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을 앞두고 새 정부의 정책 전환축으로 제시된 △사회연대경제 △기본사회 △주민자치에 관심이 모이면서, 협동조합의 역할을 다시 묻는 흐름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 협동조합이 복지, 생태, 지역정책을 단순히 보완하는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행위자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한양대학교 제2법학관에서 열린 한국협동조합학회 추계학술대회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다루는 자리였다. 발표 주제는 각각 달랐지만, 모든 논의는 결국 '협동조합을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라는 한 지점으로 자연스럽게 모여 들었다.

 

▲ 장종익 학회장. ⓒ라이프인
▲ 장종익 학회장. ⓒ라이프인

장종익 한국협동조합학회장은 개회사에서 기본사회의 네 가지 축을 소개하며, 협동조합이 사회경제의 구성요소를 넘어서 기본사회 정책의 내부 구조를 지탱하는 실질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소득 시범사업과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의 소비 구조와 사회경제 조직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분석하며, 협동조합이 지역의 필요를 기준으로 한 서비스 공급체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전이 큰 만큼 제도적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향후 학술 논의를 더 확장해 나가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정호경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도 환영사에서 "그동안 협동조합이 행정법적 기준 속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져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사회연대경제가 공공성·거버넌스 측면에서 다시 읽혀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일본협동조합학회에서 참여한 오타루상과대학 다키 세이이치로 교수는 협동조합기본법의 구조적 모순을 다시 제기했다. 그는 일반협동조합을 영리법인으로 규정한 현행 체계가 협동조합의 본질과 충돌한다는 점을 다시 설명했다. 다키 교수는 기본법 제정 당시 이 문제를 논문으로 제기했지만 논의가 확산되지 못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최근 일본에서도 이 주제를 연구하는 그룹이 생겨 한국 협동조합기본법이 비교법적 연구의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협동조합기본법 개정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지금, 국제 학계에서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의미 있는 흐름이다.

축사가 이어진 뒤 학회는 올해 학술상과 감사패를 수여했다. '커뮤니티 케어와 돌봄의 다층적 구조를 분석한 연구'로 박주희 한남대학교 교수가 학술상을 받았으며, 투병 중이라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순간이 되었다. 이어 학회 편집위원장으로서 오랜 기간 학술 활동을 이끌어온 송재일 명지대 교수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 (좌)은민수 교수, (우)한상일 교수. ⓒ라이프인

학술대회 첫 번째 주제발표는 은민수 고려대(세종) 교수(전 국정기획위원회 기본사회TF 팀장)의 기본사회 정책 분석으로 이어졌다. 은 교수는 기본사회를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인 삶의 기반을 보장하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조"로 설명했다. 복지국가가 인간 돌봄 중심에서 출발했다면, 이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연환경을 포함한 생태복지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기본소득 논의가 기존의 보편적 현금지급 중심에서 벗어나, 기본 생애소득과 참여소득, 그리고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결합하는 다층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구조에서 협동조합은 지역 주민의 필요에 근거한 공공서비스를 실제로 공급하는 조직으로 재정의될 수 있으며, 생태·돌봄·문화·재생에너지·기초경제 영역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표에 대해 김형미 전 한국협동조합학회장은 "기본사회가 복지와 생태, 경제와 지역정책을 한꺼번에 다루는 넓은 틀인 만큼 단일 발표에서 모든 관계를 충분히 풀어내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런 큰 구조 속에서 협동조합의 자리를 보다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으며, 협동조합을 기본사회의 수혜자가 아니라 그 구조를 실제로 구현해가는 독립적 행위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토론은 발표의 추상적 틀을 현실의 제도와 실천의 문제로 옮겨놓는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 장종익 학회장. ⓒ라이프인
▲ (왼쪽부터)은민수 교수, 한상일 교수, 김형미 전 학회장, 남기표 교수. ⓒ라이프인

두 번째 발표자인 한상일 연세대 교수는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를 '협동적 전환'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냈다. 그는 최근 주민자치가 단순한 행정 참여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 관리, 돌봄 서비스, 지역 문화, 청년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 서비스 생산의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 안에서 협동조합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중간 플랫폼 조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지방소멸, 지역 갈등, 에너지 전환 등 복합적 지역 문제 속에서 사회연대경제의 실행력이 커지고 있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주민자치의 공공성과 사회연대경제의 운영 역량이 결합될 때 지역 민주주의가 실질적 힘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두 제도가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관계라고 정리했다.

이에 대한 토론에서 남기표 농협대 교수는 사회연대경제를 모든 영역을 대신하는 만능 조직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그는 국가와 지자체, 주민자치, 사회적경제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야 정책이 현실에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규범과 재정을 마련하고, 지자체가 실행과 조정을 담당하며, 주민자치가 결정과 감독의 역할을 하게 될 때, 사회연대경제는 지역 기반 공공서비스를 실제로 수행하는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사회연대경제를 정책의 대체재가 아니라 정책을 현실로 구현하는 실행 플랫폼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이어졌고, 발표에서 제시된 '협동적 전환'의 개념을 제도적 맥락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라이프인

이번 학술대회 1부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했다. 기본사회와 주민자치, 생태전환이라는 구조 변화 속에서 '협동조합은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발표와 토론을 종합하면 협동조합은 지역의 필요에 기반한 공공서비스를 구성하고, 주민 참여를 실제 운영으로 연결하며, 생태와 돌봄,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조직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방향성이 도출된다. 이러한 논의는 협동조합기본법 개정, 주민자치 확장, 기본사회 정책 실험 등 앞으로의 정책 변화와 함께 더 본격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협동조합을 기존 제도 안의 작은 조직으로 보느냐, 아니면 새로운 정책 구조를 설계하는 핵심 행위자로 보느냐에 따라 한국사회가 맞이할 전환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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