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용기 순환 시스템부터 암환자 사회복귀 플랫폼까지.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운영하는 창업패키지 '새로온'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체계적인 성장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창업자의 고민을 함께 짚고 사업 모델을 다듬어 시장 진입을 돕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2024년부터 2년간 '사회적경제 성장패키지(새로온 키움)'와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새로온 이룸)'에는 총 170개 팀이 참여해 162억 원 매출, 41억 원 투자 유치, 156명의 신규 고용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내세운 "지원받는 기업에서 투자받는 기업으로"라는 비전이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성장패키지에 참여한 두 곳, 써큘러랩스와 암뮤니티의 사례는 지원사업이 어떻게 기업의 체질을 바꿔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술로 신뢰를 증명하는 '써큘러랩스'
"좋은 서비스형 사회적기업은 많지만, 기술로 뒷받침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써큘러랩스가 기술 기반으로 환경·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표 사례가 되고 싶습니다."
순환경제 소셜벤처 써큘러랩스는 다회용기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 '청결 신뢰'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출발했다. 최희진 대표는 글로벌 배달 플랫폼에서 ESG 팀장으로 일하며 매일 쏟아지는 일회용기를 목격했고, "캠페인만으로는 답이 없다, 산업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경험이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써큘러랩스는 ▲다회용기 브랜드 '아란테' ▲회수·관리 앱 ▲국내 최초 장애인 표준사업장 세척장 ▲기업·지자체 대상 컨설팅을 핵심 사업으로 삼고 있다. 특히 세척장은 중증장애인 15명이 근무하며 꼼꼼함을 강점으로 위생 신뢰를 높이고 있다. 최 대표는 "음식점이 맛으로 평가받듯, 다회용기는 청결 신뢰가 생명"이라며, "우리는 RFID*와 머신비전으로 그 신뢰를 기술로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사물에 전자태그를 부착해 무선 주파수로 정보를 인식·추적하는 기술이다. 써큘러랩스는 이를 다회용기에 적용해 사용·반납 데이터를 정밀하게 관리한다.)
장애인 고용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기업의 정체성이다. 발달장애인의 꼼꼼함은 세척 과정에서 큰 강점으로, "단순 작업을 지겨워하지 않고, 하나하나 확인하는 습관 덕분에 위생 불만이나 오류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설명이다. 최 대표의 말처럼, 사회적 가치와 품질 관리가 동시에 실현되고 있다.
성장패키지 사업은 써큘러랩스에게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최희진 대표는 "지원 이전에는 세척 서비스 기업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데이터 기반 자원순환 기업으로 리브랜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원을 계기로 AI 개발자, 풀스택·프론트엔드 개발자 등 핵심 인력을 충원하면서 자체 앱을 출시했고, 고객 사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사회적·환경적 가치 측정 체계를 갖추면서, 기업이 창출하는 환경 성과와 장애인 고용 효과를 수치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써큘러랩스는 단순 세척 업체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자원순환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투자자와 지자체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를 확보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최 대표는 "이제는 소셜 프랜차이즈 모델 확장의 토대가 마련됐다"라며, "앞으로는 지역마다 세척장을 세우고 동일한 품질 기준을 보장해 어디서든 똑같은 신뢰를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밝혔다.
암환자 사회복귀의 길을 여는 '암뮤니티'
예비창업 단계의 '암뮤니티'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오세웅 대표는 2020년부터 2년간 림프종 4기로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항암제가 잘 듣지 않아 계속 약을 바꿔야 했고, 병원 생활이 길어지며 저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너무 힘든 상황을 겪는 걸 보았습니다. 낫게 된다면 꼭 이분들을 돕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그의 창업 계기는 투병 경험 그 자체였다.
암뮤니티라는 이름에는 '암 환자라면 모두가 하나의 커뮤니티'라는 의미가 담겼다. 단순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라, 환자라면 누구나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현재 암뮤니티는 암환자 사회복귀를 위한 취업 매칭을 운영 중이다. 넷플연가, 퍼슬리, 마켓피디아, 탠코 등 기업이 채용에 나서 환자 인력을 받아들였고, 시범 채용 뒤 모두 연장 고용으로 이어졌다. "환자라고 일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기업의 판단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참여한 환자들의 변화도 크다. 본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경험이 처음이라 눈물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오 대표는 "단순히 일자리 연결이 아니라, 위축된 마음을 독려하고 다시 도전하게 하는 게 더 큰 의미 같다"라고 전했다.
또한 성장패키지 사업이 오 대표에게 든든한 발판이 됐다. 담임 멘토와 1:1로 호흡하며 사업 가설을 검증하고 고객군을 정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오세웅 대표는 "가장 진심으로 돕는 프로그램"같다며, "교육과 멘토링, 동기 창업팀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속도로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장패키지 사업을 통해 그는 암환자 취업 매칭 플랫폼을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실제 서비스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네트워크 매칭으로 전문성을 가진 소셜벤처·스타트업과 연결됐고, 이를 통해 첫 시범 채용이 이뤄졌다. 또한 컨설팅 과정을 거치며 국립암센터·삼성서울병원·연구기관 등과의 협력 가능성을 구체화했고, 환자 경험을 데이터화해 사회복귀율 향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경제 안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오 대표는 "예비창업자로 혼자라면 외로웠을 텐데, 같은 길을 걷는 동기 팀들과 고민을 나누며 버틸 수 있었다"며, "지원사업을 통해 아이디어가 실제 사회적 가치 창출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원이 만든 두 가지 얼굴
써큘러랩스와 암뮤니티는 성장 단계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장패키지의 도움을 받아 정체성을 다듬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한쪽은 기술 기반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암환자'라는 새로운 일자리 취약계층의 문제에 공감해, 그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나가는 첫발을 내딛고 있다.
'지원받는 기업에서 투자받는 기업으로'라는 변화하는 두 기업의 여정은 사회적경제 기업이 지원을 통해 체질을 바꾸고, 시장과 사회를 연결하는 힘을 어떻게 키워가는지 잘 보여준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창업패키지 '새로온'은 단순한 지원사업을 넘어, 새로운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회적경제의 미래를 열어가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 이 기사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