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의 투자자가 되는 날, '2025 사회적가치투자대회'가 열린다. 희망제작소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설계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부르며, 이 무대를 통해 그들의 도전을 시민과 함께 응원한다. 라이프인과 희망제작소는 대회에 참여하는 15명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실험이 품은 질문과 변화를 기록한다. '소셜디자IN'은 세상을 바꾸는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상력을 깨우는 여정이다. [편집자 주]

 

누구도 쉽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길이었다. 잘 팔리지 않는 플리마켓, 무너지는 천장, 사라지지 않는 편견, 서울로 가라는 끝없는 질문들. 그럼에도 이만수 대표는 떠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 그 낭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그를 지역에 붙잡아두었다. "대화를 통해 오해가 이해로, 편견이 발견으로 바뀌는 공간을 만들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순간, 오래된 여관 건물은 '대화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 대화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만남과 대화는 모두 한 사람의 의지에서 시작된 변화의 풍경들이다.

1920년대 여관이었던 대화장은 오랫동안 방치돼 고양이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레인메이커협동조합 멤버들은 그 낡은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이 대표는 건물의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고, 멤버들은 "여기서 대화의 장을 열자"고 결심했다. 이후 코로나19로 '대화 금지'라는 문구가 걸려 있던 시기였음에도 이 공간은 '대화를 회복하자'는 상징적인 선언과 함께 문을 열었다.

 

▲ 레인메이커협동조합에서 영상을 제작 중인 장면. ⓒ희망제작소
▲ 레인메이커협동조합에서 영상을 제작 중인 장면. ⓒ희망제작소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은 원래 '영상창업동아리'가 뿌리였다. 2011년 주식회사, 2013년 협동조합, 2014년 마을기업을 거쳐 지금의 조직 구조를 갖추었다. 팀은 모두 대구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었다. 서울로 가는 것이 당연한 선택처럼 여겨지던 시절, 그는 "굳이 떠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경쟁하지 않아서 두려운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그런 질문 자체가 무례하다고 표현했다. "여기가 내가 살아온 곳이니까"라는 단단한 이유가 그의 선택을 떠받쳤다.

대구에서의 첫 실험은 김광석 길에서 시작된 '소셜마켓'이었다. 당시에는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거리였고, 월세 13만 원짜리 작은 작업실의 환경도 열악했다. 하지만 플리마켓을 오가며 만난 지역 청년 창작자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작품을 만들어도 주말에만 팔 수 있고, 투잡을 뛰어야 하는 구조였다. 그는 "우리 같은 청년들이 많아야 지역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2013년 직접 자립예술공간 소셜마켓을 열었다. 작가 100여 팀의 물건을 매일 판매하며, 판매 수익의 15%만 수수료로 받는 방식이었다. 힙합 공연·전시·시민운동 기록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러나 공간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주인과의 갈등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교보문고 핫트랙스와 협업한 공간에서는 잘 팔리는 작가의 작품만 따로 판매되는 불공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4개의 공간이 연이어 문을 닫았고, 적자는 모두 영상 제작으로 메워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기 위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셜마켓을 코로나19 전까지 꾸준히 끌고 갔다.

 

▲ 대화장 간판. ⓒ희망제작소
▲ 대화장 간판. ⓒ희망제작소

대화장은 이러한 지난 시간 위에서 탄생했다. 공간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햇살이 스며드는 살롱, 누군가의 거실 같은 홈스윗홈, 셀프사진관, 전시 공간, 예식 공간 등 서로 다른 분위기의 다섯 개 장소로 구성돼 있다. 모두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달 '안녕, 낯선 사람'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 인디뮤지션, 드랙아티스트,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관객 50명은 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한다. 이 장면들은 '만남의 광장'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시각장애인 혜경 씨와 래퍼의 대화 영상은 23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은 거창한 논쟁이 아니라, "듣고 나면 마음이 촉촉해지는 이야기"로 기록된다.

 

대화클럽도 이 대표가 가장 애정을 갖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클럽을 제안하면 함께 모집해 운영한다. 영화 <화양연화> 분석 클럽, 편지 클럽, AI 클럽 등 매 기수마다 8개 안팎의 창작적 시도가 이어진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환장 페스티벌'은 하루 동안 공연·발표·토크가 이어지는 축제 같은 날이다. 그는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지역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는다.

대화장은 예식장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10년 연인의 관계를 이어오던 두 남성이 "하루만큼은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결혼식을 하고 싶다"며 이 공간을 선택했던 순간은 이 대표에게 깊게 남아 있다. 그는 "퀴어든 아니든, 누구든 결혼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공장식 결혼식이 아니라, 하루 동안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대화장의 목표다.

 

▲ 레인메이커협동조합 이만수 대표. ⓒ희망제작소
▲ 레인메이커협동조합 이만수 대표. ⓒ희망제작소

 

그는 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금씩 바뀌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대화는 불을 켜고 끄듯 즉각적인 변화를 만들진 못하지만, 미움으로 연대하는 문화를 넘어서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믿는다. 매출은 2022년 8억, 지난해 10억이었지만 공간 유지 비용이 커 남는 것은 많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특히 공익 단체·문화예술단체와 함께하는 일이 많아 최근의 경기 상황은 더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B2C를 확장해 더 많은 시민이 대화장을 찾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만수 대표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대화장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고치려는 태도 대신, 듣고 나면 세상이 넓어지는 경험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 경험 하나가 또 다른 경험을 낳고, 그 작은 변화들이 시간이 쌓여 도시의 결을 바꾼다고 믿는다. 대구의 오래된 여관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여전히 느리지만 분명한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대화장이 켜놓은 작은 불빛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는 오늘도 새로운 대화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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