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18리, 예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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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현장] 18리, 예뻐졌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 18번가 마을호텔' 3월 정식 오픈
  • 2020.01.31 18:14
  • by 전윤서 기자

태백선을 따라 아담한 간이역인 '고한역'이 등장한다. 고한역을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은 바로 강원도 정선의 고한읍 18리이다. 110가구가 살고 있는 이 소담한 마을은 정선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바라봤다. 이제는 '고한 18번가 마을호텔'로 정선의 변화 바람을 몰고 올 이 마을을 주목해보자.

▲ 고한 18번가 전경 ⓒ고한18번가 마을만들기 위원회


■ 쇠퇴한 마을

한때는 석탄을 실어 나르며 부흥을 맞이했던 정선은 채산성이 낮은 탄광들은 폐광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90년도 후반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가 생겨나고 스키장과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듯했지만 한 번의 위기를 겪은 고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다.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마을을 떠날 마지막 기회 또는 재개발의 기회로 보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의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는 동안 고한 18리는 그대로 방치돼 장기주차 차량과 빈집, 쓰레기더미로 넘쳐나게 되었다.

 

■ 고한 18리의 어벤져스 결성되다

2017년 인쇄업 하늘기획의 새 보금자리를 찾던 김진용 사무국장은 저렴한 공간을 찾아 고한 18리를 찾았다. 당시 빈집투성이의 마을을 보고 한 편으로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같은 시기 주민의 선거로 선출된 고한 18리 유영자 이장은 재개발을 도모했던 이전의 마을리더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허물고 짓는 재개발이 아닌 빈집을 다시 살리는 재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을에 변화를 몰고 온다. 이윽고 마을의 젊은 피, 들꽃사진관의 이혜진 작가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고한 18리를 이끌 어벤져스가 결성된다. 이들은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며 본업을 잠시 미루더라도 재생에 두 팔 걷고 나섰다.

▲ (왼쪽) 유영자 이장,  (위) 김진용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시무국장, (오른쪽) 이혜진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간사 ⓒ이혜진 작가

이장의 행정조직인 개발위원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을 재생을 위한 길로 들어선다. 최종적으로 110가구의 반장 8명을 포함한 지역위원 16명과 교수, 화가, 디자이너 등 외부 전문위원과 자문위원 10명 총 26명으로 구성된 임의단체인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가 꾸려졌다.

 

■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마치 흉가 같은 빈집, 어둡고 쓰레기 더미가 한 가득인 마을은 관광객들은 물론 주민들조차 다른 도로로 피해 가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마을은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동시에 남들에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공간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왜 이렇게 더러울까?'라는 단순한 물음은 '그럼 청소부터 해보자'라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쓰레기 상습투기장소에 하나 둘 꽃을 심으며 공동체의 씨앗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마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본격적인 마을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 마을 재생 후 깨끗하고 화사해진 골목길 풍경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

'우리 동네 이름이 마치 욕하는 것 같아'라는 주민의 말에 마을 이름을 바꿔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무언가를 뜻하는 18번이라는 숫자에 골목을 뜻하는 번가를 결합해 지금의 '고한 18번가'가 되었다. 오랫동안 지역재단에서 근무한 김 사무국장은 재단이 했던 아카데미 사업을 마을에서 기획하기도 했다. 혼자 터득했던 공예기술은 마을수업으로 어느새 나눌 수 있는 기술이 된다. 한편으로는 재료비 300만 원을 모아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그러나 마을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하는 것은 마냥 순조롭지 않았다. 재개발의 기대를 안고 있던 주민들에게 빈집을 채워 나가는 모습은 반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골목길 콘서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주민들의 항의로 중단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고. 마을위원회 전문위원인 강경환 영화감독은 누워있는 '마을호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2018년 10월 도시재생대회 국토부 장관상과 더불어 소규모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상황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 2018년 10월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 지역의 통로, 마을호텔

마을의 골목은 호텔의 로비이며 엘리베이터이자 복도가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의  사진관, 고깃집, 슈퍼를 호텔이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더불어 지역축제, 관광지 정선의 우수한 문화관광 콘텐츠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채널로 역할하게 된다. 

국토부에 선정된 사업은 5년 무상임대가 가능한 상가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유이장은 자신의 집을 선뜻 내놓으면서 마을호텔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지난 8월 본격적인 시공에 돌입해 2월 가오픈이 준비 중이다. 또한 공예수업을 기반으로 공예카페 '수작'이 오픈하기도 했다. 매장 내에서는 주부들이 손수 만든 기념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 공예카페 '수작' 리모델링 전,후 모습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주민들은 직접 노후주택 디자인을 결정하고 골목정원을 형성하는 등 마을 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1개의 노후주택은 눈부신 변화를 이룬다. 2년 전과 달라진 마을 모습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힘든 과정과 갈등을 모두 극복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어르신들은 입소문으로 인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보는 재미로 하루를 채운다고 한다.

모두가 기피하던 골목은 낮에는 야생화가, 밤에는 LED꽃이 반겨주는 따듯한 골목으로 변모했다. 김진용 사무국장은 '18리를 바꾼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폐광 이후 지역재생에 5억이 투여됐지만 마을을 바꾸기는 실패했다. 결국 금전의 문제가 아니라 주축이 되어 주민들을 이끌어 갈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만나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향후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는 협동조합을 설립할 예정이다. 3월 정식 오픈 예정인 '고한18리 마을호텔'은 고한17리, 고한10리로 번져가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지난 2년간 진행한 프로그램 ⓒ고한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버려진 빈집이 즐비한 골목에서 가능성을 보았던 것처럼 가능성을 믿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행동하면 변화한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 정말 예뻐진다.

예뻐졌다, 18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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