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기본소득, 먼 꿈인가 문앞의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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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기본소득, 먼 꿈인가 문앞의 현실인가
  • 2024.04.30 10:00
  • by 오준호(『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지은이.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권한대행)

■ 들어가며: 한국에서 기본소득 운동이 지나온 길

▲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남시 청년배당 포스터, 기본소득당(現 새진보연합) 홍보 자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로고,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포스터. ⓒ성남시, 새진보연합,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경기도
▲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남시 청년배당 포스터, 기본소득당(現 새진보연합) 홍보 자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로고,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포스터. ⓒ성남시, 새진보연합,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경기도

한국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임의로 구분하면 2016년 전후로 나눌 수 있다. 2016년까지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주로 제도권 바깥에서 확산됐다. 2000년대 초 진보적 학자들이 유럽에서 떠오르는 기본소득 운동에 주목하여 국내에 소개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대선)에서 원외 진보정당인 사회당이 '국민기본소득'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9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기본소득 연구자들을 필진으로 모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뒤집어라』를 출간했다. 같은 해 기본소득네트워크(現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결성됐다.

그러다가 2016년 이후 기본소득 논의가 제도권 안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 해 변화의 계기가 여럿 있었다. 우선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 바둑기사 이세돌에 압승함으로써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화됐고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이 대중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안건으로 국민투표를 치른다는 소식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세계 기본소득 운동의 가장 권위 있는 행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를 서울에서 유치했다. 이 행사에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와서 축사를 전했다. 그리고 기본소득 철학에 공감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성남시 청년배당'이라는 범주형 소액 기본소득 정책을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대권후보들은 너도나도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기본소득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핵심 원칙과 거리가 먼 정책도 있었으나,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과 공감이 커졌음을 뜻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민생대책으로 실시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첨예한 토론을 촉발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20년 구성된 제21대 국회는 과거와 비교하면 '기본소득 국회'라고 불릴 만했다. 기본소득당이 원내 진출했고 탄소세 기본소득, 토지세 기본소득 등의 내용을 담은 기본소득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됐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 기본소득뿐 아니라 진보적 사회 의제에 관한 논의는 크게 축소됐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필자가 지난해 여름에 『사명이 있는 나라』를 출간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다. 이 책에서 필자는 기본소득을 기후위기 대응, 글로벌 국가 경쟁력 확보 등과 연동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제시하려 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노력과 함께 기본소득 운동은 때로 가라앉았다가 정치적 추동력과 만나면 다시 부상하기를 반복했다. 물론 모든 진보적 대안은 본격 실행되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기본소득 역시 이 제도에 관한 국민의 인식과 지지기반이 얼마나 넓게 확대되고 탄탄하게 형성되느냐가 다음 정치적 국면에서 그 실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 기본소득, 무엇이고 왜 해야 하나

▲ 유튜브 영상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What is Universal Basic Income?) 갈무리. ⓒ영국 왕립예술협회(RSA)
▲ 유튜브 영상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What is Universal Basic Income?) 갈무리. ⓒ영국 왕립예술협회(RSA)

기본소득제도란 무엇인가? 기본소득 운동의 가장 권위 있는 국제단체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정의를 가져오면,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그리고 자격심사나 노동의무 등 어떠한 조건 없이 정기 지급하는 일정 액수의 현금'이다. 흔히 기본소득이라고 하면 지급하는 현금을 가리키지만,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하기도 한다. 기본소득의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은 기본소득과 다른 제도를 준별하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조건성이다. 즉, 기본소득의 과도기적 도입 과정에서 다른 특징을 누그러뜨리더라도, 무조건성은 지켜야 그것을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년 기본소득'처럼 보편성을 완화해 특정 인구 집단에 실시할 수도 있지만, 그 집단 내에서는 조건 없이 제공해야 기본소득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왜 지급해야 할까? '필요성'에 앞서 따져야 할 것은 '정당성'이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정당화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최소한의 소득은 인권을 위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현금 소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금 소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모두에게 돌아오지도 않고, 구한다고 해도 항상 적정소득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어떤 위험 상황에서도 시민 인권을 지키기로 한다면, 기초 생계 수준의 소득은 다른 조건을 묻지 말고 시민의 권리로서 보장해 주어야 마땅하다.

또 다른 대답은 모든 사람은 공유부(Commons)에 대한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공유부란 토지, 천연자원, 대기, 경관 같은 자연적인 공유부와 지식, 문화, 빅데이터 등 인공적인 공유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공유부는 어떤 누구도 원천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인류 바깥으로부터 주어졌거나 오랜 시간 집단적인 노력으로 형성된 공동자원이다. 이러한 공유부에서 직접 발생한 이익 또는 공유부의 가공을 통해 발생한 이익은 원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 물론 공유부의 발굴, 형성, 가공에 특별한 기여를 한 사람의 특수한 몫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천적으로는 공유부가 '모두의 것'이기에 그 이익의 일정한 부분은 '모두의 몫'으로 분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공유부 수익 배당'이라고도 한다.

■ 현대 사회에 기본소득이 필요해진 이유는

▲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 2023' 갈무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 2023' 갈무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것과 별개로, 현대에 와서 기본소득이 더 필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먼저 기술혁명이 기존의 일자리 구조나 노동 구조에 미치는 충격으로부터 도출된다. 기술혁명이 일자리를 줄이느냐 아니면 늘리느냐 하는 논란은 산업화 초기부터 이어진 것이며 지금도 수많은 정책적 선택과 맞물려서 결정될 것이기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금의 기술적 진보는 새로운 직무와 직업을 등장시키는 것과 별개로 노동 구조와 고용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생성형 AI는 의료, 법률, 회계, 경영, 심지어 창작의 영역에서까지 인간 노동을 대체할 위력을 보여주며, 실제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AI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 같기에 실업 구제 대책으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AI가 인간 직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면, 노동의 형태와 생활 보장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기술 진보의 충격이 두려워 혁신을 거부하거나 속도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릴 것인가? 기술혁신의 진행을 무방비로 지켜보면서 고용의 불안정과 혁신 수익의 불평등한 배분을 그저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기술혁신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되 그 충격을 완충할 사회적 장치로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면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 사회적 장치가 반드시 기본소득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대답도 나올 수 있다. 기존 사회보장제도로도 충분하며, 재정이 있다면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에 사용해야 한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기본소득이 현대에 필요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빈곤과 불평등에 대처하는 데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중심의 사회보장제를 구성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가입 기간과 기여 금액에 따라 보장이 달라지는 까닭에, 현재 고용과 소득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들이 더 많이, 더 장기간 기여금을 내고 위험 발생 시 더 많은 보장 혜택을 받는 '역진성' 문제가 생긴다. 공공부조는 까다로운 선별 기제로 인해 지원이 필요한 이들조차 탈락하고, 지원을 받는 이들은 빈곤의 덫에 빠지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한국적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를 '역진적 선별복지'라고 부르기도 한다(『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이태수 외). 이처럼 조건이 까다롭고 넓은 사각지대를 발생시키며 역진성의 한계를 가진 한국 사회보장체를 개선할 방법은 무엇인가. 사각지대가 있을 수 없고 인권 원칙에 충실한 기본소득제도로 기존 현금지원복지의 상당 부분을 통합하거나 적어도 적극 보완하는 것이 그 해법이다.

나아가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는 기본소득과 연결할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기후위기 문제가 그러하다. 기후위기의 시급한 대응책으로 탄소세 도입이 강조된다. 탄소세는 탄소 가격을 높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방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탄소세 도입과 그 세율 인상을 강하게 권고해 왔다. 그런데 탄소세 도입은 필수 생활재화 가격도 같이 끌어올려 중하위층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문제가 있다. 2019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노란조끼 시위'도 정부의 환경부담금 도입이 유류비 부담으로 이어지자 중하위층 노동자들이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앞에 탄소 가격을 높이지 않을 수도 없다. 해법은 탄소 가격을 높이고(곧 탄소세를 도입하고) 그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그러면 중하위층 시민은 대부분 부담이 상쇄되고 소득 하위층은 오히려 소득이 증가한다. '탄소세-기본소득'이 기후위기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기본소득 재원 마련, 어떻게 할 것인가

▲ 조세 기반 기본소득 모델. 오준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권한대행 제공 자료 갈무리.
▲ 조세 기반 기본소득 모델. 오준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권한대행 제공 자료 갈무리.

정당성과 필요성 다음으로 언급할 문제는 기본소득 실현 방안이다. 핵심은 재원 마련이다. 기본소득 연구자들은 이미 다양한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아무래도 가장 정통적인 방식은 조세 세수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증세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를 '조세 기반 기본소득 모델'이라고 하자. 기본소득 규모에 따라 사용할 조세 목록도 다르고 조세 개혁 규모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제출된 기본소득 제안 중 2022년 대선에서 기본소득당이 제시한 모델이 가장 급진적이다. 최저생계비 이상 '충분 기본소득'을 목표로, 매우 큰 규모의 재원 계획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 월 7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이 목표이며 연간 430조 원이 소요된다. 조세개혁을 통해 기본소득 목적세(탄소세, 토지세, 시민세)를 도입하여 240조 원을 확보한다. 비과세·감면을 축소 및 폐지하여 100조 원 정도를 확보한다. 기본소득 자체에 과세하여 40조 원, 기존 복지제도를 통폐합하며 50조 원 정도를 동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최종적으로 도달할 목표이며 이러한 규모의 조세 개혁을 일시에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충분 기본소득이 목표라도 로드맵에서는 기본소득 지급액과 조세개혁 양자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기본소득 재원 마련 모델은 '공동자원 배당형 기본소득 모델'이다. 언급한 것처럼 햇빛, 바람, 토지, 경관 등은 모두 공유부 혹은 공동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자원을 지자체 또는 지역공동체가 개발한다면 그 수익의 일정한 몫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철학이 구현된 지역 정책의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라남도 신안군의 '햇빛연금'이다. 햇빛연금은 태양광발전에서 나온 수익을 주민에게 배당하는 제도다.

신안군은 2018년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이 자본 참여하게 하여 그 이익을 분배하고 있다. 주로 폐염전이나 폐양식장을 활용해 발전사업자가 태양광단지를 설치하고, 인근 지역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자본금을 투자한다. 단, 자본금은 군의 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빌리고, 주민들은 협동조합에 소액의 참가비만 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태양광발전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신안군은 섬마을마다 주민들이 1인당 최대 연 250만 원씩 햇빛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햇빛연금이 실시되자 안좌도는 인구가 극적으로 늘었으며 폐교 직전이던 분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신안군은 해상 풍력발전장치까지 완성되면 '햇빛바람연금'으로 배당을 키워 모든 주민에게 월 50만 원씩 지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유부 배당 모델은 산지나 갯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태양광발전을 할 수 없는 곳은 없다. 도시 도로와 주차장, 건물 외벽과 옥상 등을 활용하면 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지자체별로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할 방안을 모색하되, 발전 수익의 일정한 몫을 주민에게 '햇빛배당'으로 되돌려주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 밖에도 지자체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공동자원, 가령 지하수나 관광자원 등을 공익적으로 개발하고 그 수익을 공동체 내에 배당한다면 이것으로 기본소득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세 번째 재원 마련 모델로는 '사회자산펀드형 모델'이 있다. 사회자산펀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기금을 만들어 투자하고 그 수익을 공익적 목적에 사용하는 기금 또는 제도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대표적인 사회자산펀드다. 전 세계에 이미 133개의 국부펀드가 존재한다. 가장 큰 펀드는 노르웨이 정부연금펀드로 규모가 1,500조 원에 달한다. 한국의 국부펀드로는 한국투자공사가 있다. 각국 국부펀드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로 해외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하며, 정부는 국부펀드에 투자한 대로 수익 배당을 받아 대개 정부 재정에 섞어 사용한다. 별도 수익 사용처를 두지 않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인데, 기금 수익 일부를 알래스카 법률이 정한 대로 연 1회 알래스카 주민 전체에게 같은 액수로 분배한다.

그런데 최근에 국민이 소유하는 사회자산펀드, 곧 '국민부펀드'를 만들고 그 수익을 국민에게 똑같이 배당하자는 제안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제안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샘 올트만 오픈AI 최고경영자,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등이 이러한 제안을 하거나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방식으로 불평등을 줄이고 국민 소득 안정을 꾀해 급격한 기술 변화, 사회 변화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국부펀드와 대비하여 국민부펀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금의 수익을 정부가 임의로 쓰지 말고 국민에게 배당하라는 의미다. 또한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초거대 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본주의를 '포용적 자본주의'로 변화시키려는 취지도 있다. 국민부펀드 투자 대상을 탄소중립, 이해관계자 경영 등에 충실한 기업으로 정하여 그러한 기업을 육성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저서 『사명이 있는 나라』를 통해 한국형 알래스카 기금으로서 한국연대기금(가칭)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기금을 조성하지만 소유권은 국민이 가진다. 그리고 기금 운용 수익은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당한다. 기금 운용은 독립적인 기구가 맡는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등 사회적 목표 이행을 기준으로 삼아 그에 맞는 기업과 산업에 투자한다. 정부는 기금을 조성하고 매년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데, 사용할 재원으로는 상속·증여세, 공공자산 임대수익, 정부 원천기술 로열티, 대기업 특별법인세(주식) 등이 있다.

한국연대기금으로 투자한 기업의 주식 가치가 오르면 그만큼 기금도 함께 성장하며, 미래의 배당금액도 커진다. 가령 정부가 연 100조 원을 세금으로 걷어 바로 기본소득으로 분배한다면 월 17만 원 정도 지급할 수 있다. 반면 100조 원씩 매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기금의 운용 수익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할 때 첫해에는 배당금이 연 10만 원 정도이나 30년 뒤에는 월 60만 원씩 지급할 수 있다. 원본 자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이 초대형 기금을 잘 활용한다면 경제의 방향을 혁신 경제, 포용 경제로 전환할 수 있다.

■ 다층적 기본소득으로 모두의 경제적 안전을

이처럼 기본소득의 다양한 모델을 구현한다면 기본소득을 여러 층으로 쌓아올릴 수 있다. 일단 조세와 국민부펀드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전 국민 기본소득을 1층에 펼친다. 그 위에 지자체별로 공동자원 배당 기본소득을 2층에 도입하고, 그 위 3층에 마을 공동체별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두를 위한 경제적 안전 보장에 다가가면서도 당장 대규모 증세의 부담은 피할 수 있다. 단, 장기적 혁신 투자와 사회보장 강화를 위해,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한국의 조세부담률을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별도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다.

기본소득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권을 지키는 수단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자원의 이익을 합리적이고 정의롭게 나누는 분배 방식이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적 투자와 연계해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는 해법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고 국가 혁신과 미래 전환을 구상할 수는 없다.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곧 기본소득 대한민국을 향한 모색과 토론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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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지은이.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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