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질병은 장(腸)에서 시작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이 말은 2천 4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의 무게가 더 명확하게 입증되고 있다.
장에는 우리 몸속 면역 세포의 무려 75%가 모여 있고, 우리 몸 세포보다 10배나 많은 100조 개 이상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장이 단순한 소화기관을 넘어 면역, 신경계, 염증 조절 등 인체 건강의 핵심 축으로 주목받으면서, 현대인의 만성질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장 건강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급변하는 식생활,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떠올라
최근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배달과 외식이 생활화되면서 이로 인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염분과 지방, 당분 섭취는 증가한 반면, 직접 요리하고 식재료를 고르는 경험이 줄어들며, 미네랄·식이섬유·항산화 성분은 눈에 띄게 부족해졌다. 장 건강의 핵심은 미생물의 균형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단 불균형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악화시키고, 이는 현대인이 직면한 만성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만성질환, 단순한 노화 아닌 '시스템 붕괴'의 결과
고혈압, 당뇨, 치매, 관절염, 심지어 암까지. 흔히 이들 질환을 '나이 들면 겪는 일'로 여기지만, 이는 오해다. 만성질환은 노화의 산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축적된 생활습관의 결과다. 나쁜 식습관, 부족한 운동, 수면 장애, 스트레스, 환경 독소… 이 모든 요소들이 장 건강을 해치고, 장은 결국 전신의 기능 붕괴를 촉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만성질환들이 서로 고립된 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의 질환이 다른 질환의 발생을 유도하고, 또 그 질환이 다른 병을 부르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장내 염증은 인슐린 저항성과 비만으로, 비만은 심혈관 질환으로, 나아가 인지기능 저하나 우울증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많은 의사들이 만성질환을 단지 '약으로 조절하는 병'이라고 여긴다. 병은 약으로, 수치는 장비로 관리한다는 사고가 만연하다. 처방전 중심의 진료, 증상 억제를 위한 대중요법이 의료 시스템을 지배하면서,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시도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 '환자'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치료받아야 할 때
현대의학은 급성질환과 외상 치료에 탁월한 공을 세웠지만, 만성질환 앞에서는 점점 무력해지고 있다. 수명은 늘렸지만, 건강하게 사는 시간인 '건강수명'은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 이는 증상 위주의 치료에 치우친 결과다. 대중요법은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증상만 억제할 뿐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는 단순한 약물 처방이 아니라, 약보다 먼저 삶과 식탁, 환경, 생활습관을 함께 바꾸는 전인적 접근이 필요하다. 균형 잡힌 영양, 환경 독소의 차단, 올바른 생활습관 없이는 어떤 치료도 지속될 수 없다. 이는 새로운 건강 패러다임의 핵심이며, 만성질환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