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 사회의 주역인 대학생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현상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라이프인은 대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혁신 고민을 살펴보기 위해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을 위한 미디어의 이해' 과목을 수강한 대학생들이 발로 뛰며 만들어 낸 결과물을 소개합니다. ▲과도기 보내는 반려해변 제도 ▲홈리스 자립을 돕는 빅이슈코리아 ▲어스폼 등 농어업 부산물로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혁신기업들 ▲중단된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 등 청년의 시선으로 본 사회혁신 관련 기사를 총 4회에 걸쳐 게재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년들의 고민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반려. 짝 반(伴)에 짝 려(侶)를 써서, 서로를 아끼며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를 일컫는 단어다. 그동안은 주로 사람과 동물에게 적용하던 표현이나, 이제는 그 대상이 바다로도 확대됐다. 바로 '반려해변'이다.

반려해변은 해변을 입양해 자신의 반려동물처럼 돌보는 해변 입양 프로그램이다. 짝을 맺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기적인 환경 정화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돌봄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아는 플로깅, 쓰레기 줍기와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민 참여형 환경 정화 사업으로 주목받는 반려해변은 과연 어떻게 시작된 걸까?

■ 삶의 터전으로 밀려오는 쓰레기 

▲ Pixabay.
▲ Pixabay.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맞닿은 해변 길이만 15,000km에 달한다. 길게 뻗은 해안선만큼 밀려오는 쓰레기의 양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해양환경공단이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58만 9408톤(t)에 달한다. 플라스틱, 종이, 목재, 금속, 유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러한 쓰레기들은 바다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선박 사고의 원인이 되고 어업 생산성을 크게 떨어트린다. 바다를 떠돌다 해변으로 퇴적된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생성되는 폐기물 양에 비하여 수거 및 관리 인력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해수부가 주관하던 전국 해안 쓰레기 정화 사업 예산들이 대폭 축소됐다. 해당 예산은 해수부와 해양환경공단 등이 협력해 해양 쓰레기를 감축하고 해양 생태계 보호 효과를 증진하는 사업들과 직결되나, 현재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 시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해양 환경을 둘러싼 정부 주도 사업이 대폭 축소되는 상황. 그렇다면 이 많은 쓰레기는 대체 누가 어떻게 처리할까. 바로 반려해변 제도에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

■ 해변을 반려로 삼다 

반려해변은 1986년 미국 텍사스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이후 영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로 확산됐다. 우리나라 역시 해수부 주도하에 이를 벤치마킹하여 2020년 시범 사업을 시행했고, 2023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기존에는 오염된 해양 환경을 대형 봉사 단체나 정부가 도맡아 해결했다. 하지만 반려해변 사업에서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 '입양 및 관리'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민이 직접 바다를 돌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려해변 입양 희망자가 정화 활동 계획을 기재한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지자체 담당자와 해변 코디네이터의 검토를 거쳐 해당 해변의 정식 반려로서 활동하게 된다.

▲ 한 포그니 회원이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 한 포그니 회원이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기업, 학교 등 현재까지 입양자로 등록된 민간 단체는 전국 총 237곳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단체가 있다. 바로 가수 박창근의 팬클럽 '포그니'다. 2022년부터 자발적으로 해양 정화 활동에 뛰어든 이들은 현재까지 무려 8개의 해변을 입양 받아 관리하고 있다. 이는 등록된 단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숫자다. 꾸준한 활동을 인정받아 제2회 반려해변 전국대회에서는 '다회왕'이라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인천 실미 해변에서 활동 중인 포그니 회원들을 만났다. 실미 해변은 작은 유원지가 딸려 있어 차박 캠핑의 성지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풍경과 넓게 깔린 백사장 덕분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관광을 즐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큼 미처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포그니 회원들은 이에 심각성을 느껴 실미 해변을 입양해 돌보고 있다.

▲ 해변 정화 활동에 참여한 포그니 회원들.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 해변 정화 활동에 참여한 포그니 회원들.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욕심 부리지 마시고 천천히 담으시라"는 담당회원 풋사과(별칭)의 말과 함께 본격적인 정화 활동이 시작됐다. 회원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유리병 파편,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숟가락, 차박에서 사용되는 밧줄이 모래 깊숙이 박혀 있었다. 폭죽은 물론,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낚싯대도 있었다. 물가에는 어부들이 사용하는 스티로폼과 가죽장갑이 떠내려와 여기저기 엉켜 있었다. 해변 한 구석에는 몸통만한 폐타이어가 버려져 있어, 포그니 회원 세 명이 달려들어 겨우 수거했다.

수많은 쓰레기를 기록하는 인원도 따로 있었다. "담배꽁초 다섯 개, 비니루 두 개, 실타래 삼 센치(cm)!" 여기저기에서 외치는 쓰레기 목록과 수량을 어플에 일일이 적어넣는 것이다. 이 어플은 반려해변 운영 사무국인 '이타서울'에서 제공한 것으로, 어플로 수집한 기록은 이후 해양 쓰레기 분류 및 정책 수립에 이용한다.

▲ 이타서울이 제공하는 '이타시티' 앱에서 정화 활동의 성과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포그니 회원 제공.
▲ 이타서울이 제공하는 '이타시티' 앱에서 정화 활동의 성과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포그니 회원 제공.

포그니 회원 복덩이(별칭)는 이날 연차를 냈다. 일을 쉬더라도 활동에는 꼭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복덩이는 "너무 좋으니까요. 너무 뿌듯하고 즐겁고 행복해서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포그니 회원들은 "지구에 해를 끼치지 말자"는 가수 박창근의 신념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가수를 사랑하는 팬심이 지구를 지키자는 결심으로 발전한 것이다. 환경 정화에 대한 열의로 뭉친 그들, 포그니가 지나온 해변은 몰라보게 깨끗한 모습이었다.

한편 회장 풋사과는 현행 반려해변 제도의 운영 방식 개선에 의견을 더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이지만,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이 확실히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포그니 회원들이 정화 활동에 사용하는 자루, 장갑, 집게 등의 필수용품은 모두 사비로 구입해 여러 번 재활용한 것이다. 이에 풋사과는 "체계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반려해변 사업이 널리 알려질 것"이라며 "무엇인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에서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나?

풋사과: 아무래도 활동 지원과 관련된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자루, 장갑, 집게 이런 것들을 다 지원해줘야 한다고 듣기도 했다.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부족한 지원이 활동에 영향을 끼치진 않나?

풋사과: 솔직히 부담된다. 우리 가수님(박창근)이 그러더라. 왜 봉사를 하면서 이런 부차적인 비용을 다 감당해야 하느냐고. 물론 좋은 마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활동을 위한 물품 지원 같은 것들은 사실 필수라고 본다. 그래야 정화 활동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우리처럼 한 달에 몇 번씩 모여서 적극적으로 임하는 단체도 없을 것이다.

운영 사무국 지원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풋사과: 직접 이유를 물어봤을 때 '예산이 끊겨서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니 내년부터는 잘 해주겠다고 하더라. (반려해변 사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타서울 측은 현재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금 조성을 진행 중이며 해양환경공단이 예산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 예산 삭감과 제도 개편…과도기 보내며 새로운 도약 준비하는 반려해변

반려해변은 예산 삭감과 더불어 제도 개편까지 진행되는 과도기에 있다. 지난해 정부는 반려해변 사업을 민간 주도 방식으로 개편한다고 밝히며 이타서울을 운영 사무국으로 선정했다. 기존에는 해수부가 해양환경공단을 통해 시행해 왔으나, 민간이 주도하는 반려해변 제도의 확장을 위해 운영 사무국을 지정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타서울 측은 "이번 연도 반려해변 사업 예산이 사라지면서 여러 해변이 방치되고 활동에 문제가 생겼다"며 현 상황을 지적했다. 이어서 "하지만 여전히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해변을 가꾸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 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예산 없이 전국의 수많은 반려해변을 모두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양환경공단이 나서서 이타서울과 함께 반려해변 제도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역 자원봉사센터 및 비영리 단체와 입양기관의 네트워크를 증진하고, 전문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의 과정이 포함된다. 

더불어 입양 단체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전국의 해변 데이터를 수집하여 주변 쓰레기 처리장, 편의 시설 등을 파악해 활동의 접근성을 증대했다. 또 활동 우수 단체에는 2025년 반려해변 입양 우선권을 주는 등의 방안을 도입할 계획이다. 새롭게 단장할 반려해변을 위해서,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은 개편안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타서울은 "민간 주도의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국가 예산 없이 운영되는 만큼, 기업의 지원과 해양 분야 ESG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후 기업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기금은 해변 정화 활동, 해양 환경 교육 프로그램, 데이터 기반 환경 보호, 반려해변 제도 유지 및 홍보 등에 사용되어 반려해변 제도를 더욱 안정화할 수 있다. 

이타서울은 "해변의 주인인 우리(시민)의 관심이 있어야 정부 정책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반려해변 활동이 시민들에게 하나의 여가 활동,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며 시민의 적극적인 연대를 당부했다.

■ 깨끗한 내일을 향해 다시 한 발짝

▲ 이타시티 앱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모습.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 이타시티 앱에 수거한 해양 쓰레를 기록하는 모습. 김비랑, 고은빈 기자 촬영.

야심차게 시작한 반려해변 사업. 시행 2년간 입양된 해변이 20배나 증가했을 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 전액 삭감이라는 큰 위기를 맞았고 민간 주도 사업으로 변화하며 일종의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수많은 해변과 입양 단체를 등에 업고 있기에, 해수부가 주도하고 해양환경공단이 후원하며 반려해변 제도 개편안을 빠르게 준비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처리되지 못한 해양 쓰레기가 속수무책으로 쌓이고 있다. 더 나은 해양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타서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반려해변 신규 입양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측의 지원과 더불어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관심도 요구된다. 우리의 반려, 깨끗한 해변을 향해 다시 크게 한 발 내딛을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이프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