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의 투자자가 되는 날, '2025 사회적가치투자대회'가 열린다. 희망제작소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설계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부르며, 이 무대를 통해 그들의 도전을 시민과 함께 응원한다. 라이프인과 희망제작소는 대회에 참여하는 15명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실험이 품은 질문과 변화를 기록한다. '소셜디자IN'은 세상을 바꾸는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상력을 깨우는 여정이다. [편집자 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신도시의 빼곡한 아파트 사이로 여전히 논밭이 남아 있는 도농복합 지역이다. 젊은 세대가 빠르게 유입됐지만, 노인복지시설과 문화공간은 거의 없다. 도시는 팽창했지만, 관계는 오히려 더 단절된 상황이다. 그곳에서 윤서우 대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끊어진 연결을 다시 잇고 있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돌봄'의 진심이 깃든 일상은 조용히 마을을 바꾸고 있다.

"돌봄은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내 가족과 이웃의 문제"라고 윤서우 대표는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 관계의 맥을 되살리는 사회적 실험이다.

▲ 윤서우 대표. ⓒ희망제작소
▲ 윤서우 대표. ⓒ희망제작소

 

윤 대표는 원래 청소년 상담교사였다. 하지만 교통사고와 부모님의 치매 진단이 겹치면서, '돌봄'이 자신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돌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꺠달았다고 전한다. 

동료들과 함께 어르신을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선의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그래서 2022년, '오늘도봄날'을 창업했다. "중장년 동료들이 가진 전문성과 열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돌보며 일할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터전을 만들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전한다. 

서울시50+재단의 인생학교, LH의 신중년 창업 프로젝트를 거치며 '돌봄이 곧 도시 재생'이라는 관점을 세웠다. 오늘도봄날의 방향 역시 '지역 안에서 나이 들어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돌봄 구조'로 명확해졌다.

윤 대표의 첫 번째 실험은 '이웃더하기 안심돌봄 마을만들기'였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주민이 직접 참여해 돌봄 공백을 메우고,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을 돌봄 모델이다. 그녀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협력해 30~40명의 주민을 돌봄활동가로 양성했다. 2인 1조로 구성된 활동가들은 자신이 사는 단지를 직접 돌며 문을 두드린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던 분들이, 이제는 '우리 동네의 안전망은 내가 만든다'고 말한다"며 사업 효과를 전한다. 

이웃더하기는 단순한 복지 사업이 아니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가 돌봄의 주체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고독사나 긴급 입원을 조기에 발견해 사회적·의료적 비용을 줄였고, 무엇보다 마을 안에 다시 '신뢰의 언어'를 되살렸다. 이 모델은 민관 협력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으며, 고양시장상을 수상했다.

 

치매 예방을 넘어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교육

윤 대표는 돌봄의 본질을 교육으로 확장하여 2년 동안 '굿레시피' 워크북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니어가 스스로의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며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치매 예방 교재 대부분은 아이들용 학습지를 변형한 형태다. 하지만 실제로는 치매 전 단계의 어르신이 훨씬 많아, '기억을 훈련'하기보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굿레시피는 펜과 종이로 그리는 드로잉 활동을 통해 주의력·공간지각·소근육 움직임을 살피며 인지 능력을 자연스럽게 진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는?" 이런 질문을 통해 어르신들은 스스로의 삶을 말하기 시작한다.

▲ 굿레시피 워크북. ⓒ희망제작소
▲ 굿레시피 워크북. ⓒ희망제작소

"그 순간 표정이 바뀌고, 목소리에 힘이 생겨요. 돌봄은 병을 돌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일임을 느낍니다." 윤 대표가 직접 느끼는 변화다. 이 교재는 서울시50+재단의 '노인인지케어단', 안산대학교의 '시니어케어매니저' 교육과정에서도 활용되며 현재까지 50여 명의 중장년 강사가 현장에 재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윤 대표는 "배움이 일로, 일상이 돌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주민이 돌보는 마을, 시민이 투자하는 사회

오늘도봄날은 지난 3년간 '민간 중심 돌봄 생태계'의 가능성을 입증해왔다. 고양시의 공공 인프라가 미치지 못한 구도심과 외곽 지역에서 시민이 주체가 되는 '관계 돌봄'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웃더하기 사업을 통해 형성된 주민 네트워크는 고립과 우울로 고통받던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응급상황 조기 발견으로 의료비 부담을 줄였다. 무엇보다 '돌봄은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윤 대표는 "효율보다 관계를 우선하는 현장의 힘이 진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행정과 민간, 주민이 함께 만드는 공공-시민 복지 구조. 그것이 오늘도봄날이 지역에서 일궈낸 가장 큰 성과다.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AIP(Aging in Place, 지역에서 나이 들어가기)' 기반의 민간형 돌봄 플랫폼을 고양시 모델로 구축하고, 경기 북부와 남원 등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도시형과 농촌형 돌봄의 간극을 좁히고,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안전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대학, 복지기관, 사회연대경제 조직과의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치매예방 및 돌봄활동가 포럼', '중장년 커뮤니티' 조성 등 지속 가능한 관계망을 기반으로 공공과 민간을 잇는 협의체도 준비 중이다.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

 

"몸이 아파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살아 있구나'를 느끼고 싶은 분들이 계세요. 그 마음을 지켜드리는 게 진짜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봄날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는 '시니어의 건강한 나이듦을 통한 사회적 선순환'이다. 시니어를 단지 도움받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세우는 일. 그 변화가 세대 간의 벽을 낮추고,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기획 / 라이프인×희망제작소 [소셜디자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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