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식품, 혈압을 낮추는 자연의 지혜

고혈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만성질환 중 하나로, 성인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고혈압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한 고혈압 유병률은 남성 23.4%, 여성 16.5%로 나타났다.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등 중대한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고혈압의 예방과 조기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혈압은 기준치보다 낮거나 높을수록 합병증 발생과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 가장 위험이 낮은 혈압 구간은 수축기 혈압(SBP)이 110~120mmHg, 이완기 혈압(DBP)이 70~80mmHg 범위일 때로 알려져 있다. 혈압 115/75mmHg를 기준으로 수축기 혈압이 20mmHg, 혹은 이완기 혈압이 10mmHg 증가할 때마다 심뇌혈관 사망률은 두 배씩 증가한다. 국내 건강검진 대상자(남성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를 6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Korean Medical Insurance Corporation study, KMIC)에 따르면 혈압이 140/90mmHg 이상인 경우 130/85mmHg 미만인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 발생 위험이 2.6배 높았고, 혈압이 180/110mmHg 이상일 경우에는 급성 심근경색증 발생 위험이 5.1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축기 혈압을 10~20mmHg, 그리고 이완기 혈압이 5~10mmHg 정도만 낮춰도 뇌졸증은 30~40%, 허혈성 심장질환은 15~20% 감소한다.

최근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가운데, 발효식품이 혈압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발표되면서 발효가 주목받고 있다. 김치, 된장, 청국장, 요구르트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발효식품은 단순한 전통 음식 그 이상이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발효식품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뇌졸중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낮았다는 결과도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락토코커스 락티스(Lactococcus lactis)로 발효된 우유를 5주간 섭취한 결과, 수축기 혈압이 평균 8mmHg, 이완기 혈압이 3.8mmHg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발효된 콩 제품의 섭취가 고혈압 발병 위험을 약 28% 감소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 발효식품이 혈압에 좋은 이유는?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을 통해 식품의 성분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익한 물질들이 인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발효 과정 중 생성되는 펩타이드, 프로바이오틱스, 폴리페놀, 항산화제 등은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생리활성 펩타이드(bioactive peptides)는 혈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혈압 상승에 관여하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 Angiotensin-Converting Enzyme)를 억제하는 작용으로 인해 고혈압 예방 및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고혈압 치료제(ACE 억제제)의 작용 기전과 유사하며, 발효식품을 통한 자연적 혈압 조절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일부 유제품 발효물과 된장, 청국장 등에서 이러한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발효식품에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와 같은 유익균이 풍부하여 장 건강은 물론 체내 염분 배출과 혈관 기능 개선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 식탁 위의 예방약, 발효식품

발효식품은 현대인을 위한 자연의 지혜라 불릴 만하다. 발효식품의 섭취는 혈압 관리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발효식품은 일반적으로 염분이 많기 때문에, 고염 발효식품의 과도한 섭취는 오히려 혈압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저염 발효식품을 선택하거나, 염분 섭취를 조절하는 식단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발효식품은 단순한 전통 음식이 아니라,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혈압 관리가 중요한 사람들에게 발효식품은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선택과 균형잡힌 섭취다. 

건강은 평소의 식탁에서 시작된다. 오늘부터 발효식품을 식단에 한 가지씩 더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