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포 매거진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2019년에 창간한 매거진이다. 포포포 POPOPO는 connecting PeOple with POtential and POssibilities의 약자로 가능성, 그중에서도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아직 조명되지 않은 누군가의 잠재력과 서사를 발굴하고 함께 연대해 나가는 여정을 지면으로 기록해 나가고 있다. 라이프인은 7개국 포포포 매거진 에디터의 글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새벽 2시가 넘도록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집안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인정이 부족하고 눈에 보이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무도 하지 않는 부정적인 말을 스스로에게 투척하던 시기였다.
꼬박꼬박 시간 맞춰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멘탈 갑 남편의 잠을 방해할 수는 없었기에 거실 소파나 바닥에 누워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딱히 재미있는 것도 없으면서 온라인 세상에 아귀처럼 탐닉했다. 얼마나 오랜 기간이 지났을까. 전에 없던 다크서클이 생겼다. 한 번 생기면 없애기 어렵다는 다크서클이 마치 그때의 방황 아닌 방황을 각인이라도 하듯 두 눈 아래 새겨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집안일에서 원하던 가치를 찾지 못해 새벽까지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리적 방황을 거듭했다면, 회사일을 시작한 뒤로는 적어도 개미 눈곱만큼은 더 행복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재취업 후 찰나와 같은 들뜬 기쁨을 만끽하기가 무섭게 나는 금세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니 이전처럼 아이를 살뜰히 챙기기 어려웠다.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원래도 대단히 깨끗하지는 않았던 집이었건만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정글 같은 집구석 모양새에 평소보다 곱절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장을 보면 뭐 하나. 제때 요리를 해 먹지 못해 버리는 식재료가 늘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식재료를 사고, 전기세를 내며 냉장고에 보관한 다음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고 다시 내다 버리기를 반복하는 바보 같은 스스로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다시 새벽녘 스마트폰 세상에 복귀해 있었다.
세 번째 회사의 이직 여부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깨달았다. 나의 이러한 기나긴 방황에 집안일을 하느냐 회사일을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무엇에 더 집중하느냐'가 바로 문제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어디에 던져 놓아도 상황별 가장 부정적인 요소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초능력을 스스로에게 뽐내고 있었다.
나는 아귀가 아니다. 사람이다. 모든 것이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상황 따위가 있을 리 없고, 만약 그런 이상적인 상황에 놓인다고 한들 작정하고 실눈을 뜨고 보면 모든 것이 고작 그 모양 그 꼴일 것이 뻔하다. 그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매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일의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사람으로서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돌고 돌아 깨달은 것이 세상의 흔해 빠진 행복 공식 같은 문장 한 줄인가 싶은 생각과 동시에 역시 모든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회사의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상사가 알고 보니 김장철만 되면 직접 김치를 담그더라는 남편의 말에 마음속으로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의 김치가 그리 맛이 좋지 않아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그 상사가 원한 것은 다름 아닌 맛 좋은 김치였을 테고, 그에게는 스스로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두 손과 온라인 레시피, 부모님의 조언이 있으니 그저 실행한 것이다.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내가 나로 사는 일에도 고수와 하수의 레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어야 한다든가, 좋은 점을 찾아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미 지금의 내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에 다정하고 정성 어린 눈길을 보내고 시간을 쓰는 일이다. 부족함을 책망하고, 상황을 한탄하는 대신에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때 자고 일어나며 삼시 세끼를 챙기고, 할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오차 없는 갓생 루틴, 사회적인 성과, 만족스러운 수익이 주는 기쁨만큼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과 함께 맞이하는, 어쩐지 더 힘이 나는 아침과 냉장고 속 재료들로 먹음직스러운 집밥을 차렸을 때의 뿌듯함, 매일 아이와 두 눈을 마주 보며 살아가는 일상의 소중함과 같은 나와 우리 가족만 아는 가치에도 칭찬과 감탄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되는 다소 지루한 작업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 여전히 '나로 살아가기' 하수 레벨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나로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고.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탱해 줄 것임을 이제는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