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대신 선택한 '마을', 청년기본소득의 실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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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대신 선택한 '마을', 청년기본소득의 실험터
(주)공장공장 홍동우 공동대표 인터뷰
  • 2020.11.07 13:10
  • by 전윤서 기자
▲ 떠난 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같은 마을. 어떻게 이 마을은 길 잃은 청년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을까? ⓒ(주)공장공장
▲ 떠난 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같은 마을. 어떻게 이 마을은 길 잃은 청년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을까? ⓒ(주)공장공장

"세상일은 다 우연히 일어나죠."(웃음)

어떠한 계기로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홍동우 대표의 답변이다. 홍 대표는 언젠가 반드시 지친 청년들이 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 공간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홍동우, 박명호 두 공동대표가 진행한 제주 팝업 게스트하우스 '한량유치원'의 입주자였던 강제윤 시인이 20년 동안 공간을 대여해주겠다 제안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정착한 지역, 목포에서 '여행처럼 사는 마을' 괜찮아마을이 탄생했다. 

2018년 7월 30명의 1기 입주자를 시작으로 2018년 11월 30명, 2019년 10월 16명의 청년이 괜찮아마을을 거쳐 갔다. 김송미 입주자는 괜찮아마을 청년들의 삶과 공동체 생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행(多行)이네요>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래서 위로받은 마을에서 다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언젠가 다시 목포에 가고 싶어'라고.

떠난 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같은 마을. 어떻게 이 마을은 길 잃은 청년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을까? 괜찮아마을 홍동우 공동대표를 찾아가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똑똑똑- 소문 듣고 왔습니다.

Q. 여기가 청년들의 마음의 안식처 맞나.
그렇다. 고향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로 괜찮아마을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지내고 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공간 말이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는다.(참고: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 비수도권 인구는 2,582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방 출신 청년들은 고향에 대한 감성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돌아갈 곳 없는 청년들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재건축, 재개발로 없어졌다. 옛날에 느꼈던 감정도 찾아볼 수 없고 내가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 마을도 없어졌다. 갈수록 나 같은 친구들이 많아진다. 나는 우리 청년 세대들이 고향이 없는 세대라고 보고 있다.

청년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예전에 여행사를 하면서 많은 청년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만든 건 여행사였지만 사실 '여행프로그램'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같이 음악을 듣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이야기하고, 눈물도 쏟고, 서로 위로하고…. 여행했던 친구들이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도 친목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형성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어쩌면 치유의 목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신과를 방문해 상담받고 치료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신과 방문의 문턱이 너무 높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 부르는 것과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약을 처방받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서 자살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병원을 못 가서 죽음을 선택하는 나라이다. 나는 죽음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고 싶었다. 

▲ 홍동우 대표 ⓒ(주)공장공장
▲ 홍동우 대표 ⓒ(주)공장공장

Q. 괜찮아마을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목포에 정착했다는데.
사실 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괜찮아마을은 지역에 청년들이 살아보는 경험을 주고 이들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포에 남게 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표를 정착에 두지 않았으니 성과가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이다. 70명이든, 80명이든 괜찮아마을을 수료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다시 다른 일을 도전해볼 수 있는 마음, 여유가 생긴다면 이후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정착하는지는 상관이 없다. 뜻밖에도 30여 명의 친구가 남았다. 이들과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결과였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괜찮아마을 운영 후 전국적으로 지역살이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는데, 현재 청년들의 성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노마드적 성향이 강하다. 한 곳에 연고를 두지 않고 배낭 하나,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일할 수 있다. 지금 어느 지역에 30명, 40명이 남아있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포라는 지역을 몇 명이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살다가 지쳤을 때 돌아갈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고, 이때 동시 거주자가 몇 명 있다는 수치가 더 유의미하고 본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올 사람은 오고. 우리는 고향 생태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남았다'라는 표현보다는 '괜찮아마을이 갖추고 있는 인프라와 프로그램이 지금은 30명의 동시 거주자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온라인 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동시 접속자 같은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서비스의 가입자 수이고 그들의 사용 빈도수와 충성도이다. 이제부터 청년들의 지역 정착에 관한 이야기는 고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도시재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한번 살아볼 용기를 준 괜찮아마을을 통해 청년들이 스스로 지역에서 기회가 있구나 깨달은 거다.

Q. 이 말을 들으니,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청년들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겠다는 생각도 든다.
맞다. 청년들은 부역(賦役)이 아니니 말이다. 

Q. '한량이 꿈이다', '그냥 놀기만 해'라고 하는데, 사실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지 않나.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일은 삶이다. 요즘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앞으로의 시대는 오히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는 오히려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인 세대가 될 수 있다. 일과 삶이 동등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보다 주체적일 수 있다. 앞으로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성취감을 얻고, 발전하고, 만족하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이고, 성취감을 얻고, 발전하고, 만족하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 일을 24시간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나. 

일을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므로 이 일이 내 삶과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과 삶을 분리해서 이야기하는데, 내 인생의 절반을 버리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의 답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나온다'이다. 게임을 밤새 하는 사람에게 '게임을 밤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니?'라고 안 묻지 않나. (웃음) 

▲ "괜찮아마을을 만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 힘들게 하는 것." ⓒ(주)공장공장
▲ "괜찮아마을을 만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 힘들게 하는 것." ⓒ(주)공장공장

Q. 청년들이 마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할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어떤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아직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사회다. 특히나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이 그 가치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세상이 되려면 가치를 높게 인정해주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이 충족되어야 한다. 아직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라고 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 사회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건 좀 진지한 이야기인데….

Q. 진지한 이야기?
괜찮아마을을 만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 힘들게 하는 것.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청년들이 한 달에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있다. 월세, 각종 공과금, 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 총 166만 원 정도가 든다. 서울에서 사회 초년생 월 급여가 평균 195만 원이라고 한다. 그럼 남는 금액은 29만 원이다. 적금도 들고, 여행도 가고, 취미활동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도 사기에는 팍팍하다. 게다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한다면 상황은 더 어렵다. 모을 수 있는 돈은 없어진다. 50%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청년 인구는 더 심각하게 몰려 있다. 직업, 생활 인프라, 문화 모든 것이 서울에 있다. 그런데 서울을 떠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불가능하다. 서울에 가는 건 쉽지만 오는 건 어렵다고도 한다. 이 상황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배부른 소리이다. 이 상황에서 실패를 연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내가 만들어가는 괜찮아마을의 5년 뒤 목표는 한 달에 평균 300만 원의 수익을 얻으며, 60만 원 정도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청년 100여 명의 마을이 되는 것이다. 월세, 식비, 교통비까지 포함된 이 생활비로 생활할 수 있는 표준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보고 싶다. 서울에서 숨만 쉬어도 160만 원을 지출해야 했다면, 우리는 지역에서 빈집을 공동체로 바꾸며 100만 원을 더 벌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 

서울시나 경기도에서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려 한다. 아직 금액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괜찮아마을이 100만 원가량을 아끼는 도시 또는 공동체가 된다면 서울시에서 기본소득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이 있으니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다. '지긋지긋했던 회사, 그만두고 한 달만 다른 생각을 해보자'가 가능하다. 기본소득, 시간,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된다. 이 정도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좋아하는 것을 하라'라는 말을 할 수 있다. 

▲ 괜찮아마을 1기 '누구나투어' 진행 모습. ⓒ(주)공장공장
▲ 괜찮아마을 1기 '누구나투어' 진행 모습. ⓒ(주)공장공장

Q. 궁극적으로 괜찮아마을의 한 달 생활비를 60만 원으로 목표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
저렴하게 월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목포에는 빈집이 많다. 그 빈집을 사회적 자본으로 활용해서 수리하고 저렴하게 빌려주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Q. 사회적 자본이라 한다면?
이 일이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투자하는 사람도, 괜찮아마을을 운영하는 우리도 이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끔. 지금은 민간자본에서 투자를 받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라고 많이 말한다. 윗세대들은 한국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본을 축적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다음 세대에 대물림되지 않고 있다. 기회는 희박해지고 자본을 모으는 게 힘들어졌다. 윗세대가 자식에게 물려준다면 누구는 금수저가 되고 누구는 흙수저가 된다. 기회의 불균등으로 사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자산을 혈연관계가 아니라 자식 세대에 투자하는 건 어떨까-제안하고 있다. 물론 투자 수익률이 높은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청년 세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믿음으로 투자하고 있다.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투자로 인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사회를 가져다줄 수 있고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거라는 기대로 말이다. 현재는 목포 원도심에 민간 투자로 20억 원 가까이 투자를 받았고 건물은 5개를 확보했다. 이것을 일종의 세대 간 펀드처럼 여기고 있다. 앞으로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이어지는 기회의 배분이 투자의 형태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Q. 투자자들을 한 분 한 분 다 설득하고 있나.
그렇다. 발표도 하고 투자자들이 직접 괜찮아마을에 와보고. 다른 세대지만 기꺼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Q.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가 슬로건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웃음) 괜찮아마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이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새로운 뭔가를 찾아서 했다. 강요하는 것보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 더 생산적이더라. 

Q. 코로나19 시기, 로컬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공동체의 형태는 공고해진 것 같다. 앞으로 공동체의 기회는 더 많아질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작은 마을 단위에서 생활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는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대도시의) 개념이 아니라 로컬 중심의 생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때 괜찮아마을은 고향 없는 우리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로컬 커뮤니티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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