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BP가 말하는 '쓸모', 도시와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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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BP가 말하는 '쓸모', 도시와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다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 대표 인터뷰
  • 2020.07.11 09:29
  • by 노윤정 기자
▲ 김철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대표. ⓒ알티비피얼라이언스
▲ 김철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대표.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사명(社名)에는 회사의 지향점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알티비피 얼라이언스(RTBP ALLIANCE, 이하 RTBP)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RTBP, 네 개의 알파벳 조합이 생소하긴 하다. 하지만 일단 어떤 말의 약자인지를 알고 나면 쉽게 잊어버리기도 어렵다. 'Return To Busan Port', 해석하자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동명의 가요 제목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귀에 익은 가요 멜로디가 떠오르는 듯한 이 이름에 담긴 의미는 따로 유추할 것도 없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떠오르는 궁금증은 "왜 RTBP는 부산으로 '돌아오라'고 말할까?"라는 점이다.

RTBP는 도시재생, 공간 기획, 문화 콘텐츠 기획 등의 영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찾고 제안한다. RTBP의 사업 내용에 대해 김철우 대표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문화에서 탈물질주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서 제안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 '여가', '주거'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실험의 일환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연작 프로젝트가 현재 부산 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섬이며 19세기 개항한 부산항의 진·출입로이자 배후단지인 동시에, 조선업 흥망성쇠의 역사를 겪은 곳, 바로 영도에서 말이다.

■ 지방에서 일하고, 놀고, 살고

▲ 끄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 끄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김 대표 역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나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하여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관련 일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사는 삶의 속도와 방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부산으로 돌아왔고, 영도에서 조선 관련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끝없는 호황을 누릴 것 같았던 조선업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영도를 떠났고, 대신 빈집과 빈 공장들이 늘어갔다.

김 대표가 RTBP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 두 가지는 바로 이러한 상황들에서 비롯했다. 일단,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는 개인의 기호와 취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적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고, 공부를 잘하면 서울로 가라고 했다. 마치 삶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외의 다양한 삶의 길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다"라는 것. 지방도시에는 다방면의 취향과 재능을 계발할 만한 공간과 콘텐츠가 한정적이라는 의미다. 또한, 조선업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영도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 공간은 늘어나는 현상에서도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공간,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RTBP의 출발이었다.

"아주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먹고 살 만한 일들이 얼마든지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삶을 사는 데 이렇게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프로젝트로서 진행하는 사업은 총 세 가지다. 각각 '플랫폼135', '끄티', '비탈'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플랫폼135는 메이커 스페이스, 끄티는 복합문화공간, 비탈은 일종의 리빙랩이다.

2015년 문을 연 플랫폼135는 조선기자재 공장을 재구성한 곳으로, 조선업 관련 분야에 종사하다가 일자리를 잃은 기술자들이 새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유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 관련 산업에 종사했던 엔지니어들이 공간, 설비를 공유하면서 폐자재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RTBP는 엔지니어들이 플랫폼135라는 공간을 통해 도시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RTBP는 빈 물류창고를 문화공간인 끄티로 탈바꿈시켰다. 버려진 창고였던 끄티는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시에, 인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일을 마치고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여가 공간이자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영감을 얻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 '비탈'에서 진행한 '마을의 시간' 중. 알티비피얼라이언스와 여러 팀들이 모여 봉산마을을 아카이빙하고 전시를 진행했다. ⓒ알티비피얼라이언스
▲ '비탈'에서 진행한 '마을의 시간' 중. 알티비피얼라이언스와 여러 팀들이 모여 봉산마을을 아카이빙하고 전시를 진행했다. ⓒ알티비피얼라이언스

플랫폼135와 끄티가 각각 일과 여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조성됐다면, 비탈에서는 주거와 관련된 특별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탈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영도 봉산마을의 빈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100채가 넘는 빈집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은 지역에서 마을 리조트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마을 리조트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RTBP가 나섰다. 원하는 주민들은 마을의 빈집을 매입하거나 자기가 사는 집 일부를 활용하여 숙박이 가능한 객실로 만들어서 마을 리조트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빈집을 자신의 콘텐츠를 판매할 가게로 바꾸어서 참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성된 마을 리조트의 프런트 역할을 바로 비탈이 하는 것이다.

현재 RTBP가 진행하는 이런 사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쓸모'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 우리 주변에서 활용하고 있지 않은 자산들을 꺼내서 사회 전체 자산과 가치를 늘리는 것. 그것이 바로 RTBP의 미션이다. 산업이 쇠퇴하면서 역할이 다했다고 여겨진 공간들과 사람들. 하지만 RTBP는 버려진 공간의 효용을 다시 찾아내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소질과 기술을 다시 한번 살릴 기회를 찾아주고 있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에서 쓸모를 찾아내어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총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증가한 사회의 자산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고 설명했다.

■ 주변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주변에서 가치와 쓸모를 발견하는 문제는 다양한 삶의 형태라는 문제와도 다시 연결된다. 우리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의 삶을 목표이자 모델로 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역과 그 안의 사람들이 가진 기술과 문화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수도권의 삶과 문화를 표준 삼아 따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 대표는 "다양성이 있는 삶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다. 그렇게 해야 도시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RTBP가 지향하는 바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을까. 당연히, 부산이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일단 익숙한 커뮤니티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곳이다. 그리고 익숙한 만큼 나의 삶의 속도와 이 지역의 삶의 속도가 맞기 때문이다. 일상이 나에게 맞는 속도로 흘러가는 곳이고, 그래서 어떠한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도 짧다. 또한, 잘 아는 곳이니 어떠한 정보를 빠르게 얻으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두가 지방을 떠나 서울로 가다 보면, 결국 부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게 되지 않겠나. 꼭 지방의 인구유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지역에서 자라면서 받았던 혜택,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지역의 문화와 정신, 이런 것들을 지역에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의 문화와 정신, 삶을 배워야 할 사람들이 보고 배울 모델이 없어진다. 그래서 내가 영향을 받았던 지역으로 돌아왔고, 다른 사람들도 이곳으로 돌아올 만한 여건을 만들고 이 지역에서의 삶도 이렇게 풍성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 '비탈'에서 진행한 '마을 영화제'. ⓒ알티비피얼라이언스
▲ '비탈'에서 진행한 '마을 영화제'.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그렇기 때문에 김 대표는 로컬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지역의 정체성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TBP 또한 영도라는 지역의 환경, 문화, 사람 등을 원천으로 삼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영도의 조내기고구마를 활용해 영도의 특산주를 만드는 사업도 지역성을 활용한 하나의 예다. 우리나라에서 고구마를 처음으로 재배한 지역이 영도라는 기록을 스토리화하고, 그 이야기를 담은 고구마주를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알리는 매개가 된다. 김 대표는 "지역이 가진 많은 것들이 자산이 된다. 그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지역을 알리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지역은 활성화되는 데 도움을 받고, 기업들은 사업 아이템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부연했다.

'다음 삶이 있다'. RTBP의 비전이다. 역할이 다한 듯이 보이는 공간에도, 기술에도, 사람에게도 또 다른 역할, 또 다른 삶이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남들 보기에 주류인 삶만이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수많은 삶도 충분히 가치 있음을 이야기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들이 다 간다고 하여 꼭 서울로 갈 필요가 없다. 그러니 부산을 떠났던 이들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주 거창하게 성공하지 않더라도, 소소한 성공과 가치가 모인 삶도 충분히 풍족할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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