봄의 경우를 보자. 저출생, 초고령화, 비혼화와 만혼화, 핵가족화 등 불가피한 인구 구조 변화는 돌봄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서비스와 관련 제도가 있어도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돌봄 수요 변화 및 증가를 충족하기에는 아직까지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가족 내 돌봄은 불평등하게 분담되기 때문에 개인에게 부담되는 돌봄의 몫은 늘어나게 된다.

■ 가족돌봄청년을 통해 본 돌봄의 새로운 시각

▲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 자료 갈무리.
▲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 자료 갈무리.

앞서 언급했듯이 돌봄을 바라보는 시각의 초점이 돌봄 대상자에서 돌봄자로 변화한 요인을 '가족돌봄청년'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중장년기에 가족돌봄을 수행한다는 기존의 인식과 달리 청년기에 돌봄을 수행한다는 측면을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집단이 보여주며, 한국 사회의 청년 세대야말로 사회 구조의 변화를 표상적으로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중장년이 되었을 때 사회가 직면할 돌봄 과제 또한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돌봄 담론이 변화한 요인으로는 첫째,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초고령화로 인해 노인돌봄이 증가하게 됐다. 그리고 증가한 노인 돌봄을 수행하는 존재가 중장년기 자녀와 그 손자녀인 돌봄청년이다. 돌봐야 할 노인은 증가하고 돌볼 수 있는 가족원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돌봄 부담은 증가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가족돌봄청년이 어떠한 경로와 과정을 겪든 돌봄 대상자가 조부모인 경우가 다수였다고 나타났다.

둘째, 저출생으로 인해 형제자매 수가 감소했다. 이 변화는 앞서 설명한 첫 번째 요인과 연결되는데 돌봐야 할 노인은 늘어나는 데 반해,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 당시 6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이 1980년에는 2.83명까지 낮아졌으며 1990년에는 1.57명을 기록했다. 이 통계 수치는 현 청년 세대에 있어 한 명당 돌봐야 할 가족원의 수가 상당히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대가족체제 내에서 형제자매들이 돌봄의 몫을 분배했다. 하지만 핵가족화된 오늘날, 형제자매 수가 적거나 외동인 가족돌봄청년은 부담해야 할 돌봄의 몫이 늘어났다. 형제자매 수, 즉 가족원은 돌봄 대체 인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 여전히 가족에 의존해서 돌봄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실태를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금 더 논의를 확장하자면, 합계출산율이 0.72명까지 떨어진 상황에서(2023년 기준) 지금의 청년 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 가족 돌봄의 몫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임을 시사한다.

돌봄 담론이 변화한 세 번째 요인은 돌봄으로 인해 생산, 재생산에 지장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생산은 일자리를, 재생산은 출산을 의미한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대다수 국내외 연구들이 지적하는 문제 또한 이 지점에 있다. 가족돌봄청년들이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본인보다 아픈 가족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학업, 취업, 직장, 연애와 결혼 등은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사적인 문제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 '돌봄이직(개호이직, 나이든 부모를 간병하면서 직장생활 등을 병행하기 힘들어 일을 그만두는 현상)'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언급될 만큼 공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돌봄이직 제로'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밝히기도 했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경제 활동(생산)과 출생(재생산)을 수행할 청년 세대가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게 될 경우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실 또한 크다. 한국 사회에서도 과거 '개인사'로 여겼던 돌봄이 이제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 돌봄을 취약계층 지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진단과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제 돌봄 대상자 중심의 관점에서 돌봄자 중심으로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변화할 수밖에 없고, 변해야만 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돌봄에 대한 주목은 급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다시 한번 돌봄을 돌아봐야 하는 시대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돌아볼 때는 기존의 관점이 아니라 시류에 맞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

▲ 조명아 씨. ⓒ라이프인
▲ 조명아 씨. ⓒ라이프인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돌봄 담론이 변화하게 된,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요인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으나, 실상 모든 요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가족돌봄청년이라는 특정 집단의 사례를 빌려서 설명했지만, 돌봄 문제는 성별, 연령, 계층 등과 무관하게 한국 사회 모두가 직면한 문제다.

각 요인들마다 해결 방안은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 돌봄을 변화된 사회·문화 구조에 맞춰 재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이성애를 바탕으로 한 결혼 제도를 통해서 어머니(여성), 아버지(남성)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제도와 사회서비스는 '정상가족'이라는 단위와 틀에 얽매어 있다. 돌봄도 당연히 정상가족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즉, '가족이 있다=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는 전제로 사회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돌볼 사람이 줄더라도 가족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 구조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 인력이 돌봄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돌봄을 제공하게 될 가족원이 어리거나 젊어서 자신의 삶과 돌봄을 양립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아가서, 가족이라면 반드시 돌봄을 제공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영 케어러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돌봄 대상자 중심이었던 사회 제도에서 '가족돌봄청년'이라는 돌봄자의 사회적 호명이 생긴 것 또한 돌봄자 중심으로 관점이 변화하게 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과거만 하더라도 아픈 가족원을 돌보는 아동, 청소년, 청년을 소년소녀가장, 또는 (조부모 돌봄 시) 조손가정 등으로 호명했다. 이러한 호명은 돌봄자 중심으로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없었기 때문이다.

또, 가족돌봄의 이상적인 제공자는 정상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여성, 특히 출산과 육아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인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상 가정에는 어머니가 있고, 여성이 있고, 배우자와 자녀가 있다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임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가족돌봄을 여성 외의 다른 가족원이 주돌봄자로서 수행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가족돌봄청년이 주목받게 된 요인에는 2019년 출간된 영 케어러 에세이(『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와 2021년 발생한 '간병 살인' 여파도 있음을 무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돌봄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돌봄자 스펙트럼의 확장이 진행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중심의 서비스를 넘어 돌봄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돌봄하고 누구나 돌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또, '생활동반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수행하는 돌봄이나 퀴어 돌봄, 마을공동체 돌봄 등 돌봄 영역을 다양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돌봄은 누구나 받아 왔다. 하지만 돌봄을 주는 행위는 상당히 불평등하고 편향적으로 수행되어 왔다. 이제는 누구나 돌봄을 받았다면 누구나 돌봄을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인구·사회 구조가 변화한 시류에 맞춰 돌봄을 되돌아본 지금,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돌봄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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