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2025년 경기도사회적경제박람회에서는 '일상에 기회를 더하는 포용적 도시'를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기조연설과 사례발표, 패널토론을 통해 드러난 메시지는 분명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은 특정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아동·임산부까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 과제라는 것이다. 도시의 물리적 단절이 곧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포용도시는 선택이 아닌 기본 자격임이 강조됐다.

 

기조연설에 나선 최유진 강남대학교 교수는 포용도시의 개념과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도시는 본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며, 따라서 갈등과 차별을 줄이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도시의 자격"이라고 말했다.

도시와 공간 정책는 전문가인 최 교수는 수전 S. 페인스타인의 『저스트 시티(The Just City)』를 인용하며, "포용도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도시에 원래부터 요구되는 기본 자격"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뭘 '해준다'는 시혜적 발상이 아니라, 도시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그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등록 장애인 비율은 5%지만 실제 체감은 10%에 이르고, 그러나 장애인 친화도시는 전국에서 세 곳뿐이다. 반면 아동·고령·여성 친화 도시는 다수 조례로 제도화됐다. 그는 "장애인은 제도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이 물리적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접근성과 이동권 문제를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과 사회적 비용 절감의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이 물리적으로 나올 수 없는 환경은 곧 사회적 고립을 만들고, 사회적 자본의 붕괴와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배리어프리 존과 레벨프리 골목상권 같은 생활 속 공간 혁신, 공공기관 접근성 강화, 장애인 모빌리티 및 사회주택 확대 같은 구체적 제안을 내놓으며, "혁신은 민간에서 시작되지만, 실제로 공간을 바꾸려면 반드시 제도화가 필요하다. 민간의 도전과 공공의 제도적 확산이 함께할 때 비로소 포용도시가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 최유진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라이프인
▲ 최유진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라이프인

 

작은 사회적기업이 바꿔낸 아동 이동권의 풍경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는 휠체어 아동의 이동권을 개선해온 경험을 소개했다. 전동휠체어가 커서 이동이 불가능했던 아동을 위해 소형 전동 장치를 만들어준 것이 출발이었다. 이후 하루 100건에 달하는 문의가 이어졌고, 2018년 파일럿 프로젝트에서는 아동의 우울 점수 40% 감소, 이동거리 75% 증가라는 효과가 나타났다.

토도웍스는 아동 맞춤형 휠체어까지 직접 개발하며, 전국 1,6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이가 아예 휠체어조차 갖지 못한 채 유모차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이 한 명당 200만 원, 총 40억 원이면 전국의 아동 이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그는 민간의 힘만으로 3,900명 넘는 아동에게 휠체어와 보조장치를 제공했지만 정부 지원은 거의 없었다며, 최근 건강보험공단이 도입한 제도에서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도 차원에서 보완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홍윤희 사단법인 무의 이사장은 딸과의 경험을 토대로 도시의 불편을 개선해온 여정을 공유했다. 지하철 환승지도를 제작해 교통약자의 이동 시간이 비장애인보다 28배 더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올해는 서울시·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안내 표지 개선 사업으로 이어갔다.

특히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통해 생활 공간 곳곳에 경사로 설치를 확산하고 있다. 현재 편의점 경사로 설치율은 3.7%에 불과하며, 지난해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성은 기본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모두의 1층을 언급했다. 홍 이사장은 "경사로야말로 포용도시의 상징"이라며, 제도 개선과 지역 차원의 뒷받침을 촉구했다.

▲ (오른쪽부터)최선숙 경기도 장애인복지과장, 심재신 대표, 홍윤희 이사장, 최유진 교수. ⓒ라이프인
▲ (오른쪽부터)최선숙 경기도 장애인복지과장, 심재신 대표, 홍윤희 이사장, 최유진 교수. ⓒ라이프인

 

패널토론에서는 제도의 부족만큼이나 시민 인식의 한계도 지적됐다. 최선숙 경기도 장애인복지과장은 "편의시설이 있어도 훼손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다시 한번 "공공이 다 할 수 없을 때 사회적경제가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며 민간 혁신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확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용도시는 선택이 아닌 도시의 기본 되어야

이번 컨퍼런스는 포용도시가 특정 집단을 위한 시혜적 개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권리이자 도시의 기본 자격임을 분명히 했다. 경사로, 맞춤형 휠체어, 교통 안내, 접근 가능한 공간은 장애인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인, 아동, 임산부, 일시적 부상자까지 모두를 위한 안전망이 된다.

이날 현장에 참여한 사회연대경제 기업과 장애인분야 당사자 및 활동가들이 포럼 내용에 공감하며, 이미 변화의 준비가 되었음에 공감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의 혁신을 제도화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일상 속에서 누구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포용도시'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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