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명목 국내총생산(GDP) 2천조 원 돌파.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수치들이다. 명목 GDP만 두고 봤을 때 1990년 당시 200조 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증가했고(1990년 200조 556억 원에서 2023년 2,401조 원으로 증가),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런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발생했고 빈부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노동소득과 자산소득 간 격차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돼 왔다. 더욱이 이와 같은 문제를 보완할 사회안전망은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난 8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한국사회 불평등 연속 토론회 4차-한국 복지국가와 경제·사회 불평등'에서는 우리 사회의 복지 제도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적절히 기여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여 사회·경제 전반에 만연한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을 모색했다.

■ 고소득 국가 진입,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행복하지 않을까

이날 토론회는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발제로 시작했다. 윤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와 사회·경제적 위기, 왜 놀라운 성장은 위기를 동반했을까?'라는 주제로,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를 데이터 중심으로 진단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언을 전했다.

먼저, 윤 교수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정말 나빠졌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실제 다양한 사회 통계를 살펴보면 국내 경제·사회 지표의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그러나 동시에 자살률 증가, 사회 이동성 감소, 자산 불평등 확대, 합계 출생률 감소 등의 지표는 악화돼 왔다. 윤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이 소득분위별 상위 1~10%의 소득·자산점유율 급증, 즉 하위 90%의 소득 및 자산 비중 감소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윤 교수는 그 원인을 ▲성장 방식 ▲복지 체제 ▲정치와 권력 등 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봤다. 우선 성장 방식 면에서는 대기업 중심 성장과 모듈화된 생산 방식을 지적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대기업 중심, 숙련노동 우회(자동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수출 중심인 대기업과 내수 중심인 중소기업 사이의 성장 분리(탈동조화) △제조업 기반 대기업 수출액의 낮은 국내 부가가치 창출로 대기업 성장과 시민 소득 성장의 분리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즉, 경제 성장의 결실이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복지 체제는 이러한 불평등을 막지 못했을까? 윤 교수는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해 온 중요한 기제는 '복지'가 아니었다"며 "각자가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방식으로 빈곤에 대응했다. 놀라운 고도성장은 이것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즉 ▲고도성장을 통해 만들어진 일자리로 빈곤에서 벗어나고 불평등을 감소시킨 '복지 확대 없는 산업화' ▲안정적으로 사회보험료를 낼 수 있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 확대' 등이, 한국 사회가 고소득 국가로 진입한 후에도 복지 지출 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공적 복지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소득을 보장받는 계층에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힘의 균형'을 언급하며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고, 민주화를 통해 족쇄(규제)가 풀리자 자본을 제어할 세력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게 됐다"며 "제도를 개혁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 내에 기업과 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균형된 힘(노동, 시민사회)이 공존하는 체제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사회가 그동안 대기업·자동화·제조업·수출 중심 성장 전략을 취해 왔다며 "이런 체제에서는 임금 통제, 대인 서비스 비용 절감 등 사회적 비용을 낮춤으로써 고품질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윤 교수는 보편적 소득 보장과 양질의 사회서비스 제공만이 아니라, 기존의 성장 방식 전환을 이루어야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에는 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 성장과는 분리됐을지언정 국가 경제 성장으로는 이어졌는데, 첨단산업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미국)에 집중되는 등 시장 변화로 인해 대기업의 성장과 국가 경제 성장도 분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지금처럼 고용 기반 사회보험을 유지한다면 복지 지출이 증가한다고 해도 불안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윤 교수는 "정치가 할 일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정치 역할을 부연했다.
 

ⓒ정태호의원실
ⓒ정태호의원실

발제 이후 복지사회와 경제·사회 불평등을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구구조와 노동시장 변화를 짚으면서 인간 생애주기 구분의 재편 필요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향후 기대여명이 증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장은 불안정,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확대되고, 이에 대한 규제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며 "생애주기를 전반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기대여명에 맞춰서 교육기, 경제활동기, 퇴직기를 조정하고 사회적 개입을 통해 고령 노동자들이 불안정 노동시장에 몰려 나가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연세대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는 작금의 위기를 심화할 요인과 이를 극복할 복지 전략에 관해 말했다. 그는 ▲인구 전환, 기후 전환, 디지털 전환이라는 중대한 '삼중전환'에 직면 ▲국가 권력, 시장 권력, 대중 권력 사이 힘의 균형 붕괴 등이 현 경제·사회 위기를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런데 대기업은 주가 등 '나'의 미래 자산에 영향을 미친다. 시장 권력이 힘을 더 가지는 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찬성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복지국가와 불평등의 문제를 단순히 빈곤층 감소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인구 전환, 기후 전환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새로운 복지국가 전략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으로서 ▲경제적 안정성 및 삶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의 협상력(적극적 시민성) 증진 ▲공공의 돌봄 책임을 확대하고 지역에서 자발적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사회적 관계 회복 및 강화 ▲전통적 고용 관계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에서 벗어나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설계 ▲위험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유화를 배제한 정의로운 삼중전환 등 네 가지를 제시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어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복지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으로서 시장 불평등 문제에 주목했다. 조 연구위원은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줄이지 않으면 국가 개입만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렵다며 "노동의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 작다. 이는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인이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조 연구위원은 ▲산업의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노동의 영향력 확대 ▲지역 중심의 복지 제공 강화 ▲자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상속제 도입 등 과감한 제도 시행을 통해 미래 세대의 불안감 경감 등을 이야기했다.

이날 패널로 복지 정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설예승 복지정책과 과장도 참석했다. 설 과장은 그간 복지부에서 시행해 온 정책과 추진 현황을 설명하며 전통적인 저소득층, 고령층, 아동,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1인가구 등과 같은 새로운 복지 수요층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불안이나 고립이 증가하고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과 각자도생이 합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어떻게 만들지가 복지부의 숙제이기도 하다"며 사회·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도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한편 '한국사회 불평등 연속 토론회'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며 오는 11일 '자산 불평등과 부의 세습'을 주제로 다섯 번째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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