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억압된 사회와 성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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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억압된 사회와 성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
공정경 기자가 만난 사람들 / 경남교육연구정보원 황선준 원장 인터뷰(4)
  • 2017.06.08 16:19
  • by 공정경
황선준 원장의 아내인 '레나 황'은 경남이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레나 황 생일에 경남이주민센터 이주민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파티를 함께 하기도 했다.

학생들 정치교육 즉 민주시민 교육은 일찍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정경 기자(이하 공) : 공무원과 교직원의 정치참여, 학생들의 투표권에 대한 생각은? 우리나라는 다 제한돼 있잖아요.

황선준 원장(이하 황) : 우리나라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이 개념은 1960년 윤보선 대통령 때 만들어졌어요. 그 배경은 자유당 시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기 정당으로 공무원들을 끌어들이고 동원하여 정치를 했어요. 이런 폐단을 없애도록 한 게 정치적 중립이에요. 그래서 헌법에 '정치적 중립은 보장된다'라고 씌어 있어요. 국가가 공무원들을 위해 큰 선심을 쓰는 듯한 느낌으로 돼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배경 때문이죠. 이 때 만들어진 개념이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 돼 오고 있는 거죠.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의 시민의식도 많이 성장했고요. 그래서 지금은 정치적 중립을 헌법이 보장해주기보다는 공무원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해를 많이 해요. 이제 새로운 진보 정권이 들어섰으니 이 문제도 다시 되 짚어보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정치적 중립을 폐지하면 교육계 같은 경우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을 찍으라고 할까 봐 우려들을 많이 합니다. 당연히 그래선 안 됩니다. 교사는 여러 정당의 정책을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끔 해야지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을 찍으라는 식의 정치교육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선생님이 거의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단지 기우에 불과합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교사나 공무원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정치에 관심을 못 두도록 하고 정치적 발언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정치에 대해서 잘 알고 학생들을 더 잘 교육시켜 올바른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 정치교육 즉 민주시민 교육은 일찍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고요.

공 : 스웨덴은 학생들 정치교육을 어떻게 하나요?

황 : 스웨덴은 학교 사회시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배우는 것 외에 중학생들이 선거가 있는 해는 모의투표를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정당을 만들고 당 대표도 뽑고 유세하고 투표를 하죠. 스웨덴 정당을 좌우로 나눠볼 때 좌측에 좌익당, 환경당, 사회민주당이 있고 우측에 중앙당(옛 농민당), 국민당(또는 자유당), 기독교민주당, 보수당이 있습니다. 최근에 스웨덴민주당이란 극우 정당이 의회에 입성했고요. 중학교에서 선거가 있는 해 가을에 학생들은 정당을 만들고 당 대표를 뽑고 정책을 만들어 유세를 하고 학생들끼리 투표를 합니다. 제 큰애가 중학교 2학년 때 환경당 대표가 되어 투표한 결과 그 학교에서 2등을 했습니다. 실제 환경당은 제일 작은 정당 중 하나인데 그 학교의 학생 환경당이 호응도가 좋았다는 얘기죠. 이런 살아있는 정치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정당 대표들이 학교에 와서 자신의 정당과 정강이나 정책에 대해 홍보를 하는 시간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일부 정당만 초청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정당에게 같은 기회를 줍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정치교육 수준은 이 보다 더 높고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요. 그 정도로 정치 교육을 열심히 합니다.

공 : 기존 정당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도록 하는군요. 정치교육의 깊이도 다르고요.

황 : 다르죠. 아이들이 정치적으로 휘둘린다고 생각해서 금지하기보다 오히려 일찍 정치교육을 해서 정치에 대해 알고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끔 합리적인 아이로 키우는 게 우리가 나아갈 길입니다.

공 : 이번에 촛불집회 때도 학생들 참여가 굉장히 높았잖아요. 학생들이 나와서 직접 자기 발언도 많이 하고.

황 : 그랬죠. 이제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아무 것도 모르니 공부나 하라, 정치 같은 건 몰라도 되니 공부나 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지요.

공 :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학생들이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 그런 점이 있죠.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사심이 적고 정말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죠. 우리나라는 현재 투표연령이 19세에요. 더불어민주당은 투표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하는데,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있어요. OECD국가 중 19세에 투표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대체로 18세에 투표를 하고 오스트리아 등 일부 나라에서는 16세에 투표를 해요. 투표연령을 16세로 내리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요. 16세는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고등학교 1학년 정도면 투표를 해도 충분할 만큼 아이들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16세에 투표를 하게 되면 중학교 사회과목 교육이 많이 달라지고 중학교에서의 정치교육도 현실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학교의 사회 및 정치교육도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많지요. 물론 한꺼번에 16세로 낮추기는 어렵겠지만 우선 18세로 낮추고 머지않아 16세까지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 : 그렇죠. 고등학교 1학년이면 어느 정도 생각이 완성되는 시기니까요.

황 : 충분히 가능합니다.
 

황선준 원장은 해마다 북유럽 교육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올 1월 황선준 원장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다녀온 탐방객들의 단체사진.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정상'이라는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사회

공 : 스웨덴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지요?

황 :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어요. 우리나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나와 있어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이 세 가지죠. 하지만 UN이나 국제적 기준은 성별, 종교, 인종, 장애, 성 정체성 및 지향성, 나이 등 6~7가지에서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수준에서의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해요. 사실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2007년, 2010년, 2013년 총 세 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을 만들었지만 보수 기독교단체에서 반대해서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었고요.

공 :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워낙 보수 기독교단체들이 반대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그에 관한 자기 의견도 공식적으로 말하지 못하고요.

황 : 스웨덴 사례를 하나 들어볼게요. 스웨덴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이런 문제가 나와요. 영희와 미숙이가 아파트를 사러 간다. 아파트 가격이 1억이다. 그러나 영희와 미숙이는 천만 원밖에 없다. 9천만 원을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서 30년 동안 상환하려고 한다. 당시 이자율은 연 3%다. 이럴 때 영희와 미숙이는 은행에 연금과 이자를 매달 얼마씩 갚아야 하는가?

공 : 어머! 어려워. (웃음)

황 : 어려워요? 지금은 못 풀지만 고등학생 때는 쉽게 풀었을 거예요. 문제의 초점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공 : 영희와 미숙이죠?

황 : 맞아요. 중요한 점은 영희와 미숙이에요. 다른 나라에서는 결혼하고 남자와 여자가 아파트를 사러 가는데, 스웨덴에서는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 또는 남녀가 아파트를 사러 간다는 것으로 나와요. 이 외에도 남자 둘이서 시장을 보러 가는 둥 다른 나라에서 남녀, 즉 부부가 하는 일을 스웨덴에서는 이렇게 여자 둘 또는 남자 둘이서도 한다고 교과서에 나와요. 신기하죠?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사랑하는 데 있어서 정상과 비정상은 없다. 국가가 성 정체성 (성 지향성)에 있어서 '이건 정상이고 저건 비정상이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교과서에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얼마나 파격적입니까! 차별금지를 이런 식으로 교육하여 성정체성 문제에 있어서의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성이 억압된 사회와 성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의 차이가 여기서 나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동성애자라 합시다. 성이 억압된 사회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살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는 전혀 사랑할 수 없는 여성과 고통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합니다.

성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얘기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무시당하거나 손가락질 받지 않아요.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해요.

공 : 참. 한국은 비극이네요, 비극...

황 : 이성애자가 아닌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살기 힘든 나라죠. 과학자들이 얘기하잖아요. 인류의 약 10%는 이성애가 아닌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요. 이성애가 아닌 사람이 10명 중 1명이라는 뜻이에요. 성이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10명 중 1명은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동성애가 병적이다,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하는데, 자연 즉 동물의 세계에 15,000종이나 되는 동물들 세계에도 동성애가 있대요. 그럼 무엇이 자연적인지 생각해봐야죠. 동성애를 인정하고,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성정체성이란 게 어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가요? 이게 병이라서 고칠 수 있는 건가요? 찬성하고 반대할 문제인가요?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 것인가 아님 억압하고 차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공 : 우리나라는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심해요.

황 : 그럼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지요.

공 : 그래서 학교 교육이 중요한 거 같아요.

황 :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사실 잘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동성애자를 만나본 사람, 친구로 있는 사람은 절대 '병적이다, 자연스럽지 않다'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우리와 똑같아요.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정상'이라는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가 힘든 사회예요. 정상이라는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죠? 외국에서 이민 온 이주자나 난민 즉 다문화가정의 어른들과 아이들, 장애인, 공부가 느린 아이들, 성 지향성이 다른 사람들... 우리나라는 이런 사람들이 살기가 꽤나 힘든 사회에요.

공 : 장애만 가져도 대부분 외국으로 나가 살고 싶어 해요. 편견뿐 아니라 사회 기반시설이 워낙 불편하거든요.

황 : 전체적으로 장애인이 어디든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웨덴은 공공시설 자체가 장애인 기준입니다. 장애인이 어디든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놨어요.

공 : 그런 기준이 법적으로 돼 있나요?

황 : 그래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학교는 장애학생을 받아야 하고 장애인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필요하면 장애 학생 한 명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 : 장애 학생 한 명이 들어오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요?

황 : 예를 들어, 장애 학생이 2층에서 공부해야 하면 휠체어가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합니다. 아니면 1층에서 공부하도록 마련하든지요. 물론 스웨덴 학교는 다층 건물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건물은 장애인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놨어요.

공 : 도로부터 모든 공공시설이 노약자와 장애인이 다니기 편하게 돼 있죠? 예를 들면, 이탈리아는 저상버스에서 휠체어가 바로 내릴 수 있도록 버스와 도로의 높이를 딱 맞게 해놨다고 합니다.

황 : 그 저상버스, 어디서 만든 줄 아세요? 아마 스웨덴에서 만들었을 거예요. (웃음)
Volvo, Skania 버스가 그런 버스를 만들고 해외에 수출을 많이 해요. 세계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높아요. 이 기업들이 생산하는 버스가 탑승 계단이 없고 버스 몸통을 낮출 수 있어 어린애들, 어르신들, 유모차를 가진 부모,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인도에서 아무 턱없이 그냥 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해놨어요.

공 : 아, 이탈리아만 그런 게 아니구나. (웃음)

황 :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소위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차별하도록 놔 둘 것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의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정치의 수준 및 시민성과 관련 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귀한 사람이다'. 알고 보면 사실 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디서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어머니고 아버지고, 귀한 자식이고,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즉 가정에서 다 존중받는 사람들이에요. 이 모든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모두 존중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정상이라는 테두리를 조금 벗어났다고 차별하고 업신여기고 멸시하고 그럴 것인가요?

공 : 여담으로, 스웨덴은 아이들 성교육을 어떻게 하나요?

황 :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육을 시킵니다. 사랑하는 건 아름답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 성교육의 핵심이고요. 또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면 밖에서 컴컴한 골목에서 연애하도록 놔두지 않고 오히려 집으로 데려오도록 하여 같이 얘기하고 식사하고 여행도 하고 그래요. 이게 훨씬 좋지 않나요?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 TV에서 뽀뽀하는 장면이 나오면 저는 어떻게든 좀 불편했는데 우리 애들이나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더라고요. (웃음)


(편집자 주_황선준 원장과 인터뷰는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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