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개원한 사회연대경제(사회적경제) 영역의 전문 교육기관인 사회연대경제교육원(이하 교육원)이 연중기획포럼으로 월간불턱(BULTUK)을 시작했다. '불턱'은 일종의 탈의실인데 제주 지역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으로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공간이다. 어린 나이에 해녀로 시작하게 되면 이곳에 와서 물질, 지식, 위치 등 교육을 받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공공의 지식을 전수하고 해녀들이 숙련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공간이다.
교육원은 올해 연중기획포럼 핵심 키워드를 '임팩트 네트워크'로 정하고 28일 종로구에 있는 교육원 혜화교육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4층)에서 올해 첫 월간불턱을 실시했다. 이날 포럼에는 이명희 마이오렌지 임팩트부문 대표, 공익법단체 두루 한상원 변호사, 오수산나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 사무처장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설립된 사회연대경제교육원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 사회연대경제 분야의 교육사업 또는 인재 양성을 위한 공동의 플랫폼(커먼즈)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현재 4개 법인(▲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연합회 ▲HBM사회적협동조합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쿱비즈협동조합)과 5명의 개인(▲김기태 한국사회연대경제네트워크 부설연구소 소장 ▲임현묵 한국사회연대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 ▲김대훈 전국협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쿱비즈협동조합 김왕영 이사장 ▲강민수 한국사회연대경제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교육원의 강민수 이사장은 "사회연대경제교육원은 3C 즉, Cooperatives(협동조합), Community(공동체), Company(기업)를 돕는 비영리 기관이며, 교육플랫폼이자 커먼즈 형태로 운영될 것"이라며, "세무, 총무, 인사노무, 교육자, 홍보 등 과정의 오프라인 교육, 온라인 교육(학습관리시스템을 통한 원격교육), 또한 매월 정기 세미나(불턱)과 신문사를 활용해서 임팩트 네트워크를 확산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더 넓고 깊은 협동을 향해, 임팩트 네트워크
이명희 '마이오렌지' 임팩트부문 대표(Chief Impact Officer)는 이날 '더 넓고 깊은 협동을 향해, 임팩트 네트워크'를 주제로 ▲왜, 지금 임팩트 네트워크인가 ▲임팩트 네트워크의 구성 및 작동원칙 ▲임팩트 네트워크를 위한 체크리스트에 관해 설명했다.
이명희 대표는 우리가 협동하지 못하는 이유로 ▲함께할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목표에 대한 이해와 정의, 목표에 대한 열망 추구가 다르며 ▲하고 있는 일이 목표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 우리 다음의 삶이 달라진다. 임팩트 네트워크를 하려고 하는 것은 불확실한 시대에 긍정적 변화를 함께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행사에서 데이비드 에를리히먼(David Ehrlichman)이 쓰고 자신이 번역한 책 '임팩트 네트워크'를 통해 임팩트 네트워크의 신뢰 원칙과 구성원의 역할에 관해 설명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지만, 막상 문제의 복잡성과 규모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기후위기, 사회적 고립, 청소년 문제와 같은 난제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임팩트 네트워크'는 이런 문제들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며, 협력과 집단 지성으로 변화의 길을 열어준다.
임팩트 네트워크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학습과 행동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개인과 조직을 함께 연결하는 특별한 종류의 네트워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령, 기후위기 혹은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공동 목적을 위해 조직적이고 구조적으로 연대해 학습하고, 행동하며, 시스템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련의 활동이 바로 임팩트 네트워크이다.
책에서는 임팩트 네트워크를 세 개의 네트워크로 분류하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교류하는 학습 네트워크 ▲실천과 행동하는 액션 네트워크 ▲학습네트워크와 액션 네트워크가 혼재된 무브먼트 네트워크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콜렉티브 임팩트'는 무브먼트 네트워크 형태에 속한다.
이같은 임팩트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마인드셋이 가장 중요하다. 네트워크 마인드 셋을 가지게 되면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목적과 관례를 공유하는 가운데 고도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조직해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라며 "자기조직화는 우연이 아닌 연결, 학습 그리고 액션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시번트 리더(servant leader)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촉매하기 ▲촉진하기 ▲조직하기 ▲조율하기 등을 네트워크 리더십의 역할이라고 소개한 이 대표는 복잡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 사람이나 한 조직만으로는 부족할 때, 네트워크는 다양한 관점을 공통의 목표로 결집시키고, 여러 분야와 배경, 신념에 걸쳐 깊은 협력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서로를 연결하고, 신뢰를 쌓으며, 협력의 자세를 키워가는 과정은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임팩트 네트워크가 왜 필요할까. 이 대표는 "임팩트 네트워크는 되게 작게 시작할 수 있지만, 이게 프랙처(fracture) 중의 하나가 돼서 더 큰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눈송이 하나는 육각형 모양의 하나이지만, 여러 개가 모여서 큰 눈을 이루고, 세상은 그걸로 많이 이뤄져 있는 것처럼 이 안에서 임팩트 네트워크도 새로운 모델을 하나 만들면 사람과 조직이 새로운 방식으로 참여하고, 정보와 자원이 새로운 방식으로 흐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뢰가 흔들릴 때는 네트워크가 사적인 이익에 이용당하지 않을까, 정보 공유만 하고 행동은 없는데 괜찮을까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며 임팩트 네트워크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먼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이 타인과 관여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고 부연했다.
그는 "공동의 목적을 명확히 아는 것의 목표는 동의를 강요하고자 함이 아니라 차이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목적, 직업적 목적, 집단적 목적을 헤아리고 교차점을 찾는 것에서부터 임팩트 네트워크의 신뢰가 온다고 했다.
임팩트네트워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례 공유
"'1층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모두의 1층'이라는 공익 프로젝트도 있다. 한 사람의 생활사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크고 작은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불과 2센티미터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장애의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비장애인은 턱이나 계단이 장애인에게 차별과 배제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비장애인에게 턱이나 계단은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얼마간의 효용마저 제공한다. 그 결과 비장애인으로서는 턱이나 계단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당위를 이해하기 어렵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이 개정되지 않은 채 방치된 데에는 이와 같은 평범한 무관심이 기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2022다289051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 대법관의 보충의견)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애인 접근권 보장에 관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따라 300㎡ 이상의 공중이용시설에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여해야 하는 것을 국가가 24년간 방치한 책임이 있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통계청의 '2018년 사업장 면적 규모별 사업체 수' 조사에 의하면, 체인화 편의점 4만 2820개소 중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경우는 542개소로 1.2%에 불과했다. 나머지 98.8%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는 것이었다. 즉,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갈 수 있는 편의점은 100개 중 1곳뿐이었다.
공익법단체 두루는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접근성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와 함께 시작돼 2018년 관련 차별구제청구소송으로 이어졌고, 2022년 이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관련 법 시행령이 제정이래 처음 개정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두루는 2023년 아산나눔재단, 협동조합 무의와 함께 성수동에서 실질적인 경사로 설치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모두의 1층은 두루를 중심으로 아산나눔재단의 재정 지원, 협동조합 무의와의 실태조사, 미션잇과 함께한 홈페이지 구축, 브라이트 건축사무소의 공사 담당, 성동구청의 업무 지원 외에도 많은 기관과 기업, 개인이 모여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위한 임팩트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를 비롯해 많은 매장에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었다.
한상원 변호사는 "과거에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손을 잡아주는 역할에 그쳤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앞으로 법 개정, 실태조사 연구, 대중의 인식 개선, 모범 사례 발굴 등의 활동을 해 나가야 한다"라며 "사실 모든 것을 두루가 다 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임팩트 네트워크를 통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고 재원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협동조합의 임팩트 네트워크 사례를 오수산나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 사무처장이 발표했다.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는 시민과 함께 깨끗하고 착한 에너지를 만들어 가는 시민참여 에너지협동조합들의 모임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시민 참여 공간을 확대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보급확대를 위한 정책제안활동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인식제고를 위한 교육홍보활동 ▲전국의 시민참여형협동조합 결성 및 운영에 대한 지원활동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및 운영, 유지관리 등에 대한 지원활동 ▲국내의 각종 연대활동과 세계 기후위기대응 및 에너지전환을 위한 연대활동 등을 할 것이다.
76개의 협동조합이 소속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2014년 결성됐다. 지난 10년간 에너지협동조합들은 에너지협동조합 활성화와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출자금을 모아 태양광발전소를 건립하고 매일 3만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241개의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합회에서는 2030년까지 에너지협동조합 1,000개, 300만 조합원, 3GW 발전소를 만들기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연합회는 지역의 협동조합들이 '협동조합 방식'대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역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만들고, 성장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 오 사무처장은 "하나의 사례가 성공하게 되면 곳곳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 되고, 주민이 발전소를 짓는데도 참여함으로써 수용성이 올라가게 될 것"이라면서 "시민참여 협동조합 방식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하고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