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의료'는 지역 의료를 뿌리내리기 위한 필수의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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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의료'는 지역 의료를 뿌리내리기 위한 필수의료이다
  • 2020.11.03 11:49
  • by 김종희 원장(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은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 돌봄, 협동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익을 추구한다. 의료기관을 개인이나 기업이 운영하지 않고 지역주민과 조합원, 의료인이 함께 운영한다. 건강을 오로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니라 협동해서 예방하는 공동의 문제로 바라본다. 의료사협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도 의료사협이 하는 일이다. 조합 소속 병원은 단순 치료 외에 평소 생활습관을 분석해 주민에게 필요한 건강 관리법을 알려 주고 다양한 건강강좌,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료사협 관련 내용을 라이프인에서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김종희 원장(원주의료사협 밝음의원)
▲ 김종희 원장(원주의료사협 밝음의원)

서울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의사 구하기가 힘들다. 도시에서 먼 지역으로 갈수록 급여는 높아지지만, 서울지역 의사 월급에 1.5배 이상을 준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는 곳이 많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취약지역에 지역가산 수가를 도입하더라도, 지역 의사 수급에 큰 효과를 얻지 못할 거 같다. 경제적 보상으로 잠시 지역에 머물 수는 있겠지만, 자기 삶의 터전으로 뿌리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지역 의료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는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고립된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찾아갈 보건의료인의 환자접근성이 빈약한 상황에서 '지역중심 필수의료'를 생각해본다.

1. 가까운 곳에 의료기관이 있어도 진료를 포기하게 되는 환자들이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에서 진폐증으로 가정용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할아버지는 의료기관이 가까운 곳에 있어도 진료를 받으러 가기가 어렵다. 파킨슨을 앓는 아버지와 낙상 골절 후 와상 상태로 지내는 어머니, 두 부모님을 홀로 모시는 아들은 심신이 지쳐 간다. 잘 돌보려 하지만, 혼자 허덕이며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갈 엄두를 못 낸다. 장성한 4명의 자녀가 있지만, 연락을 끊고 지내는 대도시의 노부부는 5년 넘게 병원 진료를 보지 못하고 요양보호사가 동일한 약만 대리로 처방받아오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다녀간 저녁 시간에는 무릎이 굽어 경직된 할머니의 대소변을 할아버지가 수발하고 있다. 부양의무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에서 제외된 독거 할머니는 거의 와상 상태로 간신히 이웃의 방문으로 하루 식사를 이어가고 있다. 움직이기 힘든 수많은 노인들은 가까운 거리에 병원이 있어도 진료를 포기하게 된다.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의 사연들이 어떠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립되어 살아가는지 나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몇 가지 통계자료로 그 수가 상당함을 추측해본다. 2019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 연보에 의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자는 77만여 명으로 노인 인구 800만 명의 9.6% 규모이다. 2019년 등록장애인 현황에 의하면, 등록장애인은 총 2백61만8천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이고, 65세 이상 노년층 장애인 비율 48.3%로 가장 높다고 한다. 중증장애인은 총 98만 명(37.6%), 경증장애인은 163만 명(62.4%)이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 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자녀와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에 따라 공공부조의 대상을 제한하는 부양의무자 제도하에서 17.4%의 빈곤층 중 2.8% 수준만이 의료 공공부조(의료급여) 대상에 포함된다. 2016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1만1천여 명의 노숙인이 존재한다.

▲ 김종희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김종희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노인, 중증 장애인, 부양의무자 제도하에 의료 공공부조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 그리고 노숙인들 등 다양한 이유로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광범위하게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런데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 접근성' 지표 용어에는 의사는 병원에 있고, 아픈 사람이 의료기관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베어져 있다. 의료기관이 원거리에 있든, 근거리에 있든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행위만으로는 진료실을 찾지 못하는 고립된 사람들의 건강권을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어 보인다. 더구나 노쇠한 부모님을 대신하여 3개월 이상의 장기 대리처방을 받아 가는 환자 가족의 숫자도 상당하다. 생활 변화에 따라 노인의 건강 상태가 급변하기 쉬운데, 1년 넘게 검사와 대면 진료 없이 처방하는 것이 안전할까. 의료기관 중심의 정책대응은 '처방전 대리수령 신청서'를 작성하는 행정적인 절차로 대신하고 있다. 이런 분들에게 왕진을 소개하고 직접 방문해서 검사해보면, 빈혈이 심하고 당뇨 수치가 위험 수준인데 기존 약만 반복 처방받아 드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2. 지역사회 보건의료인의 환자 접근성이 빈약하다.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지역 의료 안전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의료기관으로 찾아올 수 있게 해야겠다는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진료를 포기하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의 집으로 찾아갈 수 있는 '의료인의 환자 접근성'이라는 새로운 지표 설정이 필요하다. 지역 의료의 역량 평가는 내원하지 못하는 환자를 찾아갈 수 있는 지역 ‘의료인의 환자 접근성’ 평가와 함께 재설계되어야 한다. 현 보건의료 제도하에서도 방문간호, 가정간호, 장애인 주치의, 왕진 등 '의료인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도화된 장기요양서비스에서 방문간호 서비스가 있지만, 절대다수의 노인들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 요양등급별 한도액을 요양보호 서비스와 방문간호 서비스로 나누어 쓰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한도액을 더 써야 하는 방문간호 서비스 이용자는 2%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또한 의료기관이 가정간호사업소를 개설하여 집으로 찾아가는 간호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지만, 매해 배출되는 가정간호사는 20여 명으로 절대 인력이 부족하다. 2018년 5월 시작한 장애인 주치의 활동도 의사 316명이 주치의 등록하여, 2019년 9월 기준 실제 활동 중인 주치의는 87명에 그치고 있다. 2019년 12월에 시작한 일차의료 왕진 시범사업에 전국에서 총 348개 의원이 참여 신청을 하였지만, 실제 왕진하는 의사는 장애인 주치의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지역으로 내려오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원주 인근 횡성과 영월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고령화율이 이미 30%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 왕진과 장애인 주치의사업의 방문의료, 방문간호 활동을 하는 곳은 내가 일하고 있는 원주의료사협 밝음의원 한 곳뿐이다. 

찾아가는 의료 활동에는 의사, 간호사 이외 보건의료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법 제도하에서는 방문 재활과 방문 구강활동의 수가체계 자체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건의료인은 병원에 있게 되고, 재가 환자의 건강 상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기적' 왕진을 통한 대면진료 주치의관계를 확대하고, 찾아가는 보건의료 서비스가 제도화되어간다면, 예방중심의 공공의료를 튼튼히 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관 접근성'으로 기울어진 보건의료 정책은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시스템을 고착화한다.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환경이 받쳐주면 장애가 경증이 된다'는 어느 장애인 교사의 이야기처럼, 집에서 적절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궁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보건의료인의 환자 접근성은 현재 제로에 가까운 실정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3. 의대생 때부터 지역사회 아픈 주민을 만나며 성장하는 의료인들이 필요하다.

환자가 있는 곳에서 의료인은 성장한다. 고립된 생활 세계를 '찾아가는 의료' 활동은 병원을 찾아갈 수 없는 수많은 아픈 삶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지역 의료는 무한경쟁 사회 속 '채용'의 관계를 넘어 아픈 사람들과 '만남'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사회 건강의 결정요인은 찾아가는 보건의료인을 양성하는  지속적인 투자에 있다.

전국의 지자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찾아가는 의료기관' 개설을 지원하여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고립된 주민과 지역 의료에 관심을 가진 의사의 만남을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지역 의대와 함께한다면 더욱 좋겠다. 민·관·학계가 함께 지역 의료를 뿌리내리기 위한 필수의료를 '찾아가는 의료'에서 찾아보자.  

대부분의 의사는 의대공부와 전공의 수련을 마치기까지 11년의 세월을 대학병원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질병을 중심으로 환자를 만나며 탄생한다. 최첨단 의료장비가 갖춰진 대학병원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매우 뛰어나지만, 지역사회와 관계 맺을 기회가 부족하다. 만약 의대 교육과정에 '왕진 의료' 과목을 개설하여 학년마다 한 달간 마을 속으로 찾아가는 의료 활동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전공의 수련 4년 동안 매년 한 달간 지역사회의 의료 문제를 연구하고 왕진하는 수련 과정을 갖는다면, 지역과 의료를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고민하는 의사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경제적 보상을 통한 지역 의사의 확보는 단기적 유인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의사들의 자발성에 기초하여 지역에서 자기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보건의료 정책은 최소한 의대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의료사협연합회에서는 '예비의료인 연계강화'사업으로 8개 회원조합에서 보건의료 학생들과 함께하는 지역사회 건강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전국 17개 조합 의료기관에서 140명(의사 23명, 한의사 16명 치과의사 8명)의 '팀주치의'가 방문 의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조합원 건강 리더는 2019년 기준 전국 501명이 활동하고 있다. 

원주의료사협에서는 2019년 여름 겨울방학 중 3박 4일간 서울대 송촌 의료봉사동아리와 황둔 지역의 어르신 '건강 반장'이 함께 농촌 건강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어르신 '건강 반장'과 팀을 이루어 가가호호 방문, 의학 공부, 건강 잔치를 함께 하면서, 주민과 함께 하는 지역의료를 경험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장애인 주치의에 등록한 재가 장애인 방문 구강건강 활동에 선배 치과위생사와 함께 치위생과 학생들이 참여한다. 전문가집단의 틀을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의학수련(Trans Professional Education)을 확대해가고 있다. 원주시의사회 산하 '빈의자의사회'에서는 10월부터 매월 1회 저녁에 거리 노숙인을 찾아가는 진료를 시작한다. 학생들도 의료인도 조금씩 의료와 지역의 만남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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