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말로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할 때
상태바
지금이야 말로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할 때
코로나 시대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합니다
  • 2020.10.08 12:16
  • by 임재영 정신과 전문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은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 돌봄, 협동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익을 추구한다. 의료기관을 개인이나 기업이 운영하지 않고 지역주민과 조합원, 의료인이 함께 운영한다. 건강을 오로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니라 협동해서 예방하는 공동의 문제로 바라본다. 의료사협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도 의료사협이 하는 일이다. 조합 소속 병원은 단순 치료 외에 평소 생활습관을 분석해 주민에게 필요한 건강 관리법을 알려 주고 다양한 건강강좌,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료사협 관련 내용을 라이프인에서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임재형 정신과 전문의.
▲ 임재형 정신과 전문의.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주변 분들이나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분들로부터 제가 자주 듣는 말이 있는데요. '도대체 언제 끝나나요?', '이제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죠?' 희망의 배터리가 떨어져 간다는 경고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고음은 사실 제 마음속에서도 문득문득 들리는데요. 그럴 땐 제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대처법은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우울증과 비슷합니다. 우울증 진단 기준에 있는 대표적인 증상들을 보면 우울감, 흥미나 즐거움 저하, 의욕 저하, 식욕 저하, 불면 등이 있는데요. '코로나 블루'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진단 기준에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빼놓을 수 없는 증상이 '무망감'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나 느낌이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거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때 '무망감'을 느낍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처음엔 어떻게든 살려고 있는 힘을 다해 탈출을 시도할 겁니다. 그러다 멈추고 다른 전략을 세워서 다른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요. 새로운 전략이 통해서 실낱같은 빛이라도 찾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결국 '무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가 우울증과 비슷하니 우울증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리면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울증 치료라 하면 항우울제를 떠올리시는 분이 많을 텐데 여기서 항우울제를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리고 싶은 건 '정신 치료'라고도 불리는 상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치료법인데요. 그 이유는 상담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상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그분들은 상담이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로 생각하시더군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담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는 법이죠. 우린 각자 자신만의 결점 또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결점을 '문제'라고 부른다면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상담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전 결점 그 자체를 '문제'로 보고 싶진 않습니다. 결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경우만 그 결점을 '문제'라고 봅니다. 타인이나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결점이 있다면 그 결점이야말로 '문제'고,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든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관점과 어떤 생각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상담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생각 때문에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정신적 고통(피해)을 얻는다면 그야말로 큰 문제이죠. 상담의 목적 중 하나는 관점이나 생각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저의 대처법도 상담입니다. 제 스스로 문제가 될만 한 관점이나 생각을 고치는 것이죠. 

'도대체 언제 끝나나?'하고 조바심과 답답함이 밀려올 때 제 자신에게 이렇게 알려줍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시작을 몰랐던 것처럼 끝도 알 수 없는 거지. 안 그래도 답답한데 내 자신을 더욱더 답답하게 만들진 말자!' 

'이제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하고 상실감과 막막함이 올라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두고 보면 알겠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 작은 바람이야. 만약 돌아갈 수 없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만큼의 작은 기대...'

불쑥불쑥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이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생각들을 스스로 점검하고, 나아가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망감'을 느낄 때, 즉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 그 생각을 따져보면 '희망이 안 보인다'라거나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안 보인다고 해서, 못 찾았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니까요. 

희망을 잃어버렸다거나 빼앗겼다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요. 희망을 이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상실감과 원망감이 더 크게 느껴져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겪을 테니까요. 전 희망을 잃는 것이나 뺏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놔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코로나 재유행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붙잡고 있든, 코로나 재유행 때문에 희망을 놔버리든 선택은 내가 하는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놔버린 희망을 다시 붙잡는 일도 마찬가지로 내가 하는 것이라고 믿고요. 상담은 내가 희망을 놔버리지 않도록, 또는 희망을 다시 붙잡도록 도와줍니다. 엄밀히 말하면 상담이 아니라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돕는 거죠.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관점)에 따라 상황에 대한 평가도 달라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제한된 관점을 갖고 사는데요. 개인이 가지는 경험, 지식·정보, 창의력·사고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볼 수 있는 하늘이 제한적인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 남들은 희망이 보인다고 하는데 자신은 못 보기도 하고, 남들은 희망을 다시 찾는데 자신은 못 찾기도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을 줄이기 위해선 타인과의 연결이자 나눔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다른 관점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제한된 관점을 넓혀나갈 수 있으니까요. 제 경우 상담하면서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제 관점이 넓어지고, 마음의 그릇도 커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사람이 도운 겁니다. 저에게 상담받으시는 분들 덕분이죠.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불완전한 우리는 우울감과 불안감, 때론 절망감과 무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인간은 독립적인(independent)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interdependent) 존재니까요. 코로나 시대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합니다. 희망의 배터리가 줄어드는 나를 찾아 줄 사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함께 잡아 줄 사람 말입니다. 만납시다! 우리! 나눕시다! 우리의 고통을!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재영 정신과 전문의
임재영 정신과 전문의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