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5년 겨울 수요세미나(공화국의 재설계)를 들으며,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발제자들께 감사를 드린다. 세미나 관련 모든 자료는 다음 링크(클릭)에 정리되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대한민국 대통령실

1. 세미나 기획의 의도

작년 12월 3일의 청천벽력 비상계엄은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의 정면충돌이었다. 정치과정은 상실되고, 모두 상대방의 악마화에만 열중했다. 자파 지지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 속에서 서부지방법원은 파괴되고, 헌법재판소도 위협받는다.

이제 탄핵이 인용되든 아니든 우리는 준내전 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복합골절의 중증합병증에 걸려있었다. 그 깊게 곪은 내상이 밖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의료개혁, 연금개혁, 지방분권개혁 등 구호만 나라에 떠다녔다. 있으나마나한 대안. 검투사 정치인. 보신주의 관료. 이 '무능'의 카르텔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 과정에 힘없는 서민들만 죽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2년여 수요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문제해결의 대안을 만들려 노력했다. 대안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자괴감도 든다. 대체 올바른 정책이 작동되는 정치와 제도 환경은 무엇일까? 분열된 나라가 통합하고, 미래로 도약하는 우리 공화국은 어떻게 설계 가능할까? 이번 겨울 세미나에서 찾고 싶었던 대답이었다. 

2. 모든 사람의 역량 확대

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 실현이다. 이때 행복이란 일시적 감정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생을 통해 꾸준히 실현되는 삶의 역량(capability) 확대를 의미한다. 경제력, 도덕 능력, 지적 능력, 동감 능력, 사회적 관계 등 모든 면에서의 능력증진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아마르티아 센은 역량을 "자기 삶에서 필요한 것을 획득하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 잘 나가는 엘리트만이 아니라, 시골의 노년, 도시의 청년, 빈민촌의 중년, 지적장애인에게도 스스로 실현하고 싶은 미래가 있다. 가난한 쪽방 주민이 마을잔치를 스스로 꾸렸을 때의 자부심. 발달장애인이 노동의 대가를 받아서 부모 선물을 살 때의 뿌듯함.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기실현의 즐거움이다. 모든 대한민국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하게 하라! 그것이 국가와 사회가 할 일이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참담하다. 청년은 경쟁에 지치고, 노년은 살아갈 날이 걱정스럽다. 중년은 생활비/주택비/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엄습하는 생존의 압박과 미래의 불안. 세계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출생률은 이런 압박과 불안의 반영이다. 

3. 자유와 평등, 중산층의 육성

ⓒ책세상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어떻게 돌파할까? 필자는 주저 없이 자유라고 대답한다. 자유로운 사상, 자유로운 표현, 자유로운 경제, 자유로운 정치, 자유로운 사회가 인류의 번영을 가져왔다. 인간은 억압과 규제 속에 있을 때 특유의 생명력을 잃는다. 마치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무와 같다.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어우러진 풍성한 숲. 그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와 깊은 청량함을 가져온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라! 그것만이 인간의 진보를 가져온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가르쳐준 내용이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거대한 관료주의와 증오의 정치는 우리를 구속한다. 생활 곳곳에 정부개입의 관료주의가 뿌리박고, 민간의 활력을 압살한다. 불과 1~2%의 승리에 취한 정치인은 반대파를 겁박하고, 정치적 갈등을 조장한다. 정치적 보복이 두려운 관료들은 일하기를 꺼린다. 남녀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에서 중간지대는 사라진다. 그 극한대립이 무언의 압박으로 우리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정치적/경제적/사상적 자유의 전면확대. 그것이 이 시대의 첫 번째 과제다. 

그러나 주의하자. 평등 없는 자유는 모래 위에 쌓은 거대한 성채와 같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극심한 빈부격차의 확대가 지속되면 자유 그 자체도 거부당한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 혼란을 잘 설명한다.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면 그들은 "모든 법률(기성질서)을 무시"한다. 혼란을 틈타 독재자(참주)가 출현한다. 독재자는 "빈민의 부채를 탕감하고, 토지를 나누어주고, 정적을 제거하고, 부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전쟁(분란)을 일으켜 증오가 권력자에게 향하지 않도록 한다. 증오는 독재자의 자양분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강조한다. 도덕의 양극단을 배제한 것처럼(『니코마코스윤리학』), 정치에서도 안정된 중산층을 강조한다(『정치학』). 지금도 통용되는 역사의 귀중한 교훈이다.

4. 국가 효율성의 회복

무너지는 중산층은 어떻게 복원 가능할까? 이에 대한 논의는 치밀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 글의 직접주제는 아니니 여기서는 말을 삼간다. 그러나 지적해야 할 것은 방안이 훌륭해도 정치와 행정의 뒷받침이 없다면 그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정책의 생산능력은 그것을 실현할 실행능력과 평가능력과 결합하여 국가의 효율성으로 발현된다. 중요한 키워드는 다음의 3가지다. ① 국가기관 간 견제와 타협, ② 전문가적 식견과 숙의, ③ 공화국 공민(公民)의 육성이 그것이다.

정치회복을 위해 헌법개정도 자주 논의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국민에 의한 대통령 권력의 제한, 이원집정제는 대통령과 의회와의 견제와 타협, 내각책임제/다당제/양원제는 의회 내의 견제와 균형 실현에 목적이 있다. 정부의 기획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경제)기획처의 신설(부활), 기재부 예산권한독점권의 제한(미국식 예산관리실 혹은 예산권한의 국회 이동), 감사원 기능의 제한(정치감사를 없애기 위해 감사권한을 부정행위에 한정),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 등 대한민국에는 백화제방의 개혁방안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솔직히 '제도'가 없어서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은 아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연임’으로 변질될 수 있다. 내각책임제/다당제/양원제도 상시 갈등과 투쟁 장소로 국회를 바꿀 수 있다. 앞에서 국가의 장기 기획기능을 이야기했으나, 제도가 없어서 기능이 약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실, 총리실, 수많은 국책 연구기관 등 미래를 기획하는 조직과 직제는 많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부기관의 제도설계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참여, 의회/정부 내의 공론화위원회의 활성화, 민주적 정당개혁, 국민투표/국민발안/국민소환제의 도입 등 다양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적 참여와 절차적 숙의, 전문가적 식견이 잘 결합되어야만 정책적 실수가 줄어들고, 국민의 역량확장에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5. 새로운 공민(公民)의 탄생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공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한 공화국의 수준은 그 공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좋은 공민이 탄생되기 위한 선현의 지혜는 '실천'과 '학습'으로 향한다. 실천을 통해 공적 가치가 내면화되고, 학습을 통해 그것이 논리화되어 가는 것이다. 모든 조직이 학습을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하고, 실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공적 실천, 공적 학습, 모두 열악하다. 자원봉사 숫자는 2017년 2900만명에서 2023년 2170만명 정도로 줄었다. 세계기부지수(CAF)에서 우리나라는 전세계 88위에 불과하다. 심지어 정부가 시민사회를 옥죄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부정한 시민단체'라는 프레임으로 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전면감사도 실시했다. 그러나 부정수급 비율은 0.007%에 불과했다. 

시민조직에 대한 법적 규제도 너무 강하다. 기부금법에서는 모집금액의 15%만을 내부 운영비로 제한한다. 활동가는 굶으면서 일하라는 이야기다. 1909년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이 민족운동을 억압하려 만들었던 '기부금모집취체규칙'이 아직도 작동된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시민조직 설립인가주의를 아직 견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공민화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입시학원을 전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공민화 교육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비민주적 운영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열띤 강의도 주입식 강의를 통해 참여와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이해시킬 수 없다. 지역마다 존재하는 주민참여예산, 협치위원회 등도 형식적이라 비판받는다. 주민참여예산에 열심히 참여했던 한 경험담에 의하면 208개를 제안했으나 실제 할 수 있는 것은 4개, 그것도 관료주의로 제대로 실행되기 어려웠다고 한탄한다. 

각자도생과 극한 갈등의 세상에서 건전한 공민으로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군중의 집단행동은 개개 시민의 건전한 참여와 학습을 통해 순화되어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건전한 참여의 공간이 점차 줄어든다. 갈 길 잃은 시민들은 '소확행'의 밀실로 숨어든다. 아니면 규제가 적은 유튜브 선동에 몰려 광장으로 향한다. 묵묵히 일상의 공적 참여를 조직하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사회적경제를 좋아하는 이유다.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6. 실천 장소로서의 지역, 지방분권

위의 모든 과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지역과 지방)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각 지역의 자기결정권의 확보 속에서 각종 개혁과제는 보다 구체화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거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방향은 대동소이했다. 산업/교육 등 특구를 만들고, 국가가 인프라를 깔아주고, 법인세 등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중심에 있는 지역대학에도 막대한 지원금이 쏟아졌다. 그러나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부지런히 만들었던 지방공단은 텅 비어있고, 뻥 뚫린 4차선 도로, 여기저기 지방공항은 지극히 한산하다. 사람 없는 거대한 박물관, 기념관, 녹슨 출렁다리, 콘크리트 흉물의 전망대 천지다. 지방에 갈 때마다 중앙정부 보조금의 무책임한 사용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다. 

앞으로의 개혁방안은 각 지역이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것이다. 경제계획, 복지계획. 국토이용계획, 조세권, 행정조직권의 상당 부분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 미국 연방제에 가까운 분권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정부조직법 개정, 예산계획/집행의 권한이양을 위한 (가칭)지방발전법 제정, 지방분권 개헌까지 포함한 다양한 개혁과제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자기 선택과 책임부여만이 지방의 활력을 가져온다. 

그러나 실행의 난점은 많다.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면 지역 간 격차는 더욱 커진다. 국세의 일부를 지방 자율에 맡기면 경쟁적 세율 인하, 방만한 재정 사용의 위험성도 더불어 커진다. 지방재정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일반보조금 예산의 지방자율성도 높이고, 재정 사용에 대한 중앙의 회계감사, 지방의회/주민의 통제강화 등과도 연계해야 한다.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며, 앞에서 지적한 전문가적 식견과 절차적 숙의 과정이 잘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7. 새로운 공화국을 바라며

ⓒpixabay
ⓒpixabay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를 꿈꾼다. 대망의 지도자 사상은 휴전선 넘어 수령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고도 역사 속에는 널려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철인왕을 꿈꾸었고, 공자와 맹자는 왕도정치를 설파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정치세계의 메시아사상은 일종의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맹자』에 나오는 사자성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훌륭한 지도자를 찾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훌륭한 사회를 위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훌륭한 인치(人治)는 사회적 도덕과 신뢰라는 예치(禮治), 엄격하고 공정한 법치(法治), 민중의 참여라는 민치(民治)와 어우러질 때 비로써 공화국의 통합과 번영을 가져온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필자는 안보와 경제에서는 보수에 가깝다. 사회와 복지에서는 진보에 가깝다. 애매하나 그게 내 생각인데 어찌하랴? 그 눈으로 볼 때 미래 지도자에 대한 판단기준은 이렇다. 

▲ 애덤 스미스. ⓒCadell and Davies (1811)
▲ 애덤 스미스. ⓒCadell and Davies (1811)

사상/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자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사상의 관용과 철저한 규제 완화). 평등을 중시하고 중산층 육성의 실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일자리 복지). 국가의 효율성을 증진(헌법개정, 행정개혁, 절차적 숙의)하며, 시민 활력에 온기를 불어넣고(공민화 전략), 각 지역의 자기결정권과 자기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사람(지방분권)이 그것이다. 

각자는 자기 이념에 따라 다양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래도 모두가 동의해야 할 하나의 원칙은 있다. 내 생각이 틀릴지 모른다는 겸손, 타인 생각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다. 

마지막 한마디만. 의사는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섣부른 개혁가는 수만 명을 나락에 빠트린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을 '한 체제에 매몰된 사람(man of system)'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인간사회는 언제나 최악의 무질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나에게도, 또 (자칭)개혁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 수요세미나 '공화국의 재설계' 홍보물.
▲ 수요세미나 '공화국의 재설계'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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