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의 투자자가 되는 날, '2025 사회적가치투자대회'가 열린다. 희망제작소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설계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부르며, 이 무대를 통해 그들의 도전을 시민과 함께 응원한다. 라이프인과 희망제작소는 대회에 참여하는 15명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실험이 품은 질문과 변화를 기록한다. '소셜디자IN'은 세상을 바꾸는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상력을 깨우는 여정이다. [편집자 주]
조치원역에 내리면 오래된 전통시장과 낡은 간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종시의 원도심인 조치원읍은 지난 10년간 인구가 5천 명 가까이 줄고 평균 연령은 6살이나 오른 곳이다. 대학은 두 개나 있지만 청년들이 머물 만한 일자리와 문화, 주거 기반은 부족하고, 버티던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청년희망팩토리사회적협동조합 강기훈 이사장은 이 현실을 '인구 감소'가 아니라 '지역을 지탱하는 청년의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로 보았다.
강 이사장은 지역 곳곳에서 들려오는 "조치원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말에서 반복되는 정서를 발견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떠나라"는 조언이 당연시되고, 비교와 박탈감이 일상이 되는 분위기. 그는 이 감각을 '지방열등감'이라 불렀다. 지방은 뒤처져 있고, 여기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체념. 그 대신 "이곳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곧 '지역효능감'을 만들어내는 일을 청년희망팩토리의 미션으로 삼았다.
2017년, 지역 청년들과 함께 "왜 우리 동네를 떠나는 걸까?"를 이야기하던 모임이 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 "우리가 노는 물은 우리가 만든다"는 슬로건에는 이곳에서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같이 살아갈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후 협동조합에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사회만 2년 동안 17번을 열어 구조와 목표를 재정립했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 수는 8명까지 줄었다가 지금은 41명으로 회복했다. 강 이사장은 "임시방편으로는 지역 문제도, 조직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는 걸 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청년희망팩토리가 세운 가장 상징적 실험은 '네스트빌딩'이다. 조치원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4층 건물을 청년희망팩토리가 직접 매입해 운영 중인 세종시 1호 민간 청년허브다. 많은 이들이 시가 위탁한 공간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청년 주도의 지역자산화가 진행 중인 장소다. 네스트빌딩은 단순한 작업공간을 넘어 청년들이 지역 문제 해결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이어가는 거점이다.
네스트는 하나의 건물에서 '캠퍼스'로 확장됐다. 청년희망팩토리는 조치원여행자센터, 제이커먼즈, 문화공방 등 유휴공간 세 곳을 무상 위탁받아 운영하며 '네스트캠퍼스'를 구축했다. 지자체가 큰 예산을 들여 만들고도 운영 주체 부재로 방치되던 공간들을 주민과 청년의 생활 플랫폼으로 바꾼 것이다. 네스트캠퍼스를 이용한 주민과 청년은 연간 약 5,700명, 15개 청년팀과 25개 로컬 브랜드가 여기서 활동한다. 매년 2,40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 안에서 나온 정책 제안 11건이 실제 시정에 반영됐다. 활동 참여자 가운데 67명의 청년이 새롭게 지역에 정착했고, 2019~2024년 조합원 매출은 약 12억8천만 원을 기록했다. 지역효능감 지표는 참여자 기준 65.8% 향상됐다.
강 이사장은 청년 정착을 '유입–참여–정착'의 세 단계로 본다. 1단계는 취향 기반 커뮤니티로 구성된 세종청년네트워크(세청넷)이다. 글쓰기, 사진, 음악, 게임 등 프로그램을 통해 또래를 만나고 지역을 경험하는 가장 낮은 문턱이다. "이곳에도 나 같은 청년이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2단계는 청년희망팩토리다. 조합원 자격을 '세종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 사업자·프리랜서'로 제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직업이 지역에 있어야 비로소 정착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의 장벽, 네트워크 부족을 해소하며 구직·창업으로 이어진 사례가 늘어나자 청년들은 "이 지역에서도 나만의 성취를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됐다.
마지막 3단계는 설계 중인 민간 지역재단이다. 앞선 단계를 거친 청년들이 후원자·재단 구성원·지역의 선배로 역할을 이어가며, 다시 다음 청년에게 자원을 돌려주는 구조다. 그는 "청년이 몇 년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려면 지역 안에서 재투자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익 구조 역시 '조합의 성장'보다 '조합원 개인의 지속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주요 수입은 조합원 회비, 후원금, 시설 사용료, 그리고 조합원들이 프로젝트팀을 꾸려 수행하는 용역 사업이다. 연 매출은 약 4억 원이지만 조합 자체 영업이익은 1~2천만 원 수준이다. 강 이사장은 "조합의 덩치를 키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청년 한 명 한 명이 자기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희망팩토리는 네스트빌딩 외에도 주민거점시설을 위탁 운영한다. 수익은 크지 않지만, 청년이 지역과 함께 잘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본다. 초기에는 "청년들만 혜택을 본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꾸준한 운영과 협업을 통해 지금은 지역에서 신뢰가 쌓였다.
강 이사장이 꿈꾸는 사회는 '마을캠퍼스'다. 대학 캠퍼스처럼 한 지역 안에서 세대와 업종이 연결되고 서로의 삶을 배움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사회. 동네를 걸으면 선배들의 가게가 있고, 후배들은 그 사례를 자연스럽게 배우며 자란다. 청년은 지역에서 커리어를 쌓고, 이후에는 재단이나 후원자로 연결된다. 그는 "세대가 지역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머무는 그림이 곧 지역효능감이 일상이 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이번 2025 사회적가치투자대회(SIR)에는 조치원에서의 실험을 시민 앞에 공개하고, "우리 지역에서도 해보고 싶다"는 동료와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나섰다. 강 이사장은 "떠나는 게 정답인 도시가 아니라 머무는 게 당연한 도시, 지방열등감을 떠나보내고 지역효능감으로 사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