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의 투자자가 되는 날, '2025 사회적가치투자대회'가 열린다. 희망제작소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설계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부르며, 이 무대를 통해 그들의 도전을 시민과 함께 응원한다. 라이프인과 희망제작소는 대회에 참여하는 15명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실험이 품은 질문과 변화를 기록한다. '소셜디자IN'은 세상을 바꾸는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상력을 깨우는 여정이다. [편집자 주]

 

서울 성수동의 호텔 객실에서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 버려지는 침구들이 있다. 통으로 폐기되며 매립·소각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가 배출되는 산업 구조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의식주의 윤태이 대표는 이 '보이지 않는 폐기물'을 도시 안에서 다시 순환시키는 실험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시작한 사람이다. 폐기물 처리의 끝단에 머물던 호텔 폐침구를 '자원화의 첫 단계'로 끌어올리고, 그 과정을 시민·아동이 함께 경험하는 환경 교육으로 연결해 '순환경제가 지역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소셜디자이너다.

 

윤 대표가 처음 문제를 정의한 지점은 분명했다. "폐섬유는 재활용 시스템이 미비해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됩니다. 이 문제를 정보로서가 아니라, 교육과 체험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버려지는 자원이 '어떻게 다시 쓸모로 변환되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순환경제라는 말이 공허해진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환경 오염과 교육 격차라는 서로 다른 문제를 하나의 구조로 묶어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 윤태이 대표(오른쪽)가 포코 호텔에서 침구 수거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 윤태이 대표(오른쪽)가 포코 호텔에서 침구 수거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의식주의의 중심은 호텔 폐침구를 '리사이클링 펠트'라는 신소재로 재탄생시키는 기술이다. 직접 수거한 폐침구를 세척·가공해 재생 펠트로 만들고, 이 소재를 기반으로 교육 키트와 생활 제품을 제작한다. 북커버·키링·슬리퍼 같은 제품은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들며 순환의 원리를 체득하는 도구가 되고, 완제품 판매는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예요. 폐기물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바뀌는 경험을 기억하게 되니까요." 윤 대표의 말처럼, 의식주의는 환경 교육을 지식 전달이 아닌 '가치 체험'으로 설계한다.

 

이 모델의 중요한 지점은 모든 과정이 지역 안에서 닫힌 순환고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동구는 호텔·제로웨이스트샵·공공시설 등 ESG 기반이 촘촘한 지역이고, 의식주의는 호텔포코 성수, 베러얼스, 공공복합청사 '아이꿈누리터' 등과 협력하며 자원 수급부터 교육 실행까지 지역 단위의 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폐기물 제공–소재화–교육 키트 제작–교육 운영이 한 지역 안에서 연결되면서, 성수동은 자연스럽게 '순환경제 실험지'의 성격을 띠게 됐다.

성과 또한 분명하다. 폐자원을 업사이클링한 공정 전환을 통해 환경적 편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교육·제품화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인정받고 있다. 재생 펠트를 활용한 교육 키트는 지역 아동센터와 학교에서 꾸준히 사용되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현장 기반 교육 프로그램은 ESG 모델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환경교육 강사 활동을 연결하는 구조는 지역사회 참여 기반을 넓히고, 교육–일자리–환경 가치가 하나의 선순환으로 묶이도록 만든다.

▲ '의식주의'의 환경 교육 현장. ⓒ희망제작소
▲ '의식주의'의 환경 교육 현장. ⓒ희망제작소

 

의식주의가 '기술 기반 순환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폐침구 리사이클링과 관련해 총 5건의 특허와 4건의 디자인 등록을 보유하고, 자체 연구소 '미닝랩'을 운영하며 소재 개발을 고도화하고 있다. 단순 업사이클링 수준을 넘어 기능성과 내구성을 갖춘 신소재를 연구하는 방식은, 자원 순환 분야에서 차별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지역 안에서의 실험이 기술을 견고하게 합니다. 현장에서 쓰여야 하는 기술이어야 하니까요."

 

확장 가능성 또한 뚜렷하다. 성동구에서 완성한 '호텔–업사이클링 기업–교육 파트너' 모델은 구조적으로 복제 가능하다. 호텔 밀집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고, 지자체 공공구매 품목으로 등록돼 아동센터·학교로 정기 공급되는 ESG 교육 모델로 성장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재생 펠트 기술을 호텔 폐침구를 넘어 대기업 재고 직물, 산업 폐섬유 전반으로 확장해 '섬유 폐기물 처리의 대안 기술'로 자리잡는 것이 의식주의의 다음 목표다.

▲ 윤태이 대표(가장 오른쪽).ⓒ희망제작소
▲ 윤태이 대표(가장 오른쪽).ⓒ희망제작소

 

윤 대표는 이번 SIR 대회 신청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가 만든 모델이 단발성 협력이 아니라, 지역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고민할 동료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SIR을 선택했어요." 각 지역의 자원·문제·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성을 이해하는 소셜디자이너들과의 교류가 다음 단계의 임팩트를 만드는 데 필수라는 판단이다.

성수의 작은 제로웨이스트샵부터 호텔 객실, 아이들이 모이는 교육 공간까지. 의식주의가 잇는 '지역 안의 순환선'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버려질 운명이던 침구가 펠트가 되고, 키트가 되고, 미래 세대의 손끝에서 다시 한번 새 역할을 찾아가는 순간들. 이 일련의 변화가 모두 눈앞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순환경제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지역에서 시작되는 실천'임을 보여준다.

윤태이 대표는 말한다. "모든 폐섬유가 다시 자원이 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 변화는 지역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이프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