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어르신들께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처음의 생각과 달라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좁은 시선에서 어르신들을 바라보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제 반성의 마음을 주변에 들려주다가 이렇게 글로 써봐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어 부족하지만 제가 느꼈던 몇 가지 이야기를 정리하였습니다.
하나, 시니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물고기라는 것을 인간의 시선으로 분류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시니어 시장에 있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사람들, 특히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분들은 시니어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정의하고 판단해 버립니다.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이런 걸 팔아보면 잘되지 않겠어?", "시니어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시니어란 무엇일까요? 사실 그 어디에도 정의된 적이 없습니다. 65세가 넘으면 시니어일까요? 아프면 시니어일까요? 아니면 은퇴하면 시니어일까요? 저는 시니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이마트에서 쇼핑하다가 갑자기 재래시장을 가지 않습니다. CGV에서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대한극장으로 가지 않습니다. 바뀌는 건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서비스가 아니라 조금 더 배려가 있는 서비스입니다. 약간 더 큰 활자, 너무 복잡하지 않은 키오스크, 모바일도 좋지만 오프라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어르신들에게는 약간의 배려만 더해지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마치 사람들은 시니어들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전혀 다른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무례함이라 생각합니다.
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자식들은 따라가지 못합니다.
제가 시니어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당황했던 것은 주간보호를 처음 오픈했을 때였습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주간보호 중에는 좋은 곳들도 있었지만 열악한 곳들도 많았기에 케어링에서 주간보호를 만들 때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깨끗한 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가구부터 조명까지 신경을 썼고, 운동기구와 프로그램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주간보호센터는 한국에 없다는 약간의 자만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오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픈하자마자 어르신들이 엄청나게 등록하실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천천히 늘어났습니다. 나중에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입지의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배웠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자식들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제 주변에는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원에 보내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학원 하나를 고를 때도 얼마나 치열하게 탐색하고 공부하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유치원, 더 좋은 학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재빨리 아이들을 옮깁니다.
하지만 주간보호센터를 자식분들이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따지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건 자식분들의 잘못이나 무관심이 아닙니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최고의 주간보호센터를 보내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큰 불만을 자식에게 말하지 않으면 자식들은 부모님께서 충분히 만족하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이야기하시는 "나는 지금 충분하다. 너나 신경 써라"라는 레파토리가 요양 쪽에도 적용되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양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은 정말로 만족해하셔도 그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하시지 않습니다. 혹여 그 이야기조차 자식이 신경 쓰일까 봐 말을 아끼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셋, 어르신들도 우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요양사업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보게된 책이 바로 엘리자베스 브라미의 '노인들은 늙은 아이들이란다'였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미 제목에 다 담겨 있습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가 해탈한 도인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나이가 많아도 더 많이 배우고 싶고, 더 멋져 보이고 싶고,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80대나 20대나 똑같습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단정 지어서 어르신들을 판단해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주간보호에 오는 어르신들도 편찮으신 부분이 있으시지만 그럼에도 다들 멋져 보이고 싶어 하십니다. 이건 제가 사업 초반에 주간보호에 온 여자 어르신께 "오늘 옷이 너무 멋지시네요"라고 하자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게 "내가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어떤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고 싶을까?"였습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 엄마가 다니고 싶은 주간보호센터를 만들어야겠다"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게 '뷰티&스파' 컨셉의 주간 보호센터였습니다.
주간보호라고 느끼지 못하도록 고급리조트에 쓰이는 벽돌과 조명을 설치하고 주간보호센터에서 피부마사지, 네일아트, 족욕서비스, 새치염색까지 받으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주간보호가 필수적으로 가져가야 할 운동, 식사, 재활프로그램 또한 당연히 다 들어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르신들을 케어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관점이 아니라 능동적인 어른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오고 싶은 공간, 자신감이 생기는 공간으로 바꾸면 일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도 어르신을 대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선순환되어 어르신들이 바뀌게 됩니다. 집에 계실 때보다 더 많이 움직이시려고 하고, 더 많이 웃게 되십니다.
마치며.
겨우 5년 차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대기업에서는 임원들이 신입사원을 이해하려고 MZ세대 강의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MZ세대도 그 어느 세대보다 똑똑하고 정보가 많은 세대이니 그들이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고 조금만 노력해도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OO세대"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함께 공감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