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우의 재기(再起)를 응원하는 '아장아장 걸음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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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우의 재기(再起)를 응원하는 '아장아장 걸음마켓'
암 환우 커뮤니티 '아미다해'가 주최·주관한 플리마켓 현장 취재 및 인터뷰
암 환우의 사회 활동 재개 독려
  • 2022.09.19 17:30
  • by 이새벽 기자

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 암(癌). 암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발병률과 사망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암을 비롯한 건강 불평등은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이에 라이프인은 암에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암 환우와 커뮤니티, 암 환우의 사회활동, 암 환우들의 문화·예술, 암을 가까이서 본 전문가들의 조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암과 삶을 바라본다. [편집자주]

 

▲ 아장아장 걸음마켓. ⓒ아미다해
▲ 아장아장 걸음마켓. ⓒ아미다해

지난 16일과 17일 양일간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라이프시맨틱스 건물 지하에서 암 환우들이 모여 플리마켓을 열었다. 판매자뿐만 아니라 운영진 또한 암 환우다. 플리마켓을 열고 진행하는 '아미다해'는 조진희 이사장을 포함한 운영진 5명 모두 암을 경험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전국구 암 환우들이 모여 큰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플리마켓의 이름은 '아장아장 걸음마켓'.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암 환우들의 플리마켓에 왜 이런 이름을 걸게 됐을까? 암 환우들이 여는 플리마켓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그 현장으로 들어가 암 환우들과 교류했다.  

▲ (좌)아미다해 조진희 이사장, (우) 아미다해 운영진. ⓒ아미다해
▲ (좌)아미다해 조진희 이사장, (우) 아미다해 운영진. ⓒ아미다해

먼저, 아미다해의 조진희 이사장과 그 운영진 조영란 이사, 손연경 감사를 만났다. 
조진희 이사장은 암에 걸린 당시 기업 대표이기에 고된 몸을 이끌고 직장생활을 강행했다. 발병 1년 만에 우연히 암 환우들이 모인 자리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조 이사장은 목 놓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조 이사장은 암 환우들의 모임과 교류에 힘썼다.  

Q. 어떻게 암 환우들의 플리마켓을 열게 됐나?
(조진희) 우리는 암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암 환우들에 대해 잘 안다. 암 환우들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아픈 원인을 찾아보곤 한다. 직장생활을 다시 하기보다 몸에 좋은 것을 직접 만들어 먹고, 운동이나 좋아하는 활동에 집중한다. 그렇게 어느새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그것을 통해 직업을 삼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 사업을 하게 될 때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등 유통방법을 잘 모른다. 그들에게 홍보와 판매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서 환우들의 플리마켓을 열기로 했다. 

(조영란) 암 환우들은 암을 겪고 난 후 사회에 다시 발을 디딜 때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정기·장기적인 항암 치료일정으로 직장생활이 어렵기도 하고, 취업 면접에서 암 환자라는 사유로 걸러지는 등 불이익도 많다. 그래서 개인 사업을 하는 분들도 많이 생긴다. 작년에 개인 사업을 하는 암 환우 한 분을 위해 소소하게 마켓을 한번 열었다. 마켓에 참석한 암 환우들이 판매와 구매를 떠나 서로 교류하며 힘과 위안을 주고받는 등 만족도가 높았다.

(손연경) 최근 아미다해가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전에 구상하고 작게 시도하던 것을 다시 펼쳐볼 수 있게 돼 이번에 다시 마켓을 열었다. 암 환우를 대상으로 판매자(Seller)를 모집했고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셔서 규모가 커졌다.  
 

▲ 아장아장 걸음마켓 판매 부스. ⓒ아미다해
▲ 아장아장 걸음마켓 판매 부스. ⓒ아미다해

Q. 아장아장 걸음마켓은 암 환우들이 연다는 점 외에 여느 플리마켓과 어떤 점이 다른가? 
(손연경) 암 환우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환우들에게 유용한 제품이 많다. 암 투병을 하면 신체 관련 제품을 조심하게 돼 친환경 제품을 선호한다. 기업 셀러로 참여한 '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는 암 환우가 써도 안전한 화장품을 판매한다. '나비푸드'는 요오드를 제한한 식품을 판매한다. '박피디와 황배우'라는 암 관련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암세이브 팔찌를 판매한다. 림프 부종이 있거나 림프를 절제한 사람은 그쪽 팔에 주사를 맞거나 혈압을 재거나 채혈할 수 없다. 암세이브 팔찌는 응급 시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 점을 빠르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영란)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환우들은 물건을 많이 파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 참여 자체에 의미를 많이 둔다. '내가 이렇게 사회에 한 발 더 내밀었구나!'를 체감하면서 "다음에도 또 열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럴 때 굉장히 뿌듯하다. 

(손연경) 아장아장 걸음마켓은 서로 도와 짐을 옮겨주는 등 협력하는 모습이 많다. 환우들은 몸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 점을 생각해 환경보호에도 관심이 많다. 마켓내부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종이가방과 텀블러를 가져오면 혜택을 주는 친환경 이벤트도 진행했다.  
 

▲ 암 환우 대상 활동 프로그램 홍보물. ⓒ아미다해
▲ 암 환우 대상 활동 프로그램 홍보물. ⓒ아미다해

Q. 암 환우를 위한 다른 이벤트나 프로젝트를 구성하거나 계획 중인 것이 있다면? 
(손연경) 아미다해는 이제 막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암 환우들로 결성됐기에 거창한 것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고자 한다. 
전에 암 환우를 단장하고 사진 촬영해 주는 프로젝트 '암티플'을 진행했다. 참여한 환우는 아름답게 변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아미다해 위드유(With you)'라는 제목으로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환우들이 시골에 모여 건강한 식사를 하고 훌라춤도 배우는 '치유밥상'도 기획 중이다. 대체의학에 종사하는 분들을 모시고 포럼도 진행할 예정이다. 
환우들은 암을 겪으면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점을 해결하고자 자조모임을 갖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환우들이 모여 독서, 걷기 등 다양한 모임을 가진다. 모임이 우리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게 리더들을 선정해 모임 진행방식을 가르치고 배우기도 한다.  

암 환우들의 활동과 계획을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투병 중인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들은 암 환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입을 뗐다.  

(조영란) 암을 겪으면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이 자신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어려움을 혼자 삭히며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밖으로 한 발 더 내디뎌보길 바란다. 환우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위안을 얻는다. 아미다해와 함께해 위안을 얻어 보라.  

(손연경) 밖에 나오지 못해도 우리가 이렇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 분들도 계시다. 나는 유방암 4기고, 폐에도 전이됐다. 여전히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아미다해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치료를 받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힘을 얻으시기도 한다.  

마켓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생식, 프로틴바, 비건빵 등 식품부터 수제 비누, 천연유래잇몸치약, 환우 전용 화장품 등 생활제품, 액세서리 등 다양했다. 그 중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이효선씨와 암 환우 전용 화장품을 판매하는 '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와 이야기 나눴다. 
 

▲ (좌) 이효선씨가 만든 악세서리 제품. ⓒ라이프인, (우) 힐랭햇 누리집 온라인 화면 갈무리. ⓒ힐링햇
▲ (좌) 이효선씨가 만든 악세서리 제품. ⓒ라이프인, (우) 힐랭햇 누리집 온라인 화면 갈무리. ⓒ힐링햇

이효선씨는 항암 가발과 모자를 판매하는 '힐링햇'의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먼저 유방암에 걸리신 어머니께 선물로 가발과 모자를 사드리면서 힐링햇을 알게 됐다. 1년 후 이씨에게도 암세포가 발견됐다. 본인이 사용할 제품을 구매하러 방문하던 차, 힐링햇 관계자로부터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항암 가발 모델을 제의받았다. 이에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며 미소 짓는 이씨. 이씨는 보석 귀금속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귀금속업계에 종사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일을 잠시 중단했고 최근 다시 시작했다. 

Q. 액세서리를 제작 및 판매하는데, 암 환우들을 위한 특별한 제품이나 활동이 있나? 
(이효선) 현재 암 환우를 위한 액세서리 개발을 연구 중이다. 병원 방문 시 바코드가 기록된 환자 카드가 필요하다. 그 카드를 사용해도 되긴 하지만 어르신 경우 카드 소지를 깜빡하거나 카드에 적힌 번호를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병원 환자 카드에 적힌 정보나 바코드를 팔찌나 목걸이에 적용하면 더 사용하기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말을 못하는 환자의 경우 더 유용할 것 같다. 그 환자를 대하는 병원 종사자도 더 수월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 (좌)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가 암 환우 전용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미다해, (우) 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 이정민 상임이사. ⓒ라이프인
▲ (좌)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가 암 환우 전용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미다해, (우) 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 이정민 상임이사. ⓒ라이프인

곧 유방암 2년 차에 접어드는 여성암건강관리예방협회 이정민 상임이사는 암 환우들의 니즈(Needs)와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Q. 암 환우를 위한 화장품은 일반화장품과 어떻게 다른가? 소비자 반응은 어떤가?
(이정민) 암 환우는 화장품 향기로도 호르몬 교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항암 치료는 정상세포까지 죽게 만들기 때문에 화학성분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줘야 한다. 그래서 샤워제품이나 샴푸 등 세정제도 화학성분을 최소화해 암 환우 전용으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환우들은 ‘이거 발라서 내가 또 다른 암에 걸리는 거 아니야?’하는 공포감이 있다. 나쁜 성분을 최대한 배제한 암 환우 전용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  

 

▲ 하나호우 알로하와 아이나훌라의 훌라춤 공연. ⓒ라이프인
▲ 하나호우 알로하와 아이나훌라의 훌라춤 공연. ⓒ라이프인

일반 및 기업 셀러들과 이야기하고 나니 형형색색 화려한 하와이안 의상을 입은 아리따운 댄서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호우 알로하'와 '아이나 훌라'팀이 여유 있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맨발로 훌라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면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 같으나 그들 역시 일부 암 환우다. 자발적으로 마켓에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제안했다는 재즈보컬 '그레이시'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춤과 노래 속에 환우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환하게 웃는다. 관객 몇몇은 눈물을 흘린다. 
 

▲ (좌)소방차 출신 김태형씨, (우)SBS 이석진 피디. ⓒ라이프인
▲ (좌)소방차 출신 김태형씨, (우)SBS 이석진 피디. ⓒ라이프인

공연이 끝난 후 1980년대 가요계를 이끌었던 인기 그룹 '소방차'의 김태형씨가 등장했다. 그는 히트곡 '그녀에게 전해주오'를 짧게 무반주로 부르고 춤을 추며 아미다해의 활동을 응원했다.  

이어 플리마켓 현장을 열심히 촬영하던 한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을 밝히며 인사한다. 지상파방송국 SBS 이석진 PD다. 그는 자신이 아미다해에서 자발적 재능기부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췌장암에 걸리고 투병생활을 한 그는 아미다해의 활동을 알고 감동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다가 평생 해온 영상 관련 일로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PD가 직접 영상을 촬영하진 않아 자신도 이참에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아미다해 유튜브에 직접 촬영 및 편집한 암 환우 활동 영상을 두 차례 올렸다. 자신처럼 암 환우들이 자발적 재능 기부로 암 환우 활동에 참여하고 알려져 더 많은 암 환우들이 위로받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 아장아장 걸음마켓 기념 사진. ⓒ라이프인
▲ 아장아장 걸음마켓 기념 사진. ⓒ라이프인

플리마켓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장내 사람들은 다 같이 한곳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들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니 암 환우들의 아장아장 걸음마가 잘 떼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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