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및 탄핵 촉구 집회 당시 모습. 조은교 기자 촬영. ⓒ라이프인
▲ 2024년 12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및 탄핵 촉구 집회 당시 모습. 조은교 기자 촬영. ⓒ라이프인

2024년 12월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선포 후, 시민들의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 14일 탄핵을 촉구하는 여의도 집회에서는 경찰 추산 24만 5천 명이 모여 거리를 메우고 2월 8일 탄핵 반대 동대구역 집회에서는 경찰 추산 5만 2천 명이 운집했다. 이처럼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시민사회 활성화로 볼 수 있을까. 일부 시위는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어디까지를 시민사회로 볼 것인가. 한국 시민사회를 진단하고 건강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시민사회를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국가별로 정의에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시민사회를 '국가와 개인 사이에 존재하며 다양한 속성을 가진 자치적·조직적·집합적 활동들을 개발할 수 있는 공공영역'(OECD, 1997)으로, 영국은 '정부와 독립적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는 개인과 조직'(영국 내각의 시민사회전략, 2018)으로 정의했다. 국내의 경우를 보면, 2021년 발의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기본법안」에서는 시민사회를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이 공익활동을 하는 영역으로 정의했다.

종합하면, 시민의 자발성, 조직성, 독립성, 공익성을 구성 요소로 볼 수 있다. 시민과 그 결사체가 시민사회의 주체이고, 시민결사체는 법적 형식에 있어서는 비영리법인 뿐 아니라 단체, 모임도 포함된다. 활동 영역 등에 제한은 없지만 공공성(공익성)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은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민법은 공익을 해하는 비영리법인은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의 결집은 한국 사회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시민사회도 함께 성장해 왔으나, 최근 정체와 위기를 맞고 있다. 시민사회 연혁을 살펴보면, 다수 외국학자들은 한국인의 민족운동에는 시민사회를 건설할 자주근대화 운동이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19세기 말 개화당과 독립협회의 사상과 운동은 시민사회를 발전시킬 구체적인 사상과 정책을 만들고 이를 위한 민족운동을 전개한 사례로 볼 수 있다.(『한민족독립운동사-국권수호운동Ⅰ』, 국사편찬위원회, 1987) 20세기 초에는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가 애국계몽 운동을 주도했고, 위 시기 국가 수호를 위한 사회·문화운동으로 청년운동, 여성운동, 한글 연구와 보급, 학회운동, 사립학교 구국운동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힘은 광복에 이어 1960년 4·19 혁명, 1987년 민주화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견인했다. 

1980년대 말 이후 시민사회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활동 영역도 분화·발전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가·시장을 감시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에서부터 자원봉사, 생활협동조합 등 호혜적 자조 활동이 확대됐고, 이후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사회연대경제), 국제개발협력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고 활성화됐다. 국내 기부금 총액은 1999년 1조 6천억 원에서 2021년 15조 6천억 원으로 증가했으며,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된 후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가 1만 5천개를 넘어섰다(2022년 기준).
 

▲ 2024년 국세청이 발표한 국내 기부금 총액. 그래프는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제작. ⓒ아름다운재단
▲ 2024년 국세청이 발표한 국내 기부금 총액. 그래프는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제작. ⓒ아름다운재단

그러나 최근 기부에 참여하는 개인과 기업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고, 2023년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 과정에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 수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2013년도 50.5%에서 2022년 48.8%로 하락하여 대기업이나 경찰, 중앙정부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민사회가 직면한 공통문제로 자원 부족, 활동 타당성에 대한 공적 불신 증가, 시민사회 서비스 문제, 전통적 시민사회와 시민의 분리 및 새로운 결합 양식의 등장, 행정의 하청화가 지적되고 있다.(한국행정연구원의 '시민사회정책과 연구 관련 국제동향 종합조사 2022' 참조) 기부금단체의 주요 수입원에는 보조금, 수익사업 수입, 기부금품, 회비 수익 등이 있는데 보조금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 비영리조직에 대한 보조금이 감소하고 있고, 보조금을 받더라도 법률에 근거가 없는 한 운영비로 사용하지 못한다. 기부금과 회비가 단체의 안정적인 수입원이지만 총 기부금의 정체와 대형 단체로의 집중현상으로 중소 단체의 모금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재정난은 시민사회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회원과 재정 투명성 관리에 필요한 인력 부족 문제를 초래해 단체 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과거에는 시민단체 후원이나 직접 활동 참여가 사회 참여 방식의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온라인 참여 활성화로 단체 가입이나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진행한 20대 사회참여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방안 연구' 참조), 온·오프라인 청원 참여 비율이 가장 높고 온라인 청원 링크 공유, 기사나 게시글에 댓글 작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에 게시글 작성 등의 사회 참여 방식이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온라인 활동을 통해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하면서 시민단체 활동 참여 수요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재정적 어려움을 야기하고 행정 보조금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내버려 두기에는 정부, 기업과 함께 사회의 한 축을 이루는 시민사회의 역할과 중요성이 너무 크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시민사회에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데 그동안 시민단체의 정파적 편향성, 정치적 이슈에 매몰, 일방주의적 운동방법론, 전문성 취약, 시민 없는 시민운동 등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일부 단체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으나, 편향적이거나 일방주의적인 운동이 되지 않도록 점검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함과 동시에 타협과 양보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를 통제하는 악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늘 앞장섰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 외채 1,300만 원을 갚겠다며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의 국채보상금횡령사건 조작으로 위 운동이 좌절되자 애국 지식인 양성을 위한 의무교육운동을 일으켜 기부금을 모아 학교를 설립해 나갔다.

이에 통감부는 사립학교령을 제정하고, 1909년 기부금품모집취체규칙을 제정하여 모금 활동과 학교 설립을 규제했다.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도록 했으나, 기부금 모금과 회비를 받는 단체 조직은 확대됐고 일본은 허가를 받지 않는 모금에 대해 징역형과 벌금형을 처하도록 하는 등 기부금품 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1912년에는 조선 민사령 제1조에 의해 일본 민법이 적용됐고, 당시 일본 민법 규정에 따라 공익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시민사회의 핵심 동력인 조직 설립과 모금을 위해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비영리법인 설립 시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했다. 오늘날에도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부금품 모집 허가제도는 2006년 등록제도로 변경됐으나, 과도한 모집 비용 규제 등으로 실제 등록하여 모금하는 기부금품은 전체 기부금 규모의 1~2%에 그치는 수준이다.

기부금품법 위반 리스크는 다양한 기부 참여에 대한 정보 제공과 적극적인 모금 활동에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 법인 설립 뿐 아니라 목적사업 확장 등 정관 변경의 경우에도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법인 운영의 자율성도 제한을 받고 있다. 각종 허가와 등록 등 가중되는 행정은 단체의 업무 부담과 비용을 더욱 증가시키고, 경우에 따라 불법단체로 낙인 찍어 단체 신뢰도에 손상을 입히게 된다. 특히 보조금 등에서 인건비 규제는 보조금 사업을 많이 할수록 단체 운영은 어려워지는 현상을 초래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들이 비영리 영역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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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설립, 모금, 보조금 관련 정책 내 불필요한 규제의 획기적인 완화는 시민사회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각 지역의 시민 모임이나 청년 조직이 손쉽게 단체를 설립하고 온라인 기반으로 효율적으로 단체를 운영하며 자유롭게 모금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시민사회가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고, 시민사회 영역의 활성화는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 규제 완화는 특정 진영에 한정된 이슈가 아니다. 시민사회의 건강성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고, 설립과 운영의 장벽을 낮출수록 다양성이 확대될 수 있다. 각 단체가 정책별로는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한 목소리로 규제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 광장에 모인 시민의 열정이 극단적 대립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시민사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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