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포 매거진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2019년에 창간한 매거진이다. 포포포 POPOPO는 connecting PeOple with POtential and POssibilities의 약자로 가능성, 그중에서도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아직 조명되지 않은 누군가의 잠재력과 서사를 발굴하고 함께 연대해 나가는 여정을 지면으로 기록해 나가고 있다. 라이프인은 7개국 포포포 매거진 에디터의 글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어스름한 하늘빛이 거실로 스며드는 저녁, 기지개를 켜며 거실 소파에 길게 기대 누운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나, 그날 공원에서 그네 탈 때 처음으로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편안했어.
밝은 주황빛 조명 아래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직은 밝은 것 같았던 아이의 자리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일순간 누군가 내 심장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쥐어버린 것만 같았다. 금세 눈가가 뜨거워져 오는 걸 간신히 눈물샘을 틀어막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그랬어? 그러면 그동안 계속 마음이 불안했어?
응, 숙제를 다 못할까 봐 맨날 불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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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아이는 늘 많고 많은 숙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해야 하는 공부가 명확해지자, 그러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진도 목표와 그에 따른 학원 숙제가 따라붙었다. 서로 우승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내달리는 1등 주자와 2등 주자처럼, 엄마의 의욕은 아이의 의욕을 언제라도 넘어설 듯 시시각각 거친 기세로 일렁거렸고, 마침내 나의 의욕이 아이의 선을 넘어버린 몹쓸 어느 날 우리는 둘 다 크게 상처를 입었다.
결국 다 끝내지 못한 학원 숙제를 가방에 담고 숙제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집을 나선 아이는 학원 대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마치 우리가 오늘 다툴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전날 우연히 깔게 된 자녀의 위치를 찾아주는 앱 속 지도 위에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자그마한 동그라미가 되어 방황하고 있었다.
모르는 척 전화를 걸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로 그 학원을 끊었다. 그러나 학원에 들러 그만 다니겠다는 말을 전한 아이는, 그러고도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이는 지도 위 기나긴 선이 되어 다시 또 다른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걷다 때로는 멈추어 흔들 그네에 앉아 빛나는 물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좀 더 그곳에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저녁도 혼자 밖에서 먹고 싶단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데도 의도적으로 함께하지 않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분명 내 마음의 시작은 사랑이었으나 아이에게 전한 말과 행동은 결국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아이가 혼자를 택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나의 엄마 껍데기는 다시 한번 부서져 내렸다.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며, 전화로 나의 아이와 성향이 비슷한 대학 동기를 붙들고 끅끅거리며 울고 말하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지만 행동으로는 잘 옮겨지지 않는 생각들을, 자신 또한 부모와 갈등을 겪어본 사람이자 엄마가 된 사람의 입장에서 확인 사살하듯 짚어주고 말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부모님과 갈등다운 갈등을 겪어본 경험이 극히 적다. 나의 부모님은 부모 자식 간 갈등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안전하게 발을 뻗을 수 있는 누울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 이토록 많이 닮은 자식이건만 남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니 스스로도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따 돌아오면 '여기 와서 앉아봐' 이런 건 하지 마. 비록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해도 본인이 잘못한 건 알 거야.
나의 미래 행동을 예측한 듯 말하는 동기의 말에 나는 울다 말고 엉덩이에 털이 날 것처럼 웃으며 비로소 생각을 정리하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학습 면에서 마치 내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한 것만 같아 스스로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학원 선생님의 말씀들에 뒤늦게 반박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떤 이유에서든 숙제를 안 해오는 것은 학생이 게으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님.
아니요. 저는 현시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결코 게으르다는 말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제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학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네, 하지만 저의 아이는 숙제가 너무 많아 지쳐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레벨의 학생들은 사실 진도가 더 나가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레벨이고 나발이고 내 자식이 힘들어합니다,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홀로 저녁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육아와 아동 심리 척척박사님들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참 좋고 옳은 말과 각종 방안 앞에 나는 또 한껏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울며 자책하는 것도 잠시, 한 영상 속 '아이의 부정적 정서 표현에 부모가 안전지대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어 맬 수 있었다.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해 잘 모르고 서툰 부분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서였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알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비록 자주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했다. 그래도 이만해지길 다행이다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추스르다 보니 어두워지기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던 아이의 점이 정말로 집을 향해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손을 씻고 겉옷을 건 뒤, 카레에 들어갈 양파를 캐러멜라이징 하는 나의 곁에 가만히 다가왔다. 캐러멜라이징 한 양파가 들어간 카레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이미 아이는 저녁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그 카레를 만들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1시간 넘게 걸리는 길고 지루한 양파 캐러멜라이징 작업을 위해 휴대폰으로 피아노 관련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의 사연과 피아노 연주곡을 보고, 들었다. 마침 쇼팽의 협주곡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쇼팽의 아름다운 협주곡을 들으며 몇 번인가 아이의 토실하고 따스한 팔꿈치가 가만히 내 팔꿈치에 와닿았다. 음악이 참 좋다, 혼잣말하듯 감탄하는 아이에게 나는 대답 대신 카레의 간을 봐달라며 나무 주걱을 내밀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는 음식의 간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말없이 그러나 조금 더 부드러워진 공기 속에서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카레를 만들었다.
카레가 완성되어 갈 즈음 그 순간 아이가 다른 어딘가가 아닌 바로 나의 곁에 있다는 사실과 아닌 척하면서도 아이의 눈이 자꾸만 카레로 향하는 모습, 살짝 땀이 난 듯한 아이의 체취, 음악을 듣는 아이의 동그란 뒤통수가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워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속도를 추월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아이의 마음이 마저 다 풀리길 천천히 기다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카레를 저녁 메뉴로 선택해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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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는 결코 공부 문제로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지난날의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결국 아이를 아프게 만들고서야 멈추어 서, 부서져 내린 남루한 나의 엄마 껍데기를 기워본다.
그렇게 매일 불안했으면 너, 많이 힘들었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아기처럼 앞으로 끌어안고 나는 한참을 말없이 아이의 머리며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토닥였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여기에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놓치지 않고 마주하며 힘껏 잡아야 하는 것은 매 순간 나를 향해 날아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마 성적표' 대신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우리의 실체와 마음이었다.
나의 엄마 껍데기는 수도 없이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한 발짝만 물러서면 남루하고 초라해 보이기 그지없는 나의 육아. 그러나 결국은 그 남루함이라는 것도 높은 이상의 끝의 끝을 바라보며 사회와 내가 멋대로 잡은 기준에 기댄 가혹한 평가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이것만 생각하자. 지금 나의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엄마 껍데기를 뒤집어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말, 엄마 노릇이란,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