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노력하는 부모인데 왜 아이들은 점점 지쳐갈까?"

책의 원제는 도발적이다. '고학력 부모라는 병' 저자 나리타 나오코는 일본의 임상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례를 토대로, 부모의 높은 학력이 아이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보통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부모들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 역할을 둘러싼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이가 보통만 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은 요동친다. '완벽한 부모가 놓친 것들'(김영사, 나리타 나오코)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드는 책이다. 일본의 소아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나리타 나오코는 임상 사례를 통해 고학력 부모들이 흔히 빠지는 양육의 함정을 진단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일본만의 상황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현실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2019년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고교 졸업자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70.4%였다. 같은 해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56.6% 수준이었다. 또 지난해 뉴스위크는 한국의 고등교육 참여율을 약 76%, 일본은 61%로 집계했다. 이러한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부모'의 비중이 일본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드러난다. 치열한 입시와 경쟁 문화 속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 부모들에게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김영사
ⓒ김영사

 

저자가 지적하는 고학력 부모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불안은 간섭으로 이어지고 △말과 행동의 괴리가 모순을 낳으며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통제하는 맹목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나는 욕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이가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양육 태도는 자녀의 자율성과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며, 겉으로는 순응적이고 모범적인 아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작은 실패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서 있게 한다. 최근 교사들이 겪는 과도한 민원이나 학부모의 간섭 역시 이런 양육 패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한다.

책은 잘못된 조기교육의 실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 살 아이에게 삼각함수를 가르치고, 좌절을 모른 채 성장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작은 실패에도 회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등장한다. 이는 지금 한국에서 회자되는 '4세고시', '7세고시' 같은 현상과 겹쳐 읽힌다. 뇌 발달은 '몸의 뇌, 마음의 뇌, 생각하는 뇌' 순서를 따르는데, 이를 무시한 교육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걱정에서 신뢰로

책을 번역한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라이프인 이사장)는 유튜브 채널 가든패밀리에 출연해 "부모 역할은 걱정에서 신뢰로 가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의 시선이 감시가 아닌 '응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평가하거나 통제하는 눈길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딸이 현미경으로 벌레를 관찰하던 장면에서 처음에는 "공부도 안 하면서"라는 화가 치밀었지만 잠시 멈추어 아이의 호기심을 따라가자 대화가 이어지고 새로운 배움의 순간이 열렸다고 한다.

▲ 유튜브 '가든패밀리' 화면 갈무리.
▲ 유튜브 '가든패밀리' 화면 갈무리.

또한 "온전함과 완벽함은 다르다"고 역설했다. 완벽은 모든 것이 갖춰져 100점을 의미하지만 온전함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부모가 실패담을 털어놓고 아이에게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 비로소 자녀가 자존감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아이와 함께 웃는 순간이 있는지, 부모가 스스로를 드러내며 유머를 나눌 수 있는지, 그런 일상의 경험이 자녀의 회복탄력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책은 부모에게 몇 가지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감정의 기복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한 태도,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는 시선, 허점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실패담, 작은 성적에 매달리기보다 인생의 큰 축을 세우는 기준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고학력 부모를 단순히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성실하고 이해력이 높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많다. 다만 이런 장점이 양육에서는 불안으로 전환될 때 아이를 옥죄게 된다. 저자는 이들이 아이를 신뢰하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할 때 비로소 즐겁고 충만한 양육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완벽한 부모가 놓친 것들'은 부모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아이를 내 성과의 대리인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이고, 걱정 대신 신뢰로 바라보는 순간 양육은 전혀 다른 길로 열릴 것이다. 완벽보다 중요한 것은 온전함이라는 메시지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조언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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