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란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연약한 부리로 안에서 밖을 향해 껍질을 쪼아대기 시작하면, 어미는 새끼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밖에서 동시에 계란 껍질을 쪼는 아름다운 협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동행이 그런 아름다운 행위를 하는 공동체였으면 합니다. … 암이라는 껍질 속에 갇힌 후배 환우들이 껍질을 잘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선배 환우들이 힘을 보태주실 때, 우리는 진정으로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지금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가는 '아름다운동행'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인터넷카페 '아름다운동행' 소개문 中)

회원 수 240,167명(2024년 9월 9일 오후 4시 46분 기준)을 보유한 인터넷 네이버 카페 '아름다운동행'은 대규모 암 경험자 커뮤니티다. 많은 암경험자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암 경험담을 주고받으며 위로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카페지기이자 대표인 최한중 씨가 이 카페를 설립하진 않았다. 이 카페는 최 대표가 2009년 위암을 진단받고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던 위암 관련 카페였는데, 위암 1기 남편을 간병하던 카페지기가 돌연 사라지면서 당시 카페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최 대표가 카페를 이어받아 운영하게 됐다.

최 대표가 운영하면서 '아름다운동행'이라고 개명한 이 카페는 암 경험자가 본인이거나 2촌 이내인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 '카페 가입하기'를 누르면 암 경험자가 본인 또는 가족 등 누구인지, 병명과 병기는 어떠한지, 암 진단 또는 치료받은 병원 및 교수 이름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이고 정확한 답변을 요구한다. 기자도 인터뷰 전 카페를 둘러보고자 카페 가입을 시도했다가 암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거절당했다.
 

▲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아름다운동행
▲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아름다운동행

"죄송하게도 대통령이라도 암환우와 밀접한 관련이 없는 분은 가입이 불가능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암환우가 아닌 사람이 들어왔다가 제품 홍보 등 다른 일을 한 사례들이 있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양해 부탁한다."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현재 많은 회원이 카페를 믿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소송 등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고 말하는 최 대표. 그는 카페 내에서도 건강정보 관련 글엔 회원들의 관심이 크지 않으며, 그 이유는 건강정보엔 광고가 미묘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일 조회 수가 많은 글은 암 진단 이후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 등 일상을 나누는 글이다. 최 대표는 "아름다운동행의 가치는 암을 실제로 경험한 분들이 경험담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카페 운영목적을 밝혔다.

아름다운동행은 카페 게시글과 댓글로 온라인 활동이 활발하지만 오프라인 모임도 있다. 수시모임 외에는 대장암 4기 환자 회원 주도하에 20~30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걷는 트래킹모임이 있고, 암 사별자 상담 모임 '블루보틀(Blue Bottle) 프로젝트'도 있다. 
 

▲ 암 경험자 커뮤니티 '아름다운동행'의 트래킹 모임. ⓒ아름다운동행
▲ 암 경험자 커뮤니티 '아름다운동행'의 트래킹 모임. ⓒ아름다운동행
▲ 암 경험자 커뮤니티 '아름다운동행'의 암 사별자 상담모임 '블루보틀 프로젝트'. ⓒ아름다운동행
▲ 암 경험자 커뮤니티 '아름다운동행'의 암 사별자 상담모임 '블루보틀 프로젝트'. ⓒ아름다운동행

'블루보틀'엔 슬픔을 병에 담아 떠나보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블루보틀 상담사는 본래 자살 사별자 전문 상담사였다. 그는 남편이 암환우여서 아름다운동행의 회원으로 있었다가 남편과 사별하면서 최 대표의 제안으로 암 사별자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 6월에 시작해 3개월 동안 6회차를 진행한 블루보틀 프로젝트 내담자들은 처음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마칠 때엔 웃으면서 "이 모임이 계속되면 좋겠다. 나중에 이 모임에 자원봉사자나 지지자로 참여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상담효과가 좋았다. 최 대표는 블루보틀 프로젝트에 대해 "내담자로 참석한 분들이 코치 자격증을 따고 또 누군가를 코칭 해줄 수 있는 자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암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의 모임도 있다. 보통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이후 장례식장에서부터 시댁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일들을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나눈다. 모임 참가자들 중에는 시어머니에게서 "네가 내 아들 잡아먹었다"라는 말부터 "너네 결혼할 때 우리 집에서 뭐 해줬으니까 이건 우리가 가져가야지. 내 자식 죽은 보험금에서 이만큼은 내가 가지고 와야지"라는 말과 함께 재산분할을 요구받는 사례도 있었다.

이 외에도 암환우들끼리 자연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좋은 경험하자는 취지로 열게 될 힐링 여행 프로그램은 장소와 리더를 찾으며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돼줄 수 있는 것'이 오랜 기간 암 환우 커뮤니티를 운영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동행은 가족이 없는 젊은 암 환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치러주고, 유가족 중 어린아이만 있는 경우 장례 전 직접 시신에 염을 해주기도 했다. 젊은 대장암 말기환자가 죽기 전 꼭 착한 일을 하고 싶다며 소아암환자 기부금 모금운동을 하고자 할 때 아름다운동행이 그 일을 도왔다. 그는 2개월 만에 2천만 원을 모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아름다운동행
▲ 최한중 아름다운동행 대표. ⓒ아름다운동행

대규모 암환우 커뮤니티로서 아름다운동행은 암환우 권익증진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최 대표는 "나라에서 제공하는 자원은 한정적이라 여러 암환우들이 나눠 써야하는 상황에서 자기 위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필요한 것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고 그 외에 대해선 자제시키는 등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최 대표는 암환우들에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여명이 3개월 남았다고 진단받고 10년 이상 잘 살고 계신 분들이 계시는 등 아름다운동행엔 그 증거와 증인이 많다"면서 "암 진단받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본인이 어떻게 노력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렸으니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암 진단 후 책, 논문 등을 약 400권 정도 읽었다. 그 중 '나는 암이 고맙다'라는 책에 대해 "암에 걸리면 보통 보호자가 암환자의 식사를 챙기는 등 돌보는 역할을 하는데, 저자는 자신이 먹을 음식을 공부하고 스스로 챙겨 먹더라. 이 책을 읽고 '지금 제일 불안한 사람은 9개월 된 아이와 암환자인 남편을 둔 나의 아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음식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 끼 식사에 뿌리, 줄기, 잎, 열매 등 채소 전체 부위를 챙겨 먹었다. 

또 암전문의에겐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주시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을 건넸다. "왜냐하면 겁나기 때문이다. 암환우는 의사가 말할 때 눈빛, 표정 등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며 암환우의 처지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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