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대한민국 국회

1. 한국의 정치

한국만큼 정치에 관심 많으면서, 한국만큼 정치인이 존경받지 못하고, 정치혐오가 일상화된 나라도 없다. 서로를 절멸시키지 못해 안달 난 거대 양당과 이들을 지탱하는 정치 팬덤, 국민들을 선동하여 팬덤을 확대 재생산하는 무당 같은 정치 유튜버들, 그리고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이용하는 정치인들 모두가 공범이며, 공생관계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의 현실이다.

공천권을 쥔 1인에게 약한 사람들이 다시 당선되는 게 한국 정치권이기도 하다. 배지(badge)를 달고 싶은 정치지망생들은 공천권을 쥔 지도부에 아부와 아첨을 일삼고, 현역 의원들조차 다시 공천받기 위해서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다. 참으로 비겁한 정치다. 그들의 행동이 국민을 위한 일인지 본인들의 당선을 위한 방편인지는 가까이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현실 정치의 내부자인 국회의원 보좌진이었고, 대선, 총선, 지선 등의 선거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에서 정치인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공천을 위해 아부하는 사람, 앞에서 웃지만 뒤에서 비수를 꽂으며 경쟁자를 제거하는 사람, 사람들을 이용하고, 나중에는 나 몰라라 하는 사람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이 현실 정치에 모여 있다. 이런 정치판에서는 보통시민의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귀하다. 특별하고 특출나서 이상한 사람들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인 이유이기도 하다.

 

2. 선거에서의 경험

내가 참여했던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참여한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거의 없다. '여러 번' 패배하기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20대 국회였다. 덕분에 19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에 치러졌고, 민주당이 차기 정권을 책임지게 될 거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캠프에서는 임명장을 만들어 뿌리는 일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나 하나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캠프를 그만뒀지만,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무난한 당선이었다.

그다음 선거에 참여해 볼 기회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내가 지원했던 후보는 나중에 총리가 된 김부겸 의원이었다. 당시 그의 지역구였던 대구 수성구에서는 조국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고,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초기로 선거운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작대기만 꼽아도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곳"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이변은 또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이후에 참여한 선거는 당대표 선거였다. 지원했던 후보는 총선에서 낙선한 김부겸이었다. 결과는 총리에서 물러나 종로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낙연 후보의 압승이었다. 이후 이른 당대표 사퇴에 선거는 다시 치러졌다. 송영길 전 당대표를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당하게 만든 선거였다. 그 선거에서 나는 송영길의 상대 후보였던 홍영표 캠프의 전략기획실에 있었다. 결과는 아슬아슬한 0.59% 차이의 패배였다. 결정적 승패를 가른 것이 돈봉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세 번째 선거 패배였다.

다음에 참여한 선거에서도 나는 패배를 경험했다. 국회의원실 보좌진으로 참여한 20대 대선의 경선과 본선이었다. 좀 더 열심히 뛰었던 경선에서도 패배했고, 뒤이은 본선에서도 패배를 경험했다. 그다음은 지방선거였다. 충남 논산시장 선거를 지원했고,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이쯤 되면 가는 곳마다 패배를 경험한 듯하다. 당시 지방선거가 대선 직후 치러졌고, 집권여당이던 국민의힘이 대부분 당선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패배는 패배일 뿐이었다. 패배의 이유가 후보가 못나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만 보고 구도와 바람은 별로 개의치 않았던 탓도 컸다. 우직한 선택이었을지라도 영리한 접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 번의 선거 패배 경험 후 나는 또 다른 패배를 경험한다. 바로 얼마 전에 치러진 22대 총선이다.

 

3. 3지대에서의 도전

22대 총선은 한 개인의 당선을 위해서 뛰기보다는 3지대를 통해 한국 정치의 구조를 바꿔보자는데 동의해서 참여한 선거였다. 신당 창당과 지역구 출마까지 염두에 두었으니, 그동안 참여해 왔던 선거보다 높은 수준의 도전이었다. 내가 참여한 그룹은 3지대 신당을 준비하는 '정치혁신포럼 당신과함께'였다. 여기저기 신당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또 창당을 하기보다 3지대의 여러 신당들을 묶는 플랫폼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이후 정치혁신포럼 당신과함께는 민주당을 탈당한 3명의 현역의원과 함께 3지대 통합을 위한 ‘미래대연합’이라는 창당준비위원회를 띄웠다. 내가 맡은 역할은 창당발기인 2호였다.

 

ⓒ당신과함께
ⓒ당신과함께

창준위 발족 이후 미래대연합은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이 이끌고 있던 새로운미래와의 통합을 발표했다.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 출신 의원 3명 중 2명이 이탈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신당이 출범했다. 출범 이후에는 함께 하길 거부했던 2명의 민주당 출신 현역의원들이 통합공천관리위원회를 새롭게 제안하고, 이준석 대표가 이끌던 개혁신당, 금태섭 전 의원이 이끌던 새로운선택과 함께하는 통합논의를 시작했다. 설 명절 첫날 3지대 빅텐트에 동의했던 여러 세력은 각자가 가진 사상과 차이를 뒤로하고, 대통합 합의문을 발표한다.

문제는 통합 이후 일어났다. 3지대의 가치가 양당제 및 정치 양극화 극복, 그리고 다양성 정치에 있다고 믿던 내 생각과 달리 통합을 주도했던 몇몇 리더들은 생각이 달랐다. 정체성 정치를 비판했던 이들은 오히려 신생 정당의 당원 정체성을 강조했고, 다수결을 통해 3지대 통합 합의 내용을 무력화시켰다. 결과는 통합 결렬이었다.

결국 22대 총선이 끝나고, 반쪽짜리 국회가 출범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21대 국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듯 보였다. 나 스스로도 실력과 준비도 부족했음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참여했던 3지대 정치는 실패했다. '녹색정의당'은 6명의 의원에서 0명이 되면서 원외 정당이 되었고, '조국혁신당'이 부상했다고 하지만, 민주당의 형제 정당일 뿐이다. '개혁신당'의 약진이 주목할 만하지만, 오랫동안 3지대에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부지리로 1석을 얻은 '새로운미래'의 미래도 밝지는 않다.

 

ⓒ대한민국 국회
ⓒ대한민국 국회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1대 총선에서 청년을 전진 배치했던 정의당은 이번에는 의석 하나도 얻지 못했고, 비례대표 1번을 20대 여성 청년으로 공천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1석을 민주당 공천 취소로 어부지리 했을 뿐이다. 개혁신당이 3석을 얻으며 선전했지만, 이 또한 청년정치를 표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청년 정치'는 끝난 것일까? 중장년층 중심의 국회는 조정될 필요가 있겠지만, 나이로 구분하는 '청년 정치'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면, 청소년 정치, 중년 정치, 노인 정치도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세대를 위한 정치를 하면 되는 것이지, 청년을 위한 정치를 꼭 청년들만 하라고 할 필요는 없다.

현재 한국 정치의 특징은 정치적 양극화와 팬덤 정치의 일상화다. 정치 양극화는 "정당정치나 의회정치가 관용의 범위 밖으로 뛰쳐나가 정치가 해야 할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매우 심한 나라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유형론적 특징을 13가지로 정리했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꼽자면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 등이 있다. 참 슬픈 정치적 현실이다.

 

▲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유형론적 특징 13가지. ⓒ국회미래연구원(2023).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개선 방안
▲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유형론적 특징 13가지. ⓒ국회미래연구원(2023).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개선 방안

팬덤 정치도 문제다. 한국에서 팬덤 정치의 본질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과도하게 혐오하는 것에 있다. 정치인들도 팬덤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지만, 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치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팬덤의 일탈을 방조한다. 내가 참여한 새로운미래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팬덤 정치를 비판하면서 탈당했던 정치인은 새로 만든 정당에서 본인의 팬덤에 휘둘렸다. 그렇다고 개혁신당이 팬덤에 대한 부분이 개혁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2030남성의 탈당 행렬을 막기 위해 장애인 정치가를 배제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여성 정치인을 비주류로 규정했던 이가 바로 개혁신당의 초대 당대표였다.

결론적으로 팬덤 정치는 증오와 혐오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분열의 정치다. 서로가 다르게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만 옳다는 정치는 독단일 뿐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는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도우면서 협동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역할을 할 때 오히려 빛이 난다. 서로를 적대하고 갈등만 일으키며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일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암울하다. 지금의 정치 지형이 더 심화된다면 행정 권력의 독주만이 아니라 의회에서 1당 독주도 더 강화될 수 있다. 혹시 다음 23대 총선에서는 개헌저지선을 넘는 당이 탄생해 합법적인 1당 독재가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례대표 확대와 중대선거구제, 열성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는 정당구조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두운 미래가 예상된다. 혹자는 계급 정년제처럼 정치에도 정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해진 의석수에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일 것이다.

시대마다 국민들이 바랐던 사회는 달랐다. 미군이 점령한 남한 땅에서 미국 박사학위를 받은 독립운동가가 건국의 아버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정선거에 화가 난 민중은 초대 대통령도 쫓아냈지만, 결국 그 자리를 꿰찬 것은 국가 재건을 명분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이었다. 살만한 나라가 되자 국민들은 독재에 맞섰던 민주투사들을 민주국가를 이끌 새로운 리더로 부르기도 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많은 이들이 재태크에 관심을 가지자,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쓴 기업가가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의 향수를 풍기며 등장한 독재자의 딸은 선거의 여왕이라 불렸지만, 비선 실세의 꼭두각시 혐의를 받으며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메시아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한 때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던 의사를 정치권에 데려왔지만, 결국 민주투사의 친구가 그 열망을 가로챘다. 운명의 이름으로 집행되던 아름다운(?) 복수의 현장에서 적폐 청산의 칼잡이는 내로남불 강남좌파에 공정의 어퍼컷을 날렸지만, 본인의 무능함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강남좌파를 정치적으로 살려내고야 말았다.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다'는 말처럼 괴물을 무찌른 영웅이 다시 괴물이 되어서 축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늘 반복되어 온 역사가 되었다.

ⓒUnsplash

그럼에도 시대적 열망은 늘 새로운 정치를 호명했다.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다. 미래세대에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한 국민연금 개혁, 저출산 고령화와 더불어 소멸하는 지역과 과밀화된 수도권을 바꿀 지방분권 개혁, 봄과 가을이 사라져 가고 있는 한국에 절실한 기후 위기 대응, 이중화된 노동시장 극복을 통한 사회 통합, 팬덤 그리고 진영 정치를 바꿀 새로운 선거 제도, 이 모든 것을 추진할 새로운 사회계약(New Deal)인 개헌 등 할 일이 태산이다.

물론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실패로부터 배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불편해도 대화하면서, 새 시대를 준비할 사람들을 꾸준히 모은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미래가 될 것이다.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언젠가 지금보다 나은 정치를 만들 방법 중 하나가 우리가 만들어갈 작당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이프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