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시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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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시간이 든다
공정경 기자가 만난 사람들 / 경남교육연구정보원 황선준 원장 인터뷰(3)
  • 2017.05.25 17:20
  • by 공정경

정책도입과정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근본부터 깊이 있게 연구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공정경 기자(이하 공) : 스웨덴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황선준 원장(이하 황) : 정책 도입과정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에요. 기존의 정책을 바꾸거나 새로운 정책을 세워야 할 때 정부는 '정부연구조사위원회'라는 위원회를 설치합니다. 위원회의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만 중요한 사안을 연구·조사하는 위원회는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참여합니다. 각 당을 대표하는 의원, 관료, 교수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이 참여하죠.

예를 들어 스웨덴에는 사교육이 없지만, 사교육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사교육경감위원회를 만들어요. 당 대표, 그 분야의 전문가, 교수, 교사, 학원 대표, 행정 관료 등이 위원이 돼서 조사하고 연구를 합니다. 위원회가 1~2년 연구를 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요. 이것을 '정부연구조사위원회제도'라고 합니다. 보세요. 이게 다 그런 보고서에요.

공 : 헉, 그게 다 보고서에요? 책이 아니고?

황 : 이건 '새로운 교육법 1, 2' 보고서에요. 이 두 보고서만 해도 1,300페이지가 넘어요. 이런 위원회가 1년에 150~200개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전성기인 1970년대에는 350개 이상의 위원회가 가동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위원회가 운영되는 것은 정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작은 정부를 이런 일시적인 위원회가 보완한다고 보면 되죠. 또 정부는 작지만 중앙행정기관은 상당히 큽니다.

예를 들어 교육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200명 남짓한데 국가교육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350명 정도에요. 국가교육청 외에도 특수교육청 (1,500명), 교육감사청 (350명), 고등교육청 (200명) 등이 있답니다. 작은 정부에 큰 중앙행정기관 형태로 되어 있는 스웨덴 행정체제는 하나의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죠. 큰 중앙행정기관이 정부연구조사위원회와 같이 작은 정부를 보완하고 있지요.

이런 정부연구조사보고서가 일 년에 수백 개가 나와요. 엄청나죠? 위원회에서 보고서를 만들어내면 정부는 그 보고서를 각계각층으로 보내어 의견을 수렴합니다. '의견수렴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각계각층은 이런 보고서를 보고 의견을 냅니다. 국가교육청이나 학교뿐 아니라 개인 즉 교사도 낼 수 있어요. 단지 서면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야 해요. 이렇게 서면으로 들어온 의견을 정부가 다 취합해서 분야별로 "이러이러한 의견이 나왔다."라는 결과와 함께 '정부제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정부 제안이 나오는 전 과정까지 대체로 1~3년 걸리죠.

위원회가 일하는 과정이나 정부의 의견수렴 과정 등이 또 언론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공개원칙'이죠. 그래야 시민들이 정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 수 있죠. 이것이 '스웨덴 민주주의'입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근본부터 깊이 있게 그리고 의견이 다른 사람과 기관들이 같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 조사하고 이런 과정과 결과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아주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이죠. 정부연구조사위원회제도는 4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스웨덴 정치와 뗄 수 없는 부분이죠. 이런 장기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만듭니다.
 

황선준 원장 책장에는 수백 권의 스웨덴  보고서가 꽂혀 있고, 그 중 '새로운 교육법 1, 2권'을 보여주고 있다.


공 : 지난번에 경기도 교육청이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면서 학교에서 저녁을 제공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저녁 먹을 곳이 없어져 편의점 등에서 식사를 대충 때우고, 오히려 학원을 더 많이 다니게 됐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야간자율학습 폐지의 의도는 좋은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더라고요.

황 : 저도 읽었어요. 만약 스웨덴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면 교육청 차원에서 교사, 학부모가 참여하는 위원회나 TF팀을 구성해 무엇이 문제인지,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조사·토론하며 보고서를 만들고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 문제로 인하여 불편함을 느끼거나 손해를 보는 그룹들이 생기며 그들의 반대가 심화되고 갈등이 일어나지요.

그러나 이 부분에 저도 교육청과 같은 생각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면 귀가하여 쉬며 취미 활동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집에서 공부하고 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야말로 '가정이 있는 삶'을 위해 야간자율(강제)학습을 폐지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과도기적으로 다른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의도는 좋지만..."이라고 얘기하며 반대를 한다면 우리는 절대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책을 결정했나가 언제나 중요합니다.

공 : 과도기적으로 부정적인 면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 정책이 순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일단 학교에서 저녁을 안 주니까 어찌 됐던 가정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에요?

황 : 그렇죠. 그런 면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에 대해서 책임을 제대로 안 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책임, 가정에서 아이들 학습에 대한 책임,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책임 등 이런 모든 책임을 가정(부모)이 져야 하는데 이런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지요. 아마 많은 분이 우리가 하기 싫어서 안 하냐, 현실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점이 있어요. 이럴 경우에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가 제 역할을 하면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어요.

공 : 대부분 아웃소싱 하잖아요. 교육은 학원, 식사는 밖에서...

황 : 그러다 보니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돼 버린 거예요.

공 : (한숨)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적 덫에 빠지지 않아야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다

황 : 전체가 다 같이 하면 변화가 빠른데, 예를 들어 경기도는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했는데 다른 지역은 안 하면 문제가 되죠. 사교육 문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사교육이 주는 게 별로 크지 않다는 걸 다 압니다. 어떤 면에서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심어주지 않아 오히려 창의력을 저해한다고도 볼 수 있죠.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비용도 들고요. 사교육이 일 년에 20조 원의 시장이라고 합니다. 만약 모든 학부모가 학원에 보내지 않고 그 돈의 십 분의 일만 세금으로 내어 공교육에 투자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공교육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자, 이것을 교육을 책임지는 정치인과 관료,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고 합시다. 이렇게 했을 때 얼마나 많은 학부모가 그래도 자기 자식은 학원에 보내고 개인지도를 시킬 것이지, 아마 상당 부분의 학부모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 해결이 안 되죠. 그런 사회를 '사회적 덫'에 빠졌다고 할 수 있죠.
 

집무실 벽면에는 황선준 원장이 쓴 칼럼과 주요 기사들이 붙어 있다.


공 : 사회적 덫에 빠졌다?

황 :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서울과 같이 창원도 공기가 상당히 안 좋아요. 미세먼지도 많고. 창원의 공기를 좋게 하려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만들었다 합시다. 예를 들어 휘발유 가격을 대폭 올리고 더 강력하게 불법주차 및 과속운전을 단속하고 그에 대한 벌금도 대폭 올리고 또 창원 도심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에 부담금을 매기고. 그럼 창원시 세수가 늘어나잖아요? 그 늘어난 세수로 버스는 전부 친환경 버스로 바꾸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하면 창원 공기는 금방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해라. 그래도 난 자동차 타고 다니겠다'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가 문제에요. 그런 사람이 많을 때 그런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죠. 이런 상황을 '사회적 덫'에 빠졌다고 합니다.

공 :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민들이 그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황 : 그럴 때 중요한 게 또 정치에요. 시민들과 계속 소통하고 설득하면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사는 곳의 환경을 좋게 하려면 자동차를 덜 타고 다녀야겠다.'라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정치인의 역할이죠. 그게 안 되면 사회는 계속 덫에 빠져 개선하기 어렵습니다. '남들 다 타고 다니는데 왜 나만 안 타고 다녀?' 라는 이기주의적 사고에 빠질 때 그 사회는 상당히 문제가 있죠.

공 : 제가 볼 땐 사회적 덫에 빠지는 경우가 엄청 많은데요?

황 : 제가 볼 때도 많아요. 모든 분야별로. (웃음)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해 왔으니까요.

공 : 결국은 정치의 역할이네요.

황 : 정치의 역할과 시민의식이에요. 이 둘이 손을 맞잡고 성숙해 나가야 합니다.

공 : 스웨덴 같은 경우에 '시민의식이 높다.'라는 게 사회의 발전을 위해 좋은 정책이 있으면 시민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줄이고 그런 정책에 참여를 많이 한다는 거잖아요.

황 : 그렇죠. 참여의식이 상당히 강하죠. 시민의식에서 중요한 건 '얼마만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가.'입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데, 시민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회가 바로 선진사회라 할 수 있죠.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게 누누이 강조했듯이 정치입니다. 이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잖아요. 벌써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아요? 앞으로 우리 사회 얼마나 멋진 사회가 될 수 있을지 정말 기대돼요!


(편집자 주_황선준 원장과 인터뷰는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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