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 캠퍼스에서는 '공정무역'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21년 수도권 최초로 공정무역대학 인증을 받은 이후, 이 대학은 지난 4년 동안 공정무역의 가치를 꾸준히 확산시키며 독자적인 문화와 실천을 구축해왔다. 

공정무역대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공정무역위원회를 구성하고, 교내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사용할 수 있는 판매처를 마련해야 하며, 공정무역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구성원들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 성공회대학교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해 공정무역학교로 인증을 받으며, 캠퍼스 전반에 공정무역 문화를 정착시켰다. 그 과정에는 교수진의 교육적 신념과 학생들의 자발적 실천,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연대가 깊이 스며 있었다.

 

"거창한 시작은 아니었어요."

성공회대의 공정무역 활동은 처음부터 화려하지 않았다. 대규모 예산이나 단단한 행정 기반 없이 시작됐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쌓아온 연구 성과와 학문적 관심이 씨앗이 되었다. 학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학생들은 직접 공정무역 제품을 활용해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공정무역 패션잡지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창의적 시도로 학교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은 시도들이 모여 결국 공정무역대학 인증으로 이어졌다.

인증 이후 공정무역 활동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배움과 실천이 연결되는 구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교양과목 '공정무역의 이해'가 개설되면서 학생들은 공정무역의 배경과 글로벌 윤리경제의 맥락을 배우게 되었고, 강의실에서 생긴 관심은 다시 동아리 활동과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렇게 수업—실천—참여로 이어지는 작지만 단단한 순환이 캠퍼스 안에 자리 잡았다.

 

팬데믹, 그리고 멈추지 않은 실천

지난 4년 모두 성장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팬데믹이 닥치며 캠퍼스는 조용해졌고, 동아리 활동은 깊은 침체를 맞았다. 대면 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공동의 열정을 기반으로 움직이던 학생활동은 개인 중심의 학습 환경 속에서 동력이 약해졌다. 공정무역 동아리 '해피트레이드' 회장 박지원 학생은 그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무료로 공정무역 선물을 나눠도 학생들의 참여가 소극적이었어요. 전하고 싶은 가치가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어려움이 있었죠."

공정무역 활동을 이어가던 학생들 역시 실망과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의 흐름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교내 곳곳에서 캠페인과 강의를 이어가며 불씨를 지켜낸 학생들이 있었고, 코로나의 공백 속에서도 이를 뒷받침한 교수진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교수진은 공정무역이 단순한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 대학의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을 행정과 교직원에게 설득하며 공정무역의 가치를 대학의 정체성과 연결했다.

학문적 기반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계속됐다. 대학원생들은 논문과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공정무역의 실증적 효과를 분석했고, 학부 학생들은 캠페인과 교육 활동으로 실천을 이어갔다. 연구와 실천이 나란히 축적되며 성공회대는 팬데믹 속에서도 공정무역 캠퍼스로서의 기반을 지켜낼 수 있었다. 바쁜 학업 속에서도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활동을 멈추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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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 공정한 2주 캠페인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 퀴즈 및 요거트 시식. ⓒ필자 제공

 

학생·교수·직원 모두의 마음에 스며든 변화

지난 4년간 성공회대학교의 공정무역 인증은 학생·교수·직원 모두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해피트레이드'의 지속적인 활동 덕분에 교내 구성원들의 인식은 눈에 띄게 확산됐다. 교직원들은 동아리 이름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공정무역을 떠올릴 만큼 익숙해졌고, 교내 자연드림 매장의 공정무역 전시 매대나 공정무역 커피 판매 등 캠퍼스 곳곳에서 관련 제품을 접하는 기회도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공정무역이 더 이상 특별한 행사나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대학 생활 속에 스며든 일상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학생들은 수업과 활동을 통해 공정성과 연대의 감수성을 넓혀갔고, 교수진은 강의와 연구에 공정무역을 연결하며 교육적 확장을 이루었다. 교직원 또한 캠페인과 행사 지원을 통해 학교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적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공정무역은 성공회대학교를 특징짓는 고유한 문화가 되었다.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실천하는, 대학의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된 가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성공회대다운 실천: 지역과 세대를 연결하다

성공회대학교는 구로공정무역협의회 회원단체로서 지역의 공정무역 확산을 위해 꾸준히 기여해 왔다. 교내 공정무역 판매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뿐 아니라, 구로구에서 열리는 공정무역 행사·캠페인·정책 간담회에도 적극 참여하며 지역 실천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 교육을 원하는 구로구 주민 및 기관을 만나러 찾아가는 공정무역 기본 교육. ⓒ필자 제공
▲ 교육을 원하는 구로구 주민 및 기관을 만나러 찾아가는 공정무역 기본 교육. ⓒ필자 제공

 

2024년, 인천 작전여자고등학교 공정무역 동아리가 성공회대를 찾았다. 2019년 해피트레이드를 만든 졸업생과 2024년 회장이 함께 강의를 맡았고, 고등학생들은 선배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말 한마디, 경험 하나에도 눈빛이 반짝였다.

인천 계양구 공정무역협의회를 중심으로 지역에서도 공정무역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 만남은 대학과 지역사회, 그리고 청소년 세대가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성공회대가 오래 지켜온 '따뜻한 교육적 실천'이 또 한 번 세대 간 학습으로 번져가는 순간이었다.

▲ 인천작전여자고등학교 공정무역동아리가 성공회대학교를 방문했다.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위원회
▲ 인천작전여자고등학교 공정무역동아리가 성공회대학교를 방문했다.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위원회

 

국제교류가 만든 학문의 기반

성공회대의 공정무역 활동에서 국제교류는 또 하나의 강점이다. 일본과의 학술 교류뿐 아니라 베트남, 홍콩 등과도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확장은 교수진의 연구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학생조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 기관들이 성공회대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일본 쿠마모토가쿠엔 대학과 학문교류 현장.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위원회
▲ 일본 쿠마모토가쿠엔 대학과 학문교류 현장.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위원회

전혜원 성공회대학교 공정무역위원회 위원장은 "교수진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학생들은 현장에서 실천하며 서로의 역할을 채워주는 구조는 성공회대가 가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2월, 성공회대의 공정무역 동아리 두 곳(해피트레이드와 트래커스)은 장학금을 받아 각각 일본 공정무역 대학과 네팔 생산지를 탐방할 예정이다. 연구·교육·실천이 해외와 맞닿으며 확장되는, 독특한 공정무역 캠퍼스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은 관심이 변화를 만든다" - 공정무역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인터뷰 말미에 학생들은 공통된 메시지를 남겼다. 공정무역은 '구매를 설득하는 활동'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윤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가치의 공유라는 것이다. 해피트레이드 부원 김신유 학생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좋았어요. 짧은 대화 한 번, 작은 메시지 하나가 퍼져 나가는 경험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같은 동아리 부원 박수민 학생은  "작은 선택이 생산자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정무역이 자신의 삶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고 전했다.

 

▲ 공정무역 동아리 '해피트레이드' 정기회의. ⓒ필자제공
▲ 공정무역 동아리 '해피트레이드' 정기회의. ⓒ필자제공

해피트레이드 박지원 회장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용기를 건넸다. "처음엔 공정무역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학생들이 생길 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공정무역에 관심 있는 대학이라면 지금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작은 동료 한 명, 즐거운 캠페인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듭니다"

 

공정무역을 일상으로 만든 대학
성공회대학교의 공정무역 실천은 거대하지 않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영향이 작은 것도 아니다.
연구–교육–실천이 자연스럽게 맞물린 구조,
학생들의 꾸준한 활동,
지역과 세대를 잇는 따뜻한 연결,
국제교류로 확장되는 배움.
이 모든 흐름은 구로의 작은 대학이 만들어낸 공정무역 생태계다.
성공회대의 실천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조용한 꾸준함 속에서 더 많은 변화를 품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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