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에 있다가 정계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몇 해 활동하고 나면 얼굴이 확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인상이 아주 나빠지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강연장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이구동성으로 호명되는 정치인들이 몇 명 있다. 원래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거나 방송 진행자로서 말솜씨가 뛰어나서 대중적인 호감을 얻었던 인물들이다. 외모도 준수하고, 이미지가 부드럽고 선하고 스마트했다. 그런데 정치인이 되고 나서는 점점 표정이 경직되더니 나중에는 아주 포악스러운 얼굴이 되어 버린다. 예전에 지니고 있던 매력은 오간 데 없고 흉측한 이미지로 바뀌는 것이다. 왜 그렇게 변할까?
어느 분야에서든 지독한 경쟁이 이뤄지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그런데 정치에서의 생존은 한층 더 가혹하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은 적(敵)과 싸우는 전쟁과 비슷한 것이다. 정적(政敵)을 물리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범행도 일어난다. 물론 테러나 암살의 위협을 받는 정치인은 극소수다. 그 대신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자행된다. 정당들 사이에서는 물론 같은 정당 안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고도의 긴장과 만성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할까. 분노, 모멸감, 좌절감, 배신감, 열등감, 허영심, 수치심, 복수심, 불안, 의심, 두려움 같은 것 아닐까.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험상궂은 얼굴이 된다. 인간의 얼굴 근육은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데, 어두운 표정을 계속 짓고 살다 보면 그렇게 인상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억눌린 감정이 막말, 실언, 성희롱 등으로 터져 나와 물의를 빚기도 한다. 또는 폭음으로 해소하다가 건강을 해치고 얼굴빛도 나빠진다.
내적인 갈등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들 가운데 이른바 '철면피'가 적지 않은데,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마저 폐기해 버리는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정치인이 되려면 자기가 했던 말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원칙이나 철학이 없이 상황에 민첩하게 적응해야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때로 자기 배반까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애당초 오로지 권력만을 탐해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은 그나마 견딜 수 있겠지만, 사회 정의나 민주화 같은 큰 뜻을 품고 발을 들여놓은 정치인은 자신의 소신과 충돌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서 타협하다 보면 가책에 시달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잡고 내면의 중심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나의 오랜 절친이자 마음공부의 스승인 빛숨센터 조영훈 센터장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정치판은 이 사회의 모든 욕망이 쏟아져 들어가 집약되는 곳이지요. 유권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민원을 넣고 여론을 형성하며 조직의 힘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정치인은 그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요. 존경받는 정치인들이 그 힘들에 휘둘리지 않고 공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대다수 정치인은 욕망을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켜 버리지요. 대중의 욕망과 권력자의 욕망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엉뚱한 방향으로 정치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인은 무의식에 억압된 자신의 욕망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생존에 대한 욕구, 관계에서 안전과 쾌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풀어내는 건강한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면 억압된 욕구는 욕망으로 변질되어 언젠가 엉뚱한 곳에서 문제로 터질 수 있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강조되는 것 아닐까요. 욕구와 욕망의 덩어리를 다루어 가는 일인 정치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담당해야 합니다. 물론 완성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줄 아는 성찰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리더십은 인간적 탁월함에서 우러나온다. 정략적 계산에 얽매이지 않고 시민의 신뢰와 지지를 꾸준히 이끌어내는 정치인이 여러 난관을 돌파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투명하고 진정성 있는 정치적 행동이 국민적 신뢰와 연대의 기반이 된다. 그런 토대가 두텁고 넓어질수록 정치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그런 환경에서는 보스에게 당당하고 시민에게 겸허한 정치인이 경쟁력을 가진다.
겸허함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예의 바른, 공손한, 정중한'이라는 뜻의 'polite'는 'politic'과 어원이 같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시민공동체'를 뜻하는 'polis'에서 파생된 것이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공손함은 무엇일까. 선거철에 후보들이 폴더인사로 연출하는 공손함에는 유권자들이 왜 시큰둥할까. 공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공손함은 시민공동체를 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런 예의와 품격이 깊어지는 만큼 민주주의는 진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