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곁에 있기'를 읽으며 가장 깊이 와 닿은 점은, 글쓴이들이 돌봄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돌봄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소진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공동 저자는 모두 오히려 돌봄이란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관계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한다. 돌봄은 그들에게 짐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책은 저자들이 실제로 겪은 다양한 돌봄의 상황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장혜영의 경험은 독립된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하는 조기현의 이야기는 돌봄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그 속에서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탐구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당사자로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는 리단의 서사는 돌봄이 단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과정임을 일깨운다.

또한 돌봄이 일방적이거나 희생적이라는 오해를 깨뜨린다. 척수장애인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백정연의 경험은 돌봄이 동등한 파트너십 안에서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는 돌봄이 단순히 약한 이를 돕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함께 나아가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박소영이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만들어가는 생태계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고선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별이라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관계를 지속할 힘을 발견한다.

 

ⓒ도서출판 동녘

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돌봄이 단순히 특정 대상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은 발달장애인, 인지 저하 환자, 신체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돌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아픈 동물이나 길고양이와의 관계에서도 돌봄은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돌봄은 특별하거나 희생적인 선택이 아닌 인간관계의 본질임을 새롭게 정의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들이 돌봄의 언어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돌봄 담론은 종종 가족이나 전통적 관계에 국한되거나, 시장화된 서비스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저자들은 돌봄을 인간 본연의 행위로 재정의하며, 이를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로 확장한다. 이는 돌봄을 특정한 상황에 한정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있는, '취약'하고 '부족'한, 세상의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과 애써 관계 맺는 일은 '이상한' '손해 보는' 일로도 여겨진다. 실질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에 가로막혀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먼저 지켜야 한다"며 그 관계를 끊거나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아프거나, 슬퍼하거나, 불편을 겪는 이의 곁에서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방법, 소진되지 않되 잘 도울 수 있는 방법, 고립되지 않으며 안전하고 확장되는 관계를 맺는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  [출판사 책소개 중]

또한, 책은 우리가 돌봄의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우울증이 있는 친구, 치매를 앓는 부모님, 장애를 가진 연인 등, 이러한 관계를 통해 저자들은 돌봄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돌봄의 과정은 완벽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고 성장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는 돌봄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 책은 돌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연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돌봄의 세계가 단지 취약함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취약함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못해낸 것'에 열중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것'에 더 열중하겠다. 어쩌다 한 번 화를 낸 것보다 화를 내지 않은 여러 날을 더 곱씹겠다. 이렇게 곱씹다 보면 어느새 의연한 마음이 자라나 있다. 

[조기현 '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파트 중]

책을 덮으며, 우리는 돌봄을 단순히 감당해야 할 짐으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돌봄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관계의 형태이며, 그것을 통해 삶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 책은 각자도생에서 잊혀져 가는 관계와 돌봄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들의 경험담은 돌봄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구체적인 지침이자 용기를 제공하며, 이미 관계 속에서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모두가 만들어 갈 새로운 돌봄의 세계를 향한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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