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함께 시작하지만, 갈등과 분배 문제를 풀지 못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의 길을 묻는 현장에 답하듯, '협동조합 바이블'이 출간됐다. 이 책은 협동조합을 처음 설립하려는 사람, 이미 운영하고 있는 조합, 그리고 지원 실무자와 공무원 모두를 위한 실무 지침서다. 저자 이기대(MC기동이)는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에서 상담팀장을 지내고, 10년간 협동조합 분야에서 일하며 수백 건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지원했다. 그리고 출판은 고양시 사회적기업 크레몽이 맡았다.
협동조합을 오래 지원해온 저자, 그리고 책을 출간하며 협동조합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얻은 출판사 대표. 두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협동조합 바이블'이 품고 있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목소리
이기대 저자는 농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협동조합의 뿌리를 몸소 경험했고, 이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며 설립 상담, 운영 지원, 갈등 조정, 교육 등 협동조합의 전 과정을 가까이 지켜봤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사례는 그에게 뚜렷한 교훈을 남겼다. "겉으로는 협동과 연대를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사소한 갈등과 배당 문제로 쉽게 무너지는 협동조합을 수도 없이 보았다. 지원하는 공무원이나 실무자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설립을 돕다 보니 더 빨리 흔들리기도 했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는 이 책이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원 기관과 공무원들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라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은 법인 형태를 띠는 동시에 사람의 연합체이기에, 제도와 규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면서 나눠준 자료집이 대부분 교육 후 버려지는 것을 보며, "버려지는 자료가 아니라 책장에 꽂혀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교재"가 절실하다고 느낀 것도 집필의 계기가 됐다.
특히 그는 협동조합의 가장 큰 약점으로 '갈등 관리'와 '배당 원칙 부재'를 꼽았다. 조합원들은 대체로 자신이 더 기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배 원칙이 명확하지 않으면 갈등이 격화된다. 그는 "이용고 배당, 즉 조합원의 이용 실적에 따른 배당 원칙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출자금 비율로 나누는 구조로는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합원 자격을 정관에 세밀히 규정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조합원 자격이 명확하지 않으면, 잘되는 협동조합일수록 외부인이 몰려와 권리를 장악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관이야말로 갈등을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설립 단계에서 필요한 절차부터 운영 과정의 주요 쟁점까지, 협동조합의 '한 해살이'를 따라가듯 구성됐다. 이미 협동조합을 만든 사람이라면 운영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갈등과 분배 문제를 다룬 부분을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이야말로 실무자, 공무원, 조합원이 함께 참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재"라고 설명했다.
지역이 만든 책, 그리고 협동조합의 새로운 이해
'협동조합 바이블'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저자가, 고양시 사회적기업 크레몽을 만나 탄생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출판은 "시민이 직접 쓰고, 지역의 사회적기업이 펴낸 교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출판사 크레몽의 오은강 대표는 이번 책을 통해 협동조합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은 같은 사회적경제 틀에 있더라도 결이 전혀 달라서, 사실 그동안은 왜 같은 울타리에 있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을 준비하며 협동조합이야말로 사람 중심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크레몽은 교육용 보드게임과 청소년 매거진을 주로 발행하는 기업이다. 이번 출판은 그동안 다뤄온 청소년 교육과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함께"라는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오 대표는 "관 담당자들 책상 위에도 늘 놓이는 실무 참고서가 되길 바란다"며, 이 책이 협동조합 지원 체계 속에서도 자리 잡기를 기대했다.
출판사는 또 후속 작업으로 협동조합 운영 과정을 게임으로 풀어내는 계획도 준비 중이다. 청소년 교육 보드게임 제작 경험을 살려, 갈등 조정과 배당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통해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출간 시기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훨씬 전에 출간 의도를 품고 있었다. 퇴사하며 10년간 경험을 정리해 현장에 필요한 책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더 빨리 나왔어야 할 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협동조합 바이블'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저자는 전국 강의 경험을 살려 강사풀을 구성하고, 협동조합 코디네이터 자격증 과정과 연계해 지역별 교육망을 만들 계획도 밝혔다. 이는 한 사람이 전국을 돌며 강의하는 한계를 넘어, 책을 기반으로 여러 강사가 함께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구조다.
또한 이 책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 설립자, 운영자, 지원 실무자와 공무원은 물론,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더 많은 시민들에게도 필요한 교재다. 저자와 출판사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협동조합 바이블'은 실패와 갈등을 반복해온 협동조합 현장에 건네는 응원이며, 동시에 지역에서 합심해 만들어낸 협동의 기록"이라고.
