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방문 두 번째 날

이날의 방문 기관은 프랑스 노동자협동조합 총연합회와 유니콘 연합회(Les  Licoornes)라는 이름의 13개 공익협동조합 연합회였다. 통역사님 예상으로는 오늘 파업이 예정되어 있으니 혹시 늦을 수 있다고 조금 이르게 출발하라는 이야기에, 우리는 부지런하게 숙소를 나섰다. 파업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평소보다 좀 빨라서인지 전철에는 사람이 많아 몹시 붐비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간을 더 허비한 것은 없어서 약속된 시간보다 더 빨리 프랑스 노동자협동조합 총연합회가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파리는 우리에게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전철에서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빨리 걷는 것 같았던 진격의 파리지앵들을 만나 이리저리 치이며 놀랐었고, 베르사유와 개선문에서 본 새치기의 자연스러움도 대단했으며, 미수에 그치긴 했으나 전철에서 경험했던 소매치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숙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오늘 이른 아침에 본 파리의 거리는 온통 개똥밭이었다. 연수단을 이끄신 장종익 교수님은 "프랑스 사람들이 좀 털털한 편이긴 하지"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정도를 넘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이 얘기를 꺼내게 된 것은 우리 연수단원들이 연이어 그걸 밟게 된 것 때문이다. 뒤쪽에서 걷고 있던 나는 공사를 위해 설치한 쇠기둥 주위에서 밟혀서 모양이 변한 그것을 걷는 내내 계속 발견했고, 모양이 그렇게 된 이유가 우리 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한 분의 신발 바닥에서 잔해로 남은 오물을 발견했다. 바닥에 흐르는 물에 신발 바닥을 닦는 분의 당황한 표정을 보면서 우리는 아침부터 웃음보가 터졌고, 그렇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우리를 환영해 주는 이자벨을 만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자벨은 이곳 프랑스노동자협동조합총연합회에서 대외협력을 담당하고 있었다. 프랑스노동자협동조합총연합회는 줄여서 CGSCOP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노동자협동조합(SCOP), 공익협동조합(SCIC), 사업고용협동조합(CAE) 세 가지 형태의 조직을 대표하는 연합회 조직으로서 가입된 회원조합을 지원하고 있다.

노동자협동조합(SCOP)은 19세기부터 존재한 오래된 조직이다. SCOP UNION 연합회는 9개의 지방 연합회로 나눌 수 있다. 이 조직은 지역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내는 분담금은 3등분으로 나누어 중앙 연합회 운영, 지역 연합회 운영, 재정 적립에 각각 쓰이고 있다. 적립된 재정으로 대출을 해주는 SOCODEN, 보증을 서주는 SOFISCOP, 투자를 하는 SCOPINVEST를 운영하며 이를 통해 각 조직의 성장에 투자하고 있었다.
 

▲ SCOP, SCIC, CAE의 관계도. ⓒ조윤숙 연구원
▲ SCOP, SCIC, CAE의 관계도. ⓒ조윤숙 연구원

우리나라는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의 가입률이 낮아 분담금도 적기에 전문가를 채용하기도 어렵고 서비스 지원도 쉽지 않다. 이자벨은 분담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치적인 도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제도와 법적 지원이 가입률을 높이는 데에는 확실히 유리할 것 같았다. 장 교수님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각 기업이 연합회를 의지할 필요가 없다"라는 현실을 지적하셨다.

프랑스는 사회적경제에 지원은 하되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우리와 달리 이곳 프랑스에서는 많은 분담금을 내고 그 분담금이 많은 서비스로 되돌아온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언젠가 방송에서 북유럽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것이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TV를 통해 보았던 적이 있었다. 세금이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에 쓰이는 게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에 쓰인다는 믿음이 그런 사고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 설명 중인 이자벨. ⓒ조윤숙 연구원 
▲ 설명 중인 이자벨. ⓒ조윤숙 연구원 

이자벨은 분담금을 더 많이 내는 조직이 지원을 더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큰 기업이 많은 분담금을 내면서 연합회에 가입되어 있는 쪽을 선택하는 이유는 한 조직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럿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며 사회 전체로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어서 노동자협동조합답게 투자자가 아니라 직원 중심으로 수익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만든 규정들을 흥미롭게 들었다. 대다수 조합이 가입되어 있어서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의 연합조직이 부럽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방문할 기관인 유니콘 연합회 방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는 점심으로 간단하게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알파'라는 이름의 햄버거 가게에 갔는데, 감자튀김은 소금을 너무 뿌려 짜고 햄버거는 그냥 그런 햄버거였다. 다만 웨지 감자의 맛이 독특했는데, 카레 양념을 했고 짜지 않아 그나마 먹을 만은 했다. 짧은 시간에 빈 배 속을 채웠다는 데 의의를 두고 우리는 유니콘 연합회를 향해 출발했다. 

유니콘 연합회 담당자를 만나기로 한 건물로 향하는데 이곳은 자전거 도로가 다른 지역보다 더 눈에 띄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며칠 동안 이리저리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자동차 이용보다 대중교통이 더 이용하기 편리하게 되어있으며 특히 전철이 대중교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또 화물 배송이 가능하게 만든 화물용 자전거나 툭툭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택시도 눈에 띄었다. 이렇게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자전거 이용 문화가 발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좌)파리의 자전거 도로 (우)화물용 자전거. ⓒ조윤숙 연구원 
▲ (좌)파리의 자전거 도로 (우)화물용 자전거. ⓒ조윤숙 연구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샤힌이라는 이름의 담당자가 나타났다. 샤힌은 우리와 만난 긴 시간 내내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환대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할 줄 아는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비오쿱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지금은 유니콘 연합회라는 이곳의 유일한 실무자로서 일하고 있었다. 샤힌이 안내하는 대로 건물로 들어섰는데 6층 건물인 이곳의 1층과 6층을 빼고 2, 3, 4, 5층의 안내판이 모두 에너쿱이라고 쓰여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면담 약속을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던 그 에너쿱의 이름을 보자 모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샤힌은 큰 회의실이 없다고 미안해하면서 우리를 카페테리아라고 하는 공간으로 안내했다. 커피와 간단한 도시락 같은 것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고 연결된 조그마한 내부 정원에 나가서 흡연을 하기도 하는 그곳에는 에너쿱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러 들락거렸고 우리를 흘끔거리며 구경하기도 했다. 샤힌에게 에너쿱과 미팅 약속을 잡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키가 2미터쯤 되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샤힌은 그가 에너쿱 회장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그를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고, 그는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2시 30분경 짬을 내어 우리 미팅 장소에 와주겠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몹시 바쁘다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우리를 실망시켰다.
 

▲ 유니콘 연합회 방문 모습. ⓒ조윤숙 연구원 
▲ 유니콘 연합회 방문 모습. ⓒ조윤숙 연구원 

유니콘 연합회(Les Licoornes)는 그 이름처럼 대단한 기업들이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며 굴러가는 곳이 아니었다. 실무자 한 사람이 움직이고 필요에 따라 가입된 회원 조합의 리더들이 운영위원으로서 결합하여 일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공간도 에너쿱에 얹혀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들어보니 유니콘이라는 이름은 상징적인 뜻이라고 한다. 정부가 돈이 많은 기업들을 지원하고 돈을 좇는 모습을 풍자하기 위하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비오쿱이나 에너쿱처럼 생태적 전환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모인 환경지향 중심의 협동조합 연합회였다. 기존의 프랑스노동자협동조합총연합회(CGSCOP)에 속해있는 공익협동조합(SCIC)들이 주 구성원인 12개의 협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CGSCOP이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이들의 지향을 담아낼 그릇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니콘 연합회는 플랫폼을 만들어 지난주부터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샤힌은 이 플랫폼을 통해 환경 규제와 생태적 전환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놀라웠던 것은 비오쿱이 에너쿱의 창립 과정에 큰 역할을 했고 지원하여 성장시켰으며, 에너쿱이 중심이 되어 유니콘 연합회가 창설된 것이다. 그리고 비오쿱은 유니콘 연합회에 가입되어 있었다. 

협동조합 판에서 생태적 전환을 위한 활동의 중심에 비오쿱이 있었고, 비오쿱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향을 위해 판을 어떻게 키워가는지가 중요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생협들도 탈핵이나 반GMO 운동 등 여러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주장하고 말해왔던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의 본업을 넘어서는 정도의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당장 돌아오는 혜택이 적더라도 전체와 지향을 위해 더 많이 분담하고 헌신하는 것이 가능한 이들의 문화에 감동을 받았다. 성실하게 오랫동안 우리의 궁금증에 답해준 샤힌에게 감사하면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조윤숙 연구원 
ⓒ조윤숙 연구원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해서 먹고 우리는 오늘 방문했던 두 기관에 대해 느꼈던 소회를 나눴다. 장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정부와 정부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준정부기관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사회적경제 영역의 성장과 이것이 불러온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연합회 중심으로 지원하고 발전해 온 프랑스의 사회적경제와 비교해 보라고 짚어주셨다.

프랑스는 사회적경제를 법과 예산으로 지원은 하되 일일이 참견하지는 않았고, 개별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은 지역과 업종별 연합회가 중심이 되었다. 당연히 정치에 휘둘릴 필요 없이 정부 정책에 따라 사업 방향이 급변할 필요도 없으며, 숫자로 보여지는 성과에 대해 전전긍긍할 이유도 없다. 오롯이 실질적인 사회적 목적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해외 연수는 이렇게 활동가나 연구자의 시야를 넓히고 사회적경제에 대해 세계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원금과 정책,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사회적경제 친화적이냐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점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내일 방문 기관은 비오쿱이다. 에너쿱과 유니콘 연합회를 탄생시켰던 그 신화의 맨 앞 장으로 달려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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