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오딧세이, 공자와 맹자⑤] 공자와 맹자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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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딧세이, 공자와 맹자⑤] 공자와 맹자를 넘어서
  • 2022.02.28 09:00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작자 미상, '문례노담' 1742년, 성균관대학교박물관
▲ 작자 미상, '문례노담' 1742년, 성균관대학교박물관

■ 억압논리로서의 공맹사상

언제나 그렇듯 사상의 스승이 남겨준 유산은 시간과 함께 강고한 기득권으로 변질된다. 이것은 공맹의 사상도 마찬가지였다. 지도층의 자기규율의 언어였던 충(忠)은 하급자 혹은 백성의 무조건적 복종의 논리(忠)로 변질되었다. 지식은 새로운 패거리를 만들고, 이권을 장악하고, 백성을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되어 갔다. 패거리화를 경계한 화이부동(和而不同), 백성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 한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사상은 과거시험 답안지에나 쓰는 겉치레 문구에 불과했다. 예의범절의 번잡함과 형식성, 과도한 도덕주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 경제활동에 대한 경시 등 공맹사상이 후대에 남긴 각종 문제점은 그들이 살고 있었던 당시 세상에서도 꽤나 문제가 되었던 듯하다.  

예의범절의 번잡함에 대해 전국(戰國)시대 공맹사상의 최대 논적이었던 묵자(墨子, 기원전 469?-381?)는 한심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상례(喪禮)에 있어서, 임금과 부모와 처와 맏아들이 죽으면 3년상을 입소. 백부 숙부와 형제들은 1년, 친척들이라면 5개월, 고모와 여자형제들 및 고종과 이종 사이도 모두 몇 달의 상복을 입는 기간이 있소. 간혹 그런 상복을 입지 않는 기간에 『시경』을 외우기도 하고, 『시경』을 현악기로 연주하기도 하며, 『시경』을 노래하기도 하고, 『시경』을 춤추기도 하오. 만약에 당신의 말을 따른다면, 곧 군자들은 어느 사이에 정치를 하고, 백성들은 어느 사이에 할 일을 하겠소."(『묵자』 공맹편).

이들이 읽어야 할 책 또한 끝이 없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이렇게 말했다. "유가는 육경을 법도로 삼는데, 경서와 주석이 너무나 많다. 여러 세대에 걸쳐 배워도 그 이치를 다 체득할 수 없고, 평생에 걸쳐 배워도 정통할 수 없다. 광범위하지만 요점을 잡기 어렵고 노력한 것에 비해 효과가 적다"(『사기』, 태사공자서).

■ 유교자본주의라는 왜곡

그렇게 비판받던 공맹사상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과 함께 1980-90년대를 통해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버드 대학의 에즈라 보겔(Ezra Fogel) 교수는 『네마리의 작은 용』(The Four Little Dragons)이라는 저서에서 대만, 한국. 홍콩, 싱가포르의 4마리 용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에는 이들의 경제성장을 규정하는 상황적 요인만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유교의 전통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현재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에서는 공자와 맹자를 강조하고 전 세계 공자학당을 세우고 중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논리를 권위주의적 국가 및 경제운영에 맞추어버린 견강부회(牽强附會)이며 악의적 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한국의 경제발전과정은 유교적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반해 왔다. 도의와 원칙을 앞세우기는커녕, 천박한 공리주의와 원칙 없는 타협으로 정실과 부패를 남발했으며, 이러한 천민자본주의가 "올바름을 바르게 지키고,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正其宣不謀其利)는 유교정신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유교정신은 무위(無爲)의 정치이지 통제정치가 아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강한 정부 역시 유교의 특징으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유교사회의 선비들은 엄격한 윤리원칙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고 재야에 머무는 일(出處)을 분명히 했지만 군사독재 시절의 관료 엘리트들은 부도덕한 정권에 빌붙어 권세와 이익을 탐하고 부패와 횡령을 자행했던 사람이 태반이었다. 지금의 중국 또한 이러한 권위주의적 통치의 전형이다. 

어쩌면 현재와 같이 기업과 정부의 사회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이 더욱 유학과 관련이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기업에서의 사회책임(ESG)은 이익에 앞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주리종(義主利從) 혹은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같은 유학적 도덕원리와 지극히 맞기 때문이다. 

■ 이상주의자의 힘

과거 공맹의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이들이 입각하고 있는 인간관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령 법가(法家)의 한비자(韓非子:?-BC.233)는 공자와 맹자와는 전혀 상반되는 인간관을 보였다. 그가 이해하는 사람이란 "사랑에는 기어오르고 위압에는 복종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군주는 덕(德)과 형(刑)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저 호랑이가 능히 개를 굴복시키는 까닭은 발톱과 어금니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령 호랑이가 발톱과 어금니를 버리고 개로 하여금 그것을 쓰도록 한다면 호랑이가 도리어 개에게 굴복할 것이다."(『한비자』 이병편).

이런 인식은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감동의 힘이 아니라 "공포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군주는 짐승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여우의 술수를 부려야 하며, 때로는 사자처럼 힘으로 눌러야 하는 것이다(『군주론』, 제18장). 

우리는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응시하는 현실 속에 대부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지 않다. 세상이 여전히 "동물의 왕국"인 것이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풀」이란 시에서 민중의 강인함을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로 표현했다. 논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 '바람'은 억압자이었으나 이번에 '바람'은 군자고, '풀'은 소인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착해지면 백성도 착해집니다. 군자의 덕이 바람과 같다면 소인은 풀과 같은 것이라,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쏠리게 마련입니다"(안연:19).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이런 생각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2500년을 걸쳐 논어와 맹자가 우리에게 전승되는 이유는, 김수영의 '풀'과 공자의 '바람'이 어울리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와 같은 이상주의자들의 최대 강력함은 그들이 시류에 따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現實)의 상황이 어려웠을 때 이상(理想)이라는 벡터를 맘껏 늘려놓는 것이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이상의 끈을 잃어버린 개혁은 현실의 강력함에 좌절되기 쉬운 것은 역사의 경험이다. 두려워도 힘들어도 대장부의 기개와 변하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으로 이상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것, 그것이 공자와 맹자가 선택한 삶이었다. 

■ 덕 있는 사람은 동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인류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 천지다. 그들 모두 사람의 가능성을 믿었고, 평화와 사랑의 힘을 믿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매일 실천했고, 바른 실천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했다. 그리고 비록 그 길이 부귀영화와 상관없을지라도 꿋꿋이 즐기며 걸어갔다. 

묵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兼愛사상). 순자는 인간이 비록 천성은 악할지라도 자기수양에 의해서 충분히 덕이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며 예치와 법치로 보완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맹자는 도덕적 행위의 반복이 맑고 강한 신념(호연지기)으로 커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평화의 힘을 믿었던 예수와 간디와 묵자와 공자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이 모두는 평화를 사랑하고, 그 일에 진심을 다하고,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갔다는 차원에서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을 살아왔던 수많은 선배 개혁가들과도 크게 차이가 없다. 

이들은 마치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거대한 인류의 강을 따라가는 개개의 물줄기와 같았다. 그리고 그 장강(長江)의 흐름을 따라 함께 가는 이유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기쁨이 생각보다는 꽤 크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석양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케 한다. 지는 해에 의지해 나그네는 따뜻한 잠자리를 찾아간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도 우리에게는 석양의 붉은 해와 같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좌절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을 누구도 몰라주었을 때이다. 논어의 유명한 맨 앞장은 이것을 절절히 풀어낸다. 첫째 문장은 세상을 바꾸려 공부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즐거움을 나타낸다(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둘째 문장은 같은 뜻을 품은 동지가 모이는 기쁨을 나타낸다(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마지막 문장은 이 길을 걸어가는데 비록 세상이 몰라주더라도 화내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경계한다(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공자에게 있어서 그 어려움을 견디었던 '즐거움', '기쁨', '화내지 않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공부와 동지의 힘일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선현들의 생각과 연결되고 배움을 통해 더욱 굳어진다면, 또한 주변에 항상 동지가 있다면, 힘든 가시밭길 속에서도 외롭지 않다. 

사실 공자의 덕치와 수양 일변도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논리다. 어진 정치는 엄정한 법치와 사회적인 규율, 적절한 이익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그것이 지난 수천 년 인류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을 믿는 힘이다. 공자의 말 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덕은 외롭지 않고 항상 동지가 있다는 구절이다(이인:25). 이기주의자 옆에 진정한 친구가 모일 리 없다. 이익이 없어지면 그들은 포말처럼 사라진다. 공자처럼 살아가면 항상 동지와 친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아무리 옳아도 앞뒤가 꽉 막힌 사람에게는 사람이 붇지 않는다. 공자께서는 자기 멋대로 하는 일이 없었고(毋意), 반드시 그렇게 하려는 게 없었고(毋必), 고집이 없었고(毋固), 나만을 생각하는 일이 없었다(毋我)(자한:4). 굳건한 신념을 가지면서도 꼰대 같지 않았고, 항상 겸손히 공부하고 성찰하려 했으며, 그래서 친구와 동료에 둘러싸여 있는 것, 그런 생각만으로도 공자와 그를 무척이나 따랐던 맹자에 대한 공부 이유는 충분하다.  

 

독서 오딧세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집니다.
 
1.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
2. 소크라테스의 죽음
3. 플라톤의 이상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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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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