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조직의 혁신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지난 16일 오후 서울 낙원상가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린 '2025 굿 거버넌스 사례연구 발표회'에서는 그 답을 '좋은 이사회'에서 찾았다. 비영리조직의 지배구조를 새롭게 모색하기 위한 이날 발표회는 도잉굿센터가 주최했으며,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의 주제발표와 세 개의 사례연구(한겨레두레협동조합·생명의숲·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주제발제를 맡은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굿 거버넌스의 조건'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비영리 조직의 이사회는 경영진을 감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조직의 미션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영리기업과 비영리조직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이사회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비영리 이사회는 공익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국내 비영리단체의 대부분은 예산과 사업계획 논의에 집중하고, 미션이나 비전에 대한 토론은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어서 "비영리라고 해서 견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권력 집중의 위험을 짚었다.
이사회의 가장 큰 오류는 '사무국이나 이사장을 돕는 우군'이 되는 것이라며, 우군이라면 조직의 미션을 위한 우군이지, 개인의 사익을 위한 우군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실증 연구를 근거로 이사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사회 교육 횟수가 많을수록 윤리규정 준수율과 투명성이 높아진다"라며, 교육이 곧 좋은 지배구조의 척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영리 조직의 지배구조는 상장기업보다 비상장기업에 가깝다는 점을 전제로, 외부의 시장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 비영리조직일수록 내부의 윤리·교육·견제 시스템이 곧 신뢰의 기반이 된다고 정리했다.
이어서 세 가지 사례에 관한 연구 내용 발표가 이어졌다. 개별 사례에 앞서, 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이 세 가지 사례를 개괄하며 "완벽한 정의보다 공익성과 자율성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첫 번째 사례로는 김홍석 조율 대표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도전하는 거버넌스 리더십'을 주제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하 한겨레두레)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한겨레두레는 상조문화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시작된 공익형 협동조합이다. 2019년 상조회사 자본금 요건이 15억 원 이상으로 상향되면서 존립 위기를 맞았지만, 조합원들의 자발적 증자운동과 제도 개선 캠페인을 통해 예외 적용을 이끌어냈다.
김 대표는 이를 "협동조합 간 협동의 원칙이 실제로 작동한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협동조합을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정의하며,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은 '항해형 리더십(Navigational Leadership)'의 의미를 강조했다. "조직이 불확실한 환경을 항해하려면, 리더 한 명의 결단보다 구성원 전체의 신뢰가 중요하다. 위임과 참여가 함께 작동할 때 조직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한겨레두레가 위기 이후에도 무연고자 장례, 사회장 문화 확산 등 공익적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는 점을 들며, 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다만 "운영 효율성이 높아지는 대신 이사회의 민주적 통제 기능이 약화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라며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해선 참여와 통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정병오 휴먼임팩트 협동조합 대표는 '정책기반 다중거버넌스' 구조를 가진 생명의숲의 운영 방식을 소개했다. 초기에는 정부·시민사회·기업의 3자 파트너십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시민사회와 기업 중심의 '협력형 이사회'로 발전했다. 사무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권한 위임과 유연한 집행 구조가 특징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견제·감시·평가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사례를 발표한 이재현 NPO스쿨 대표는 '교회 거버넌스의 실태 및 개선 방안'을 주제로, 교회를 사회단체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교회의 위기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1인 중심의 독주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하며 당회·운영위원회·사무처리회 등 중층적 의사결정 기구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발표가 모두 끝난 뒤에는 거버넌스 토크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이날 제시된 이론과 세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좋은 이사회'의 원칙을 각 단체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참가자들은 이사회가 규율의 주체가 아니라 미션을 함께 지켜가는 동반자여야 한다는 점을 공유하고, '거버넌스는 제도가 아니라 관계의 문화'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날 발표회는 각 단체의 경험을 통해 비영리 조직의 거버넌스가 투명성과 민주성, 그리고 신뢰의 구조로 나아가야 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