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숲과나눔은 노순택 개인전⟪흑산, 멀고 짙고⟫를 '공간풀숲'에서 11월 29일까지 개최한다. 숲과나눔의 '환경아카이브풀숲(www.ecoarchive.org)'에 탑재한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세 번째 기획전으로, 전라남도 신안의 섬 중에서도 가장 먼,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는 흑산도를 촬영한 노순택 작가의 신작 80여 점을 전시한다.
⟪흑산, 멀고 짙고⟫전시는 흑산도의 문화, 풍경, 사람과 동물 등 전면에 드러난 섬의 모습과 섬에 깃든 역사와 서사를 직조해,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진으로 쓴 흑산도 대서사시'라 할만하다. '흑산(黑山)'이라는 이름은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이 돌아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 옛날 유배지로 떠나는 정약전에게 아우인 정약용은 "저는 형님께서 가시는 흑산을 흑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현산(玆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정약전의 참담한 마음을 위로할 만큼 '검을흑(黑)'자가 들어있는 흑산도는 아득한 암청색의 험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무원의 이미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전시장 초입에 세 폭으로 길게 늘어뜨려 설치한 15,000자 분량의 노순택 작가의 작업 노트는 흑산도의 다층적인 면을 새롭게 제시하며 흑산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노순택은 이 글에서, 흑산도에 가는 길, 흑산도의 역사와 문화, 풍경과 삶을 서술하는데, 까치파도처럼 너울대는 아름다운 글이다. 흑산도의 빼어난 풍광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그물망처럼 엮어낸 이번 전시를 보려면 관람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와야 할 것이다.
전시는 크게 흑산도의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연작과 생동감이 물씬한 동·식물·사물을 담은 작품, 섬사람들의 포트레이트와 인터뷰를 정리한 글로 나뉜다. 노순택의 작품 속 흑산도의 풍경은 조각품처럼 특별하고 아름답다. 흑산도에서 서식하는 나무와 동물들은 경이롭고 숭고해 보인다. 흑산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각별해 사연마다 진한 울림을 전한다.
노순택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팔폭병풍'으로 만든 사진 작품을 특별히 선보인다. 마치 섬처럼, 흑산도의 절경이 병풍의 전면에 펼쳐지는데, 섬을 떠받치고 있는 수면 아래의 모습을 병풍 뒤에서 상상하며 관람하게 한다. 또한, 전시장에 걸린 사진은 크고 작은 섬들이 연결 되거나 단절된, 신안 바다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좀체 보이지 않았고 볼 수 없었던 흑산도의 진면을 사진으로 촘촘히 심고 띄워 노순택 작가의 섬세하고 예리한 통찰력이 발휘된, 예의 노순택식 디스플레이를 볼 수 있다.
섬사람들의 생태 의식은 그들의 어업방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노순택은 흑산도의 명물인 홍어를 잡는 홍어잡이 배에 올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요즘 홍어뱃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홍어 때문이 아니라 그물 때문이다. 흑산도 홍어잡이는 자연에 별 해를 주지 않는 어업방식이다. 홍어배는 그물을 쓰지 않고 낚싯바늘 400여 개를 매단 긴 줄을 바다에 드리웠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거둬들이는 주낙 방식이다. 바늘엔 물고기가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 갈고리 '미늘'이 없다. 미끼마저 끼우지 않는다. 바다 밑에서 홍어가 헤엄치다가 그저 바늘에 걸리는 '걸낚' 방식이라는 것이다." 최근 해양 오염의 원인 중 무분별한 어업 행위를 빼놓을 수 없는데, 누대로부터 이어온 홍어뱃사람들의 지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순택 작가는 첫 번째 전시였던《분단의 향기》(2004)부터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밀레니엄과 함께 등장한 노순택은 좀 더 분명하게 한국 사진의 육체를 만들며 예외적인 사진 도정을 밟아왔다. 새로운 사진 언어의 개발과 매번 전시와 출판에서 보인 창의적인 구성은 진심과 수고가 더해지며 작품의 겉과 안에서 견고한 컨텍스트를 이루었다. 이번 전시⟪흑산, 멀고 짙고⟫는 흑백사진의 명암을 통해 흑산의 역사적 삶과 실제 풍경, 현재의 삶을 종, 횡으로 엮어 서정성이 풍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흑산, 멀고 짙고⟫전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한반도 최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흑산도를 새롭게 보고 경험하게 할 것이다.
전시가 열리는 <공간풀숲>은 (재)숲과나눔의 '환경아카이브풀숲'에 탑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환경문제를 예술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전달하고자 탄생한 환경·예술·문화의 거점 공간이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 속에서 <공간풀숲>은 존재 자체만으로 도시의 삶에 신선한 활기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숲과나눔은 2019년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 2021년 '코로나19 사진아카이빙 《거리의 기술》' 전국 순회전을 개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2024년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가구 형태에 대해 사회학과 문화 인류학 시각으로 접근한 전시, 《41.6% 1인가구》를 개최했다. 또한 환경박사 장재연의 바다생물 이야기를 《800번의 귀향》 전시회로 개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도 숲과나눔은 '환경 문화 예술 전문 공간' <공간풀숲>에서 환경과 예술의 특별한 만남의 장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