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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하반기의 수요세미나(지속가능고령사회와 지역통합돌봄)를 마치며, 필자의 문제의식을 정리한 것이다. 세미나 관련 모든 자료는 링크(클릭)에 정리되어 있다. 

1. 고령화라는 '유령'

인구감소, 고령화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년 90~11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다 2007년 50만 명, 2023년에는 2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추세를 반영하여 2024년 5,175만 명에서 2072년 3,622만 명으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통계청은 예측한다. 고령자 비율은 47.7%. 부양률도 118.5%(2025년은 43.9%)로 치솟는다. 

경제성장률 하락, 재정적자 누적도 자주 언급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30년대 연 평균 1.3%, 2040년대 0.7%의 성장률을 예측한다. 기획재정부, 국회예산정책처의 장기예측에서도 2050년 246조 원의 재정적자(GDP대비 8%), 국가채무 4,113조 원(GDP대비 159%), 국민연금, 의료보험의 적자/기금고갈을 염려한다. 

과연 그럴까? 위의 전망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수십년의 미래는 텅 빈 블랙박스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발전, 산업체계 등 다양한 기회가 창출된다. 인구감소를 4차산업혁명시대 자동화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아직 출몰하지도 않은 '유령'에 너무 쫄 이유가 없다. 고령화를 시대의 부채가 아니라 자산과 기회로 사고하는 것. 그 낙관과 실용의 전략구상이 이 글의 주제다.

2. 베이비부머의 명암

고령자는 '한 뭉텅이'가 아니다. 이들은 60대에서 90대까지 거의 30년의 차이가 난다. 살아온 인생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도 다르다. 좀 더 세분화하여 분석해야 한다. 

평균치만 본다면 60~70%는 경제적으로, 50%는 건강/사회/여가/문화 활동에서 불만족스럽다고 대답한다(노인실태조사). 다르게 보면 30~40%는 경제적으로 만족하고, 50%는 아직도 건강하다. 

노인빈곤율도 자주 언급된다. 40%로 OECD 평균치(14.5%)를 한참 넘어서는 현실에 분개한다. 그러나 그 수치는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연금 발전이 늦었던 우리가 퇴직 후 수입이 크게 있을 리 없다.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금융자산을 연금으로 전환하면 20% 후반대로 줄어든다. 

나라 경제의 수준이 달랐으니 당연히 세대에 따라 빈곤율 차이가 크다. 1930년대 후반 출생자의 (자산조정) 빈곤율은 56.3%다. 40년대 전반출생은 51.3%, 40년대 후반 44.5%, 50년대 전반 27.8%, 50년대 후반 18.7%로 급속히 줄어든다(KDI Focus, 2023, vol. 126). 고령층의 주력을 부상하는 베이비부머(1955~74년)는 부모세대(1930~40년대생)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졸 세대이며, 국민소득을 3천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올려놓은 주역이었다. 일할 의욕, 능력, 체력 모두 아직은 출중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2024년 50대의 순자산은 5억 1천2백만 원, 60대는 5억 1천9백만 원이었다. 이 자산으로 남은 30여 년을 버티기는 어렵다. 10여 년 이상 부모부양의 의무가 있고, 저성장기를 힘겹게 견뎌가는 자식들도 챙겨야 한다. 새롭게 일자리로 수입을 얻던가, 아니면 수도권의 자산을 팔아 지방으로 이전해서 현금 능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새로운 성장동력과 지방균형발전에 도움을 주면 금상첨화다. 곧 65세가 되는 1960년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에게 남은 대비의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 자료: 통계청,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2024년 12월. 
* 자료: 통계청,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2024년 12월. 

3. 고령화: 노동력 활용의 기회

2017년에 발간된 영국의 한 보고서(The Economic Contribution of Older People in the United Kingdom)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국에서는 50세 이상 사람들이 연간 5,000억 파운드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 연간 78억 파운드의 무급보육을 하며, 43.4억 파운드의 자원봉사를 한다. 고령자 고용 증가와 함께 부양률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다. 이게 현실이며, 이러한 인식이 옳다. 

고령사회 최대의 과제는 일자리 마련이다. 고령자 삶의 건강성 유지, 사회의 경제적 활력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정책 대상이다. 현재 일자리를 가진 고령자 중 37.5%는 정부 지원 일자리다. 2004년 도입 당시, 2만5천 명, 212억 원의 사업이 2024년에는 103만 명, 2조 262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혈세 쏟아 노인 단기알바 양산!"이라는 신문기사 제목처럼 비판도 많다. 그러나 노인 노동이 가지는 종합적 효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한 연구는 노인일자리사업이 자아효능감, 삶의 만족도, 활동성, 사회관계, 가족관계, 소득안정에 기여하였음을 통계적으로 검증하고, 참여자의 육성도 전해준다(노인인력개발원, 노인일자리정책사업평가). 서울대학교 연구팀은 참여자 1인당 연 54만 6천 원의 의료비 감소효과를 추정한다(노인일자리참여자의 보건의료효과분석). 

노인일자리는 복지의 최고 수단이다. 스스로 건강과 활동성, 경제적 생활 안정을 이끌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복지의 최대목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기본소득'보다는 '일자리복지'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복지만이 아니다. 실제로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충분하게 많다. 미래의 노동시장에서 노인이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편견도 버리자. 흔히 AI/IT로 대표되는 미래산업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늘어나는 일자리는 대부분 '재래산업'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 예측(Future Job Report 2023)에서도 (주로 선진국에서) 향후 5년간 최대로 늘어나는 직업은, 농업장비운영(260만 명), 대형트럭버스운전사, 직업교육 교사, 기계 수리공, 사업개발전문가, 건출관련 전문가(각 200~250만 명), 대학 및 고등교육 교사, 판금/용접, 특수교육 교사, 소형트럭/배달서비스 운전자(각 100~200만명)였다. 

한국에서의 마찬가지다. 고용정보원은 향후 10년간(2022~2032) 돌봄(39만 명), 컴퓨터/소프트웨어(11만 명), 간호사(11만 명), 조리사(7만 명), 보건의료(7만 명), 치료재활(6만 명), 청소환경미화(6만 명), 사회복지(5만 명), 연극영화(4만 명), 소방방재(4만 명) 등의 신규채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직종 거의 다 체력과 능력 면에서 베이비부머들이 수행 못 할 일도 아니다. 

IT라고 베이비부머가 약하지도 않다. 모바일/PC 사용에 익숙하며, 약간의 교육을 통해 IT산업 취업도 가능하다. AI시대에 급증하는 데이터 가공업무를 예를 들어보자. 데이터가공업무에 대한 면밀한 직무분석, 254명의 고령자 IT 교육의 효과를 검증한 연구(김준형, 한양대 석사논문)에 따르면 1인당 120만 원(현재 취업 중), 260만 원(무직)의 온라인 교육을 거치면 충분히 현장 투입이 가능하다. 무직자 10만 명을 IT 인력으로 만드는데 2,600억 원이면 충분하다. 대체 무엇이 걱정인가? 

이제 필요한 것은 베이비부머 노동력 활용을 위한 직무설계, 교육프로그램, 직업알선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아울러 시니어클럽 등 일자리 수행기관의 열악함(계약직 전담 인력 1인이 최대 300명 관리), 법적 리스크의 경감(장애인 의무고용 의무, 빈번한 법적 소송 문제) 등도 검토해봐야 할 사항이다. 

4. 고령화: 사회발전의 기회

많은 노인이 고독 속에 살고 있다. 60세 이상 10명 중 4명은 도움 청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토로한다. 물론 각종 노인시설은 존재한다. 전국에 노인복지관 438개, 경로당 68,792개, 노인교실 1,225개가 있다. 그러나 참여하는 것은 10% 남짓이다. 자녀와의 동거는 급속히 줄어들고(2020년 20.1%→2023년 10.3%), 배우자조차 사망한 독거노인이 전체의 32.8%다(노인실태조사, 사회조사 등).

이들을 사회와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 노인일자리다. 교사출신의 한 참여자는 퇴직후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병원에도 다녔으나 사업참여를 통해 극복했다고 말한다. 실패한 자영업자 출신은 알콜중독에 빠졌으나, 숲가꾸기 활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고 증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익할동이 가져오는 '동감능력'의 확장이다. 전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병든 독거노인을 돌보는 통합돌봄서포터즈 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처음에는 그냥 나이 드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나의 부모님 같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분들이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밤이 두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체크하며 위로해드리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타인에 대한 동감능력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나, 그 '씨앗'은 일상의 공적 참여를 통해 더욱 자란다. 그것이 개인의 행복에도 더욱 도움을 준다. 공익형(월 30시간, 29만 원), 사회서비스형(월 60시간, 76만 원) 일자리라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행복', '호혜적 사회만들기'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자료: 세종시니어클럽 내부 자료.
* 자료: 세종시니어클럽 내부 자료.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자리일까? 예컨대 2024년 세종시니어클럽에서 시행한 일자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시설 및 사회복지시설 환경정화(60명), 지역주거 및 생태환경 정화(200명), 학교 교통안전 활동(28명), 노인가정방문/반찬배달/말벗 등(24명), 버스정류장과 공공자전거의 관리(127명), 아동 및 영유아시설 지원(83명), 공공시설의 행정보조(24명), 취약계층에 대한 무료빨래방/시니어푸드 지원(29명), 노인시설의 지원(30명), 장애인시설의 지원(16명). 필자의 87세 노모는 작년까지 어린이집에서 구연동화를 하셨다. 동화의 그림도 직접 그린다. 그 '강아지'들을 만날 생각이 삶의 활력을 가져다준다. 70대 중반 삼촌과 숙모는 산에서 나무치기, 방과후학교 도우미를 하신다. 이런 일자리가 있음에 항상 감사해한다. 개인삶에게도 사회에도 필요한 일이다. 

노인의 사회성 회복과 관련해서 자원봉사 영역도 중요하다. 2023년 20세 이상 성인의 총자원봉사자는 1,686만 명이었다. 참여율은 20대(8.9%), 30대(6.1%), 40대(11.1%), 50대(12.0%), 60대 이상(8.6%)로 조사된다. 실제 활동력 있는 노년을 50%로 보았을 때 60대 이상의 수치는 17%로 추정할 수 있다. 좀 더 많은 자원봉사를 위해서는 '무급'의 벽을 깨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자원봉사가 완전한 무대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ACTION(빈부격차해소), AmeriCorps(팀단위 지역봉사), SeniorCorp(시니어봉사) 등의 다양한 봉사단이 운영되며 여러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중요한 목적은 시민의 공적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지, '무급'을 순혈성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도 관련법을 정비하고(국가봉사법 제정), 총괄시행기관(시민공익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지론이다. 그리고 노인의 '공익형 일자리',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는 유무급의 중간형태로 충분히 호혜적 사회만들기의 중심축으로 활용할 수 있다. 

5. 고령화: 산업발전과 지방발전의 기회

고령화율 40%는 거대한 노년 소비계층 창출을 의미한다. 한국의 '고령친화제품' 시장은 2022년 82.7조 원이며 급속히 성장한다. 미국은 2025년 3조 5천억 달러, 일본은 100조엔(약 8천억 달러)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도 노인구매력은 2030년 26조 7천억 위안에서 2050년 106조 7천억 위안으로 확대된다. 우리 정부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2005년), 고령친화산업진흥법(2006년), 인구정책TF(2019년) 등 행보가 빠르다. 2021~2025년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고령친화 기술, 기업, 산업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열거한다. 

분명한 것은 고령화는 거대한 고령친화산업 발전의 기회라는 것이다. 고령화는 선진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인류 전체가 직면한 현상이다. 아프리카도 동남아시아도 고령화의 속도는 빠르다. 돌봄, 요양, 의료, 치유식품, 문화관광 등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한국도 고령화라는 시장 조건과 발전된 산업기반을 연결하면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들 산업은 어디에서 발전할 수 있을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방이다. 지방은 자산 가격이 싸며, 활용되지 않는 자원들 천지다. 빈집들, 폐교된 학교, 국공립 공유지 또한 많이 존재한다. 이곳에 고령친화산업, 친환경에너지, 문화/관광/레스토랑 등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령층의 인력과 세상을 상상한다. 베이비부머는 아직 튼튼하다. 국민소득을 3천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끌어올린 경험과 지식도 풍부하다. 5억 원이 넘는 평균 자산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연금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은 30여 년 수도권에서 버티기가 어렵다. 이들이 지방으로 내려가고, 필요한 일자리가 제공되고, 거대한 소비층을 형성한다면, 지방발전에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다.

지방활력을 명분으로 흔히 '청년모시기' 사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베이비부머의 거대한 인구이동 물꼬를 트고, 소비와 생산의 배후지를 만들지 않는 한, 청년이 가도 할 일이 없다. 사막 한가운데 나무 몇 그루를 심고 물(지원자금)로 연명하는 것과 같다. 베이비부머의 이도향촌(移都向村) 없는 청년모시기 사업이 실패하는 이유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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