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소에 소비하는 음식과 물건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가를 받고 생산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물건이 여러 가공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사를 통해 특정 기업의 부당한 대우, 위험한 노동 환경 등을 접할 뿐입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고,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정한 대가를 받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가도록 지지하는 운동입니다. 최근, 다양한 도시, 학교, 기업, 기관 등이 공정무역을 지지하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기사는 한국의 공정무역마을과 공정무역 공동체 사례를 통해, 소비자 공동체와 생산자가 어떻게 연대하는지 소개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교육청은 공공기관 우선구매 실적 관리를 위한 담당자만 지정되어 있는 반면, 우리 교육청은 공공구매 실적 관리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기업 활성화 지원이라는 포괄적인 업무 담당자가 별도로 정해져 있어요. 덕분에 공정무역에 대한 체계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고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뀌어도 인계인수를 통해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해요." - 울산광역시교육청 박OO 주무관
학교와 지역사회를 공정무역 가치로 연결하는 사회적 가치
울산광역시교육청(이하 '울산시교육청')은 2021년 '공정무역실천기관' 인증을 받고 5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곳이다. 교육청의 역할은 무엇일까? 담당자나 교육감이 바뀌면 언제든 활동이 중단되지 않을까? 취재하는 내내 계속 맴도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우려를 불식하듯 촘촘한 구성과 다채로운 내용을 기반으로 내실 있는 기관의 모습을 발견했다.
1980년대 말, 공정무역운동이 시작된 이래 '공정무역의 인식 확산'이라는 사명은 언제나 최우선의 업계 과제라 할 수 있다. 영국, 벨기에, 독일 등 유럽의 공정무역도시들은 교육 현장을 통해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캠페인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수백 개에 이르는 공정무역학교가 지역별로 다양한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공정무역 인식 확산과 제품 구매 증진에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의식 있는 미래의 소비자를 길러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울산시교육청은 2019년부터 시작한 울산지역 사회적경제기업의 판로 지원과 자생력 강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정무역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교육청 내 두 곳의 카페는 윤리적 생산과 소비문화를 확산하고 공정무역 제품 이용을 독려하기 위한 활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청마실 카페는 장애 학생들의 실습장으로 활용되고, 숲375 카페는 사회적기업이 위탁 운영을 맡음으로써 여러 형태의 사회적 가치를 아우른다. 커피를 포함하여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이 판매되며 시민들과 만나고, 정기적인 공정무역 캠페인, 공정무역 홍보관 상시 운영, 학교협동조합이 있는 학교 중심으로 선도적인 공정무역 인식개선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청 직원 사회적경제 동아리 '지구 한바퀴'
전체 직원 수 400명 남짓한 울산시교육청에 30명의 직원이 사회적경제 직장 동아리인 '지구 한바퀴'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매월 만나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 실천, 공정여행에 대한 강의 및 정보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 세계공정무역의 날에는 울산시교육청 자체적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하여 진행하는데, 동아리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된다. 소속 기관이나 기업이 공정무역실천기관 인증을 받는다고 해서 이처럼 직원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울산시교육청은 매년 새롭게 수립하는 '사회적경제활성화 지원 계획'에 공정무역 캠페인 활동 및 본청 부서의 각종 행사 시 공정무역 제품 사용 권고 등 내용을 포함한다. 이 계획은 울산시 250여 학교에도 안내되고 교육청 누리집에도 게시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교육청은 사회적경제 기업 우선구매 충족기준인 4%의 두 배 이상을 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발표된 계획에서는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이를 강화하거나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2024년 10월에 열린 사회적경제 가치나눔 장터에는 울산지역 32개 업체가 기업 및 제품 홍보 부스로 참여했다. 지역에 공정무역기업이 없는 상황이라 지구 한바퀴 회원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들고 직접 부스를 차리고 홍보에 나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시민으로서 공정무역 식품 이용"
울산시교육청의 공정무역 활동에는 아이쿱의 활동가들, 사회적경제 기업 대표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경제 활성화 실무위원회'의 협력이 중심에 있다. 사회적경제 및 공정무역 관련 다양한 캠페인을 함께 기획하여 참여하기도 하고,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공정무역 제품 판매 확대가 이루어진다. 임직원과 교사, 학생들의 공정무역 교육은 지역의 사회적기업 및 아이쿱, 소비자기후행동 활동가들이 강사를 맡아 진행한다. 교육청 지원으로 설립된 학교협동조합의 학부모들도 공정무역 확산에 직간접적인 도움과 참여를 맡고 있다.
지난 가을, 울산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통합사회 수업 시간에 '소비자기후행동과 함께 하는 공정무역 특강'을 열었다. 수업 이후에는 각자가 수업 소감문을 토대로 자신의 진로와 연계된 포트폴리오로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정무역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대한 공감과 인식이 학생들의 향후 진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을까?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의 말을 들어보았다.
"공정무역이 부당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정무역이 확대되면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고 소비자 또한 질 좋은 물건들을 얻을 수 있어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환경이 낙후된 곳에는 환경을 개선해 주고, 교육이 필요한 곳에는 학교를, 의료 시설이 부족한 곳에는 병원을 설립하는 등, 착한소비가 공정한 세상을 앞당긴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전 세계에서도 공정무역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단체들을 만들어서 공정무역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울산 덕신초등학교는 '식생활문화개선 연구학교'라는 2년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식생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과 융합형 수업을 운영해 왔다. 학생들은 환경, 건강,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여 식품을 선택·소비하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을 탐구한다. 그중에서도 6학년 학생들은 '세계시민으로서 식생활'이라는 주제로 심화하여 카카오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들의 불공정한 현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공정무역 초콜릿의 의미,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고 친구들과 토론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정무역실천기관으로서 울산시교육청의 행보는 공정무역을 단순한 소비 형태가 아닌 '교육적 가치'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으로 이어지는 교육공동체의 변화와 혁신은 우리 사회의 미래 방향과 직결된다.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공정과 포용 및 다양성, 환경과 기후에 대한 고려 등의 가치를 통해, 미래 세대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선 학교의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기획, 촉진, 지원하는 전국 교육청들의 적극적인 공정무역 참여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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