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 암(癌). 암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발병률과 사망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암을 비롯한 건강 불평등은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이에 라이프인은 암에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암 환우와 커뮤니티, 암 환우의 사회활동, 암 환우들의 문화·예술, 암을 가까이서 본 전문가들의 조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암과 삶을 바라본다. [편집자주]
인생 샷, 바디 프로필 촬영 등 현시대에 사진은 자기표현이자 자아실현을 알리는 수단이 됐다. 사진은 촬영 당시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암 치료 과정으로 외모 변화를 겪은 암 환우 일부는 사진 촬영을 꺼리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필 사진 촬영 작업을 자신의 심리 치유과정으로 삼은 암 환우들이 있다.
암 환우를 위한 비영리단체 '아미다해'가 암 환우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나;담음 프로젝트' 시즌2를 진행했다.
'나;담음 프로젝트'는 암 환우가 꿈꿔온 가장 '나'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프로젝트로, 사진모델인 암 환우가 자신의 사진 콘셉트를 직접 설정한다.
이번 시즌 2는 '치유의 숲'이라는 주제에 맞춰 사진 모델과 식물이 조화를 이루는 점이 포인트며, (사)바라봄사진관의 촬영 지원과 아미다해 회원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암 환우는 암 환우가 돕습니다'라는 아미다해의 슬로건에 걸맞게 이번 나담음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진모델과 스타일리스트, 정원사 모두 암 환우다.
삭발은 외부요인 아니라 내 선택에 의한 것!
세 번째 사진모델로 등장한 나미란 씨는 불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어릴 적 기독교 신자였으나 불상을 볼 때 마음에 위안을 얻게 됐고, 최근 집 문 앞에 진열해둔 불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다"며 자신의 사진 콘셉트를 설명했다.
자신의 삭발과 관련하여 "머리가 빠지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삭발이 선택지가 된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 선택에 의해 언제든지 머리를 밀거나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주변 친구들이 자신감 있게 드러내면 좋겠다. 나의 삭발로 인해 다른 환우들이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나는 왜 그때 이렇게 시원하게 밀지 못했을까? 멋있다!'라며 항암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도 나눴다"라며 주체성이 담긴 소신을 밝혔다.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나 씨는 "암으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죽기 전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고민했는데 '사진'이었다. 아플 때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사진 찍기를 피했는데, 최근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화상 작업이 치유의 중요한 과정 같다"라며 사진에 대한 소회를 나눴다.
그는 "차회 나담음 프로젝트에 사진작가로 참여할 계획"이라며 "사진을 찍고 찍히는 입장은 다르고, 환우의 경우 더 예민해지거나 긴장될 수 있기에 그 입장을 미리 경험해보고자 이번에 모델로 참여했다"라고 참여 동기를 말했다.
"환우의 사진을 그저 아프지 않은 예쁜 일반인처럼 보이도록 찍는 것이 아니라 환우의 몸과 마음 상태를 고려하고 모델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잘 담아내는 촬영을 하고 싶다"며 나담음 프로젝트 시즌3 사진작가로서의 포부를 전했다.
암 환우 스타일링? 느낌 아니까!
재즈 보컬, 일러스트레이터, 이미지 컨설턴트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N잡러 김예리 씨는 이번 나담음 프로젝트에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했다.
김예리 씨는 "나도 암 환자였다. 암을 경험하면 머리가 빠지는 등 외모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꽤 있으며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나담음 프로젝트를 통해서 환우들이 '나는 나대로 예쁘다'고 믿을 수 있도록 예쁘게 꾸며주는 작업을 함께 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며 참여 동기를 전했다.
환우들의 스타일링에서 제일 신경 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씨는 "메이크업 담당자의 취향대로가 아니라 환우 모델이 표현하고 싶은 본인의 모습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김 씨는 환우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각자의 '나다움'을 살리기 위해 사전에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시안을 제작하여 환우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환우들을 위한 스타일링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내가 나를 예뻐해야 한다.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방법 차원은 답이 아니다. 내가 나를 조금 더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내가 아팠어도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야'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듬어주는 것 자체가 스타일링의 시작"이라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식물의 강한 생명력이 암 환우에게 전해지길
암을 겪은 정원사 김연지 씨는 "식물이 가득한 정원에서 산책하다보면 치유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어 이번 촬영의 콘셉트를 '치유의 숲'으로 정했다"며 콘셉트 설정 배경을 설명했다.
김연지 씨는 "식물과 정원은 보살핌의 노동이 필요하지만 겨울 이후 갑자기 새싹을 돋아내듯이 식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정말 강하다. 나도 암 수술을 받고 치유해 나가다보니 '암 수술도 했는데 이거 못하겠어?'라는 마인드도 생겼다. 에너지 차원에서 식물과 소통하곤 한다"며 식물과 환우의 연관성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표현했다.
모델별 식물 선정방식에 대한 질문에 김 씨는 "아프고 나면 더 이상 타인과 사회에 맞추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 혹은 좋아하는 이미지나 분위기에 어울리는 식물로 선정하기 위해 모델에게 인상 깊은 영화 장면 또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에 맞는 느낌의 식물을 찾아 접근했다"고 답했다.
환우에게 좋은 식물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그는 "모든 사람이 잘 죽지 않는 식물을 원한다. 식물이 아플 때 그 부위를 과감하게 잘라낼 각오만 있다면 잘 키울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두려워하고 과보호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식물을 대할 때 조금은 대담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향기로 힐링할 수 있게 향이 진한 허브 로즈마리가 좋고, (선물로는)암 치료 과정에 있던 채혈을 연상시킬 수 있는 붉은 색의 식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나담음 프로젝트 시즌2의 촬영 사진은 2024년 달력으로 제작되며, 프로젝트는 시즌4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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