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오딧세이, 공자와 맹자③] 공자의 생각: 덕 있는 사람은 동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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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딧세이, 공자와 맹자③] 공자의 생각: 덕 있는 사람은 동지가 있다
  • 2022.01.25 16:00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08:52

■ 노블리스 오블리제

우리는 흐트러진 세상일수록 간웅(奸雄)의 지도력이나 추상과 같은 법집행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자의 접근법은 달랐다. 지도자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사회 모두가 바꿔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권력층의 부패, 폭력, 무능력의 문제를 도덕적 내면의 개혁으로만 축소시킨다면 그것은 곤란한 일이다. 군신(君臣), 부자(父子), 장유(長幼)의 구분과 서열이 엄격하다면 실제 문제를 은폐시키는 힘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중국의 문호(文豪) 루쉰(魯迅, 1881-1936)은 그놈의 '인의도덕' 때문에 중국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전락되었다고 한탄했다. 이에 대한 검토는 <공자와 맹자> 시리즈의 맨 마지막 편에 하고, 지금은 공자로부터 이어받을 수 있는 긍정적 전통에 대해 생각해보자.

논의의 실마리는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있다. "정치로 이끌어주고, 형벌로 다스려주면, 백성들은 형벌은 면하려 들되 염치는 모르게 된다. 덕으로 이끌어주고 예로 다스려 주면 염치를 알고 또 올바르게 된다."(위정:3).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한 사회가 잘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연결망과 사회적 신뢰, 엄정한 법과 제도만이 아니다. 그 저류에 흐르는 개개인의 도덕적 심성이다. 이 모두를 합쳐 우리는 통칭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특히 지도자의 도덕적 책임은 춘추전국시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책임 떠넘기기와 내로남불의 악취가 진동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도 그것은 너무나 간절하다.

■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공자가 강조하는 도덕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고, 남을 잘 배려하라(忠恕, 이인:15).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 안연:2).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삼가라(巧言令色, 학이:3).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꾸준히 실천해라. 

이런 공자의 생각은 『대학』의 3강령(綱領) 8조목(條目)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삶과 공부의 목적(大學之道)은 올바르게 자신의 덕을 잘 쌓고(在明明德), 사람들을 새롭게 이끌며(在親民), 보다 훌륭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在止於至善). 이를 위해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格物致知), 뜻과 의지를 바르게 세우고(誠意正心), 자신을 수양함과 동시에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修身齊家), 그런 이후에 세상을 제대로 바꾸어갈 수 있는 것이다(治國平天下). 정리하자면 나부터 잘하자는 이야기다.
 
■ 실천윤리 예(禮)

도덕의 실천과정은 당연히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 예의범절(禮)의 형태로 구체화되어야만 한다. 공자는 예법을 무시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했다. 논어에는 천자 앞에서만 출 수 있는 팔일무(8명이 8줄로 서서 추는 춤)를 당시 노나라 권력자였던 계평자(季平子)의 집안 행사에서 추는 것을 보고 공자가 격노하는 모습이 나온다(팔일:1). 그리고 그 실망이 조국을 떠나 14년간 외국을 떠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무시하는 제자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혹독했다. 말솜씨 좋다고 소문난 재아에게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친 담은 흙손으로 다듬을 수 없다."(공야장:10)고 혹평했던 이유도 아마도 재아가 부모상은 1년도 길다고 말한 것 때문일 것이다(양화:21). 
 

▲ 동춘당 송준길이 쓴 논어 안연편.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국립중앙박물관
▲ 동춘당 송준길이 쓴 논어 안연편.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국립중앙박물관

예란 형식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행위였다. 이에 대해서는 노나라의 시조를 모신 태묘(太廟)에서의 공자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제사를 관장하게 된 공자는 매사를 주변에 물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공자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공자는 "그게 바로 예다"라고 대답했다(팔일:15). 나이 많은 예관들을 배려한 최고의 예스러운 행위였던 것이다.  

■ 끝없는 공부와 자기성찰 학(學) 

공자는 바른 지도자(군자)가 북극성 같이 버티고 있으면(위정:1), "가까운 곳 사람들은 기뻐 따르며 먼 곳 사람들은 흠모하여 찾아오게" 된다고 말했다(자로:16). 그런데 군자는 참으로 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자는 덕 좋아하기를 여색(女色)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자한:17),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도 찾기 어렵다고 한탄했다(술이:25).

공자가 추천하는 군자 되기의 방법은 끝없는 학습과 자기성찰이었다. 사람이 배움이 부족하면 남에게 이용만 당하고, 허황된 꿈을 꾸고, 남을 해치고, 각박하게 굴며, 난폭하게 행동하고, 광기에 휩쓸리게 된다고 경고했다(양화:8). 그래서 항상 공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게 단순히 책만 보는 행위가 아니었다. 절실히 물고(切問), 구체적으로 사고(近思) 하는 과정이 공부였다(자장:6). 공자는 학이불사즉망(學以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以不學則殆)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허황되어 위태롭다는 말이다(위정:15).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생각 없이 책만 보는 행위, 학문적 근거 없이 상상만 하는 행위 모두 제대로 된 공부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이 배우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았고, 몰라 답답해하지 않으면 일러주지도 않았다(술이:8). 까다로운 선생이어서가 아니다. 공부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 어려움을 이기는 기반 락(樂)

논어의 또 다른 키워드는 즐거움(樂)이다. 공자는 공부하다 즐거워서 밥 먹는 것도 늙음이 닥쳐오는 것도 잊어버렸다고 말한다(술이:18). 한 마을에 충성과 신의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자기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공야장:28).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겁게 공부한 인물은 애제자 안회(顔回)였다. 그런 안회를 보며 공자는 항상 감탄했다. 안회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으며(옹야:2). 다른 제자들은 하루나 이틀 정도 겨우 어진 마음을 유지하나 안회만은 석 달 동안이나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칭찬했다(옹야:5). 
 

▲ 정본집주논어(正本集註論語)/논어(論語) - 중국(中國) 송(宋) 나라의 주희(朱熹)가 논어의 장구(章句)에 대한 선대(先代) 학자(學者)들과 자기(自己)의 주석(註釋)을 모아 엮은 책이다. ⓒ국립중앙박물관
▲ 정본집주논어(正本集註論語)/논어(論語) - 중국(中國) 송(宋) 나라의 주희(朱熹)가 논어의 장구(章句)에 대한 선대(先代) 학자(學者)들과 자기(自己)의 주석(註釋)을 모아 엮은 책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즐거움이란 공부만이 아니라 공자의 일상생활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논어의 맨 앞장 첫째 문장은 세상을 바꾸려 공부하고 사색하고 행동하는 즐거움을 나타낸다(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둘째 문장은 같은 뜻을 품은 동지들이 모이는 기쁨을 이야기한다(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마지막 문장은 옳은 길을 가는데 세상이 몰라주더라도 화내지 말아야 함을 다짐한다(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그렇다면 그 험난한 고생 속에서도 버텼던 '즐거움', '기쁨', '화내지 않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마도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람에게서 얻는 위로의 힘일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선현들의 생각과 연결되고, 배움의 과정을 통해 더욱 굳어지는 것, 주변에 항상 동지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천하주유를 버티게 했던 힘일 것이다. 

■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미 

많은 사람들이 공자를 따랐던 이유에 그의 인간적 매력 또한 컸으리라. 그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노닐고, 시와 음악으로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향기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시를 참 좋아했다. "시경 삼백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思無邪)"(위정:2)고 말했다. 음악 또한 광적으로 좋아했다. 제나라에 가서 소(韶)라는 고대음악을 듣고는 그 좋아했던 고기 맛을 석달간이나 잊었을 정도였다(술이:13). 꽤 까다로운 음악평론가이기도 했다. 노나라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최고위 사람(太師樂) 앞에서도 시시콜콜 음악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팔일:23). 흥취도 많아 남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눈물 또한 많았다. 애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 "아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天喪予, 天喪予)(선진:8)하고 비통하게 울었다. 염백우가 문둥병에 걸렸을 때 창문 밖에서 그의 손의 잡으며 흐느끼는 모습(옹야:8)은 너무나 인간적인 공자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공자는 만년에 자신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志于學). 서른 살에 확고하게 섰으며(而立), 마흔 살에는 사리에 의혹되지 않았다(不惑).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知天命), 예순 살에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항상 평온한 마음을 유지했다(耳順).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위정:4). 참으로 대단하고 부러운 경지다. 
 

▲ 그림으로 보는 공자의 일생(孔子聖蹟圖展). ⓒ성균관대학교박물관
▲ 그림으로 보는 공자의 일생(孔子聖蹟圖展). ⓒ성균관대학교박물관

공자의 덕치와 수양 일변도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논리다. 어진 정치는 엄정한 법치와 사회적인 규율, 적절한 이익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그것이 지난 수천 년 인류의 경험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을 믿는 힘이다. 공자의 말 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덕은 외롭지 않고 항상 동지가 있다는 구절이다(이인:25). 이기주의자 옆에 진정한 친구가 모일 리 없다. 이익이 없어지면 그들은 포말처럼 사라진다. 공자처럼 살아가면 항상 동지와 친구가 있다. 그런 흐뭇한 생각만으로도 공자에 대한 공부 이유는 충분하다.

 

<공자와 맹자>의 전체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덕치라는 시대정신
2. 공자와 맹자의 삶
3. 공자의 생각
4. 맹자의 생각
5. 공자와 맹자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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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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